요 근래 읽은 추리 소설 중에 이 책만큼 처음부터 많은 기대를 걸고 본 소설은 없지 않을 까 싶다. 작가인 '시마다 소지'가 일본 추리 소설계에 신 본격 추리소설의 붐을 몰고 왔다는 점, 그리고 바로 데뷔작인 이 작품이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심에서 안타깝게 떨어졌다는 점과 그 후 일본 추리 소설계를 강타하며 추리소설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는 점 등 나의 눈과 마음을 자극하는 각종 정보로 인해 결국 이 책을 사게 되었고 이상하게도 한 동안 읽지 않았다.

이건 나의 묘한 버릇인데 음악CD이건 게임이건 책이건 사고싶은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구입한 뒤에는 한 쪽에 고히 모셔놓고 그저 오랫동안 바라만 보고 있다. 왠지 손대기가 망설여지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그러다가 정 읽을 거리가 없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손을 대는데 그 순간 극도의 몰입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여느 추리 소설과는 정말 다른 점이 많고 처음부터 사람을 상당히 당혹스럽게 하는 구석이 있다. 바로 책을 펴면 바로 우메자와 헤이키치의 수기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무지하게 머리가 아파온다. 전혀 사전 지식조차 없는 점성술과 아조트 그리고 미친 자의 망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끔찍한 내용이 전개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나같이 눈치없는 독자도 알 수 있게 이 소설에서 일어나게 되는 사건의 내용을 미리 알려줌과 동시에 처음으로 우리의 머리를 휘젓는 무시무시한 작가의 트릭이다. 이 수기를 읽는 순간 머리는 이미 한 곳에 고정된다. 이런 미친 화가와 앞으로 죽게될 불쌍한 딸들(그것도 꽃다운 20대에...). 이렇게 1차적인 고정관념이 정착된다.

수기가 끝나면 우리의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이게 일본 말장난으로 '화장실을 깨끗이'라니 참 재미있는 이름이다. 마치 우리나라 김 치국이나 주 전자 이런 이름과 비슷한 걸까?)와 조력자인 이시오카가 나온다. 누가봐도 셜록 홈즈와 와트슨의 구성, 하지만 좀더 매력이 담긴 느낌이다. 어쨋든 이시오카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이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접하게 되고 더욱 당혹스럽게 된다. 수기의 가해자는 이미 죽고 이후 사건은 수기대로 진행된다. 거기에 제2의 사건까지...

즉 죽여야 할 사람이 먼저 죽고 이 사람이 죽일려고 했던 사람들은 그 후에 죽는...그리고 285페이지까지 두 사람은 화장실도 안가고 방안에서 이 사건을 추리한다. 하지만 독자는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다. 분지로의 수기가 나와 시체 유기의 비밀은 풀리지만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가 없다.

이후 두 사람은 교토로 날아가고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나오지만 결국 미타라이의 단 한번의 추리로 사건은 해결되어 버린다. 작가 시마다 소지는 범인이 밝혀지기 직전과 범인이 밝혀지고 진실이 밝혀지기 직전 두번에 걸쳐 독자에게 도전장을 낸다. 나는 모든 단서를 제공했고 노골적으로 범인을 드러내놓았으니 한번 맞춰보세요(실은 훨씬 더 도전적으로 말했다) 한데 도무지 맞출 수가 없다. 나같은 경우 첫번째 도전에는 실패했고 두번째 도전에는 이미 밝혀졌던 범인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아마 대부분 두번째는 알 수 있으리라...너무 많이 힌트를 주므로)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히 되짚어 보니 정말 작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정말 냉정하게 첫번째 도전장에서 책을 덥고 인물관계를 상세히 살펴보고 사건의 내용을 다시한번 관찰하였다면 범인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쨋든 결론은 작가 시마다 소지가 자신있게 책 속에서 일본 40년 동안의 미스테리라 밝혔을 정도로 정말 어려운 수수께끼 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체와 관련된 트릭은 예전에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만화에서 본적이 있었음에도 내가 간파해 내지 못했다는게 매우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러나 오해하면 안된다. 이 트릭이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의 작가들이 시마다 소지의 원조 트릭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원조는 이 점성술 살인사건이 되는 셈이며,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이지 기가막힌 트릭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를 내서 맞추는 사람이 과연 몇이 될 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트릭을 생각해 낸 시마다 소지에게도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역시 사람머리는 다 같지 않은 모양이다.

미타라이의 조력자인 이시오카가 책 중에 '나는 평범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이 말이야 말로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머리는 언제쯤이나 깨어날지....알 수가 없다.

1956년하면 무엇이 생각날까요? 우리나라는 말그대로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절, 아직도 도시에도 초가집이 즐비하고 개천에서는 빨래하는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와 깨벗고 놀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반공 집회 확성기 소리들이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모든 면에서 발전을 이룬 초강대국 미국이야 우리보다는 훨씬 더 발전했겠죠. 도로에는 벌써부터 자동차의 홍수, 거리는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물들고,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항상 범죄가 끊이지 않는 거리를 지키기 위해 경찰들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을 것입니다.

컴퓨터의 컴자도 없던 시절이니 모든 것은 아날로그가 먼저죠. 사건이 일어나면 형사들은 말그대로 용의자를 찾아 발로 뛰고 지금은 컴퓨터 엔터키하나로 10분이면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여러 명이 모여 쓰디쓴 커피와 줄담배로 지탱하며 밤을 새고 서류를 뒤적이기도 합니다. 

요즘 영화들 보면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놀랄만한 첨단 기술들이 나오는 것에 놀라는 재미도 좋지만 우리가 어쩌면 아련한 옛기억이나 아니면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시절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은 재미도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자세한 세부묘사에 내가 마치 87번 관서에 있는 것처럼 정말 눈에 선하게 느껴집니다. 일단 이 작품의 우수성을 논하기 전에 <에드 맥베인>이라는 작가가 이 87번 관서시리즈 첫 작품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서의 일상과 업무에서부터 이들의 생각과 행동방식까지 세밀한 묘사는 굉장히 강한 작품 몰입도를 선사합니다.

소설가는 ’책장에다가 글자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 <에드 맥베인>은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소설 구석구석에 그가 남긴 노력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 가을에 1956년에 출간한 소설을 읽어도 나에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경찰혐오자>는 일본식 추리소설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류의 추리소설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고 미키 스필레인의 통쾌한 하드보일드 소설류도 아닙니다. 

정말 정확한 정의를 붙인다면 책 뒷면에 씌여진 대로 경찰 소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코 포와르나 긴다이치 코스케 같은 명탐정도 아니고, 마이크 해머 같은 막가파식 열혈 탐정도 아닌 어찌보면 평범한 경찰 그것도 87번 관서에 근무하는 경찰들이 주인공입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가공의 도시에서 범죄 소탕조차 일상이 되어버린 평범한 87번 관서에 일어나는 살인,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형사들만 노리는 살인사건. 범죄자를 잡는 경찰이 도리어 범죄자의 표적이 되고 그 표적이 된 경찰들은 정체불명의 범인 검거를 위해 나섭니다. 

도무지 단서조차 없는 범인과 차례차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형사들, 그러나 결국...사건은 엉뚱한 또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인해 해결되는데....내가 보기에 이 반전은 오늘날 어지간한 영화에 씌여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수준이라 확신합니다.

이 작품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추리의 요소도 가미되어 있습니다. 거의 A3 한장을 가득 채울 인물구조를 가진 일본 추리소설과 달리 범인은 거의 소설 끝까지 동기도 이유도 밝혀지지 않고 범행을 저지를 때만 잠깐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로서 범인 알아맞추기는 포기해야 되지만 다 읽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작가는 중간에 이 밑도 끝도 없는 사건이 왜 사건이 일어나는지 복선을 설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말을 알았을 때도 황당함 보다는 '...그래서 그랬구나'는 공감이 먼저 다가오기도 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TV 시리즈를 보면 다음회가 참 궁금합니다. 나중에 카렐라 형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왠지 궁금해 집니다.



에드맥베인, 경찰소설, 경찰혐오자, 범죄, 형사

폴 크리스토퍼의 장편소설인 <렘브란트의 유령>은 책 제목과 디자인만으로도 무척이나 독자의 시선을 끄는 소설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소설을 읽기전에는 아무래도 책 내용을 보면 재미가 없으므로 책 제목과 디자인에서 책의 내용을 유추해 보는 경우가 많다. 렘브란트의 유령을 보았을 때 내 첫 느낌은 심령소설은 아닐지라도 먼가 렘브란트의 그림을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렘브란트의 과거와 현재의 배경이 교차하면서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듯 비밀은 그 속살을 하나씩 드러내고 거의 비밀의 문 앞까지 왔을 때 독자들이 숨이 막힐 정도(혹은 그것보다 미약하더라도)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그러나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 보기좋게 빗나갔다.

우선 이 소설은 그야말로 요새는 새롭다고 할 수도 없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모험소설이다. 아버지는 고고학자이고 어머니는 인류학자이며 본인 자신도 미술을 전공한 훤칠한 키의 미국인 미녀 핀과 찰스 황태자와 사촌이자 대영제국의 필그램 공작인 빌리라는 두 주인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너무나도 전형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두 사람을 합하면 모든 수수께끼도 안 풀릴 수가 없고 세상 어디던지 안 갈수가 없다.

현실을 사는 우리들이야 이런 소설을 통해 색다른 경험도 하고 새로운 지식도 얻고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보물이 숨겨져 있는 미지의 세계도 탐험해서 좋긴 하지만 문제는 이제 이런 소설이 더 이상 참신해 보이지가 않는다는게 문제이다. 우리는 이런 류의 장르를 이미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너무나도 많이 접했다. 쉽게 말해 오락성이 짙은 영화...인디애나 존스 4나 내셔널트레져 그리고 최근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등을 통해 너무많이 접해놔서 별로 흥미가 많이 생기지 않는다.

소설 자체는 재미있다. 모험 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밟아가면서 결국 두 남녀가 원하는 것,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문제는 결말 부분에 가서 말끔히 해소된다. 그리고 이게 반전인지 먼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필로그에서 그 동안의 고생에 보답도 해주는 잭팟도 터뜨린다. 헐리우드 식 해피엔딩...어쩌면 누가 메가폰을 잡아도 어느정도는 성공을 보장받는 영화의 잘 만들어진 스토리 같은 느낌이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상당히 좋은 선택이 될 것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항상 억세게 운좋은 사람은 주인공 뿐인 것만 같은 이런 소설은 이제는 별로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제목에도 썼지만 이게 꼭 렘브란트의 유령이 아니라 루벤스의 유령이나 하다못해 동시대의 어느 화가를 붙여도 스토리와는 관계없다. 단지 나라가 네델란드다 보니 연관성을 짓게 하고 싶어서 갖다 붙인 것일 뿐, 제목과 내용이 이렇게 다른 소설은 오랜만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