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인생이란 시계가 증가하는 과정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년 쯤 전,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서의 이야기인데, 우리 집에는
시계란 이름이 붙어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가난했던 탓도 있지만, 시계 따위가
꼭 있었으면하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럴만한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손목 시계니 탁상 시계니 오디오 타이머니 하고 전부 합하면,
열여섯 개나 되는시계가 집에 있다. 무려 열여섯 개다. 십오 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거짓말 같은 생활이다. 열여섯 개 중 반 정도는 어딘가에서 받아온 것이다.
무슨 상을 받았을 때의 기념품이든지, 짤막한 원고의 사례금 대신이든지, 개인적인 선물이든지,
그런 류이다. 그런 것들이 필립 k. 딕크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종류의 엔트로피의 증대처럼
차츰차츰 쌓여 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온 집이 시계의 소굴 같이 되어 버렸다.
이따금 기분이 내키면 그 열여섯 개나 되는 시계의 시간을 하나하나 점검 해 볼 때가 있다.
저쪽으로 가서는 바늘을 돌려 시간을 늦추고, 이쪽에 와서는 앞당기고 하노라면,
인생이란 것이 왠지 불가사의하게 여겨진다. 시계 따위 없어도, 그닥 불편할 게 없는데 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 랑겔한스섬의 오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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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뭄의 책은 어떻게 증가하는가
하루키에게 시계가 그러했듯이 내게 인생은 어쩌면 책들을 쌓아가는 일들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내가 가진 책의 양은 어느새 5단짜리 책장 5개 분량이 넘었으니까.
그것도 이사오면서 조금은 정리한 정도인데 말이다. 대학 때 보고 싶은 책들이 도서관에 없어서
용돈 아껴 하나씩 사모으던 것이 버릇이 되고 그렇게 하나씩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책욕심이 늘어난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사 모은다던 게 어느새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동안 내가 보고 싶었던 모든 책들을 다 사서 모았던 것도 아닌데 어느새 이렇게 되고 말았다.
가끔씩은 나도 하루키처럼 책장앞을 어슬렁거리며 책들을 다시 정리하곤 한다.
때론 작가별로, 때론 크기별로, 때론 주제별로, 시리즈끼리. 책들을 정리하고 있으면 기분이 차분해지고
그 책들을 읽어온 시간과 내가 다시금 정리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나의 책장은 그 책들을 읽었던 나의 시간들의 진열장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하나 하나 제목을 읽어나가면 그 책을 읽으면서 킥킥 웃어대고, 눈물을 찔끔대며, 긴장해 손톱을 물어뜯고,
어려워 머리를 쥐어박고, 신나서 심장이 두근거렸던 그 많은 순간들이 왈칵 내게 쏟아져 온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책들을 색깔별로 다시 정리했다. 대개 하얗거나 까만 우리나라의 심심한 책표지들도
어느샌가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예쁘게 변신을 했기 때문이다. 심심한 나의 책장에도 단풍처럼 예쁜 색을 입힌 것이다.
다 해놓고 나니 좀 웃기기도 하고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리해 놓고 싶을지 모르니 당분간은 이대로가 좋을 것이다.
정리한 책장을 한 장 사진으로 찍어 보고 씩 한번 웃어 본다.
책장을 바라보며,
이 책들을 읽은 나와 읽지 않은 나는 과연 많이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책 따위 이렇게 열심히 읽지 않아도 그닥 불편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
그런데 왜 실실 웃음이 나지?
- 다락방서 허뭄
허뭄,
다락방,
무지개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