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계획과의 사랑에 빠진 여자들
오쿠다 히데오<나오미와 가나코>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 등으로 유명한 오쿠다 히데오이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소설을 좋아하고 유행에 따라 소설을 읽던 나였지만
어느 샌가부터 취미로서의 독서 생활이 중단되었기 때문
전공 공부, 과제,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만 해왔고
재미나 휴식을 위한 소설 읽기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 유명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하나도 읽은 게 없었고
이름만 익숙하다 뿐, 어떤 스타일의 소설을 쓰는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 채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게 되었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역시도 전혀 듣지 못한 채 읽었다
차례가 나오미 이야기, 가나코 이야기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걸 보고 한 사건 흐름에 대해 두개의 시선으로 각각 서술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 앞 부분은 나오미를 중심으로, 뒷부분은 가나코를 중심으로 나눠서 전개된다
큐레이터를 꿈꾸지만 백화점 외판부 직원으로 일하는 나오미는
어느날 절친한 친구 가나코가 남편 다쓰로로부터 폭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나코는 보복이 두려워 그 어떤 대처도 하지 못한다
나오미는 가나코를 구해주기 위해 다쓰로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것을 죽으는 것이 아니라 제거라고 말한다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가나코의 삶에서 없애버리고 싶기 때문이므로
그래서 살해 계획에는 '클리어런스 플랜'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범죄나 살인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두 사람의 살인 계획은 생각보다 척척 잘 진행되어 간다
더 수월하게 죽일 수 있는 여건들이 자꾸 생겨나는데
계획을 세웠는데 마침 좋은 여건이 생기는 건지
그런 여건들이 우연히도 갖추어지는 덕에 살인 계획이 확고해진 건지 모르겠다
'나오미 이야기'의 끄트머리가 바로 다쓰로 살해 계획을 실현시키려하는 즈음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쓰로를 살해하는 것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아직 책을 안읽은 분들을 위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나코 이야기’
‘가나코 이야기’는 클리어런스 플랜의 디데이 이후 이야기로
클리어런스 플랜으로 인해 곤혹스러워진 두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가 ‘가나코 이야기’에서 펼쳐진다
평소 잔인한 생각을 자주 한다거나
성격적 결함을 보인다거나 한 적이 없었던 나오미
이상할 것 없이 잘 살아오던 나오미가
친구를 돕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살인
물론 처음부터 살인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이 그렇게 길지도 깊지도 않았다
너무도 쉽게 한 선택이 너무도 어려운 살인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착수함과 동시에 그녀는 마치 천부적인 살인 능력자라도 되는 것처럼
놀랄만한 발상의 계획을 완성시켜나간다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 저력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일상 생활 중 만나는 사람이나 맞닥뜨린 상황을
클리어런스 계획에 써먹기 위해 응용하는 모습은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계획을 세워나가는 정성과 거기에 보이는 애착은 더더욱 그러하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무서울 만큼 변하는 나오키를 보며
이것이 보편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인 건지 아니면
나오키가 원래 이런 인간이었는데 이제야 드러나게 된 건지 궁금해졌다
또 나오키가 다쓰로를 죽이기로 마음먹는 것에 가장 큰 자극을 준 것은 뭔지 궁금해졌다
원래 정의감 넘치던 성격이었다는 점,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는 점, 진심으로 가나코를 위하는 친구란 점
모두 이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결정적 이유가 잘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 결정적인 자극은 무엇일까?
그런 결정적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행해진 걸까?
계획만으로는 언뜻 보기에 완벽해보이지만
실행할 때를 보면 허술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실패하는 건 아닌지, 성공해도 범인임을 들키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는데
정말 내 예상대로 문제가 발생한다
그만큼 범죄나 살인은 익숙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살아오던 평범한 여자였는데
무엇이 이들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은 건지…
그리고 두 사람 다 살인 행위에 대한 성공 여부를 염려하긴 해도
자신이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특이했다
전혀 살인마스러운 모습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그래서일까?
너무 평범해서 너무 단조로워서 너무 평면적이어서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살인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살인 행위에 무섭게 빠져들고 열정적으로 굴 수 있었던 걸까?
어찌되었건 클리어런스 계획을 세워가는 과정, 실행시키는 과정, 그 이후 이야기까지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두 여자를 주시하게 된다
예측되는 몇 가지 결말 중 과연 어떤 결말로 귀결될지 궁금해서 책을 덮을 수가 없더라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지만, 내가 원했던 결말로 끝이 났다
옳고 그름이나 이해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굉장한 재미를 선사한 책
몇 년 사이 독서력이 확 떨어져서, 어떤 책은 한달 내내 붙잡고 있기도 했던 내가
5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