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란 곳이 내게는 참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과거에 어떠한 계기로 아르헨티나 친구와 펜팔을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사는 곳이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였었다. 항상 열정적이고 활기찼던 친구는 어린 나에게 문화충격과 함께 세상 밖을 내다보는 창이 되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의 성격은 그 멋진 도시의 영향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후에 꼭 각자의 나라에 놀러가자 하며 다짐했던 그 때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책을 읽기 전엔 이 책이 수 없이 출간되고 있는 여행 에세이 책들 중 하나라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여행 에세이로 변장한 소설이라는 사실이 나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산산히 부숴버렸다. 옴니버스 영화처럼 잘 짜여진 구성은 나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했고 달콤 쌉싸름한 주인공들의 인생 얘기가 이 가을의 분위기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요 책 굉장하다"라고 말한다. 또한 출간 즉시 영화화 확정이라니 영화로서도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사랑하는 여자가 떠나버린 곳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무작정 그녀를 찾기 위해 떠난 OK김, 자신이 가시고기와 같다며 지긋지긋한 인생을 버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온 박벤처, 시청자의 비난과 막장드라마 작가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고파 떠나온 나작가, 한때는 잘나갔지만 프로페셔널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사랑까지 잃게된 원포토. 이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해 게스트 하우스 OJ란 곳에서 머물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 지구 반대쪽 끝까지 오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야. 필사적으로 뭔가를 찾으려 들거나, 아니면 모진 마음을 먹고 뭔가를 버리려 하거나. 어느쪽이든,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찾기 바라는 마음에 그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온 거지. 그런데 손님, 손님은 찾으러 왔어? 아니면 버리러 왔어?
페이지 : 200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 OJ여사가 원포토에게 물어보았던 말이다. OJ여사는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하고 핵심적인 인물이다. 여행자들의 사연을 꿰뚫어보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이 캐릭터는 그야말로 사람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가 그렇게 되기까지 그 만큼 세상 풍파를 다 겪어 보았으리라. 이렇듯 개성넘치는 인물들과 사연깊은 여행자들은 9일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여행의 목적이 그러하듯 현실을 지우고 새롭게 무언가를 담기 위함이라는 메세지는 살짝 진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는 "나같은"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때문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간 그들은 직업과 삶의 방식들이 다 다 달랐지만 어찌됐건 뭔가를 경험해 보기 위해 여행을 했다는 것에 있어 과거 내가 떠났던 여행의 목적과 다를바가 없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멀리 나아갈 수 없다는 괴테의 말처럼 나와 이들은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숨고르기를 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 책의 색다른 묘미 중 하나는 "아.....맞아" 라고 나도모르게 끄덕 거리게 했던 작가의 글들이다. 이야기 중간 중간 그림과 함께 삽입되어 있는 짧은 글은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들도 있었고 다이어리에 적어놓을 정도로 인상깊었던 것도 있었다.

	한 가지 감정으로 찾아온 사랑은 수없이 많은 변덕을 부린다.  감당할 수 없는 기쁨에 교태를 떨다가도  사소한 이유로 토라져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팔 철철 넘쳐도,  나는 너로 인하여 행복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노라.
페이지 : 133

이 책을 읽으면서 "훗날 내 모든것을 미련없이 다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나겠다."라고 다짐했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났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했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은 시작을 재창조 하는 기계같다. 만약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게스트하우스 OJ처럼 떠들썩하면서도 편안한 곳에 머물 수 있게 되길 빌어본다. 또한 어딘가에서 아르헨티나 담배를 권하며 여행자들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OJ여사와 같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되길!

책 이미지 저작권은 예담 출판사에 있습니다.

찾거나혹은버리거나in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 서평

카인의징표, 다산북스

인생이 늘 즐겁고 행복하지 않듯이 주인공 오스카를 비롯한 주위 인물들의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 책은 오스카와 그의 누나 롤라, 이 남매의 엄마인 벨리시아( 할머니 라잉카의 이야기도 조금 나온다 ), 할아버지 아벨라르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도미니카와 미국을 혼합한 위트와 풍자를 한껏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푸쿠]로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이 [푸쿠]란게 무엇이냐? 이 용어는 유럽인들이 서인도제도를 침략했을 당시 풀어놓은 모종의 파멸이나 저주를 가리키는데 특히 신세계의 파멸과 저주를 뜻한다. 이 무시무시한 뜻을 내포하는 [푸쿠]는 산토도밍고 사람들이 절대로 입밖에 내선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도미니카에는 [푸쿠]의 힘을 빌려 만행을 저질러온 권력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몰리나], 짧게 말해 트루히요가 되겠다. 독재자 트루히요의 푸쿠가 이 오스카 가족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한 집안이 풍지박산 나는건 정말이지 시간문제였으니까...

크게보면 이야기의 시작은 오스카부터지만 할아버지 아벨라르부터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왜냐? 푸쿠의 저주는 아벨라르부터 였기때문에... 잘나가는 유명한 의사였던 아벨라르는 그의 첫째딸을 흉악한 독재자 트루히요에게서 지켜내고 싶었지만 푸쿠를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KO.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벨라르의 막내딸이자 오스카와 롤라의 어머니인 벨리시아마저 푸쿠의 저주를 피할 수 없었고 그녀의 자식인 오스카, 롤라까지도 푸쿠의 영향을 받게된다. 아! 그러니 어찌 [푸쿠]를 무서워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스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유는 뭘까?  차마 봐줄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시며 그렇다고 뭐 하나 잘난거 없는, SF 오타쿠인 그가 말이다.  짧게 말하자면 푸쿠를 피하려 하지 않고 맞서 싸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 때문에! 뚱뚱하고 못생겨서 왕따 당하던 시절 벗어나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그가 말이다. 어찌보면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푸쿠를 ’두려워 하지말고 맞서 싸우시게’라고 오스카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라고 하지 못해? 라고 말이다.

이 소설 대부분에는 신랄한 은어, 성적용어들이 많아 처음에는 거북했었다. 더욱이 미국적 배경지식 (책이름이나 사회적인 내용들)과 도미니카의 역사를 모르고 있던 나에겐 이 책이 혼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책이 왜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각종 찬사를 얻게 되었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이란게 가혹하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읽고 나면 내가 겪어온 인생의 굴곡들이 별거 아니였군 하고 느끼게 될테니.
아차아차 푸쿠를 이겨내는 중요한 주문을 놓치고 갈 뻔 했다. 
푸쿠 앞에선 [사파]라고 외치면 된다고 하니 푸쿠를 만나게 되면 외쳐주길!




오스카와오의짧고놀라운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