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나 서재는 나에게도 하나의 피난처였다.
책으로 꽉 들어찬 벽들이 나를 둘러싸서 보호해 주던
그 순간 세상의 그 무엇도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저 절대적인 시간의 갉아먹음마저 거기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인 그 단조로움과 함께 시간은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 장 그르니에<독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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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 역시 나만의 멋진 서재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과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한 그런 서재. 커다란 책상이 있고, 편안한 의자가 있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시간들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서재.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들 그런 여유를 갖고 싶은 것이다.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꼭 그런 멋진 서재가 있는 집에서 살아야지 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현실은 역시 그것과 사뭇 다르다. 하지만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겠지.
그래도 다행히 행복한 것은 서재가있든 없든 책은 여전히 재미있고, 어디서나 즐겁게 읽힌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예쁜 방을 원하고 누구는 자신만의 작업실을 바라고, 누구는 오디오룸을 원하고,
누구는 화려한 욕실을 바라고, 누구는 멋진 부엌을 바란다. 그 곳은 바로 당신이 행복해지는 꿈의 장소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꿈의 장소는 바로 책이 있는 그 곳, 서재다.
언제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 곳, 서재.
세상엔 책들로 둘러싸인 그런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전자 후자, 어느쪽일까?
세상에서의 탈출과 세상으로의 도피를 모두 가능하게 했던 책으로의 여행.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책들에 둘러싸여 편안함을 느꼈다. 지금도 그러하듯이.책들은 언제나 내가 펼쳐내 이야기를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조용한 나의 신하들이었다. 나는 그저 어느 책이든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들고 페이지 가득 적힌 이야기를 읽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 누구도 나의 선택에 토를 달지 않았고, 읽다가 내팽개친들 아무런 불평도 없었다. 나의 선택과 나의 버림은 언제나 나의 몫일 뿐, 아무도 나에게 그 무엇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책들은 자기 자리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었다.책을 들고 이야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또 어땠는지. 책은 때로 재밌는 선생님이 되기도 했고, 때론 익살스런 이야기꾼이 되기도 하였다가 세상에 둘도 없는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했고, 험난한 모험의 동료가 되어주기도 했다. 책은 끝없이 거대한 세상과 한없이 장구한 역사와 뜨거운 사랑과 차가운 배신, 변하지 않는 맹세와 잊혀진 약속, 세상의 아름다움과 무서움을 내게 알려주었다. 말 그대로 책 밖의 쓰고 달고 시고 매운 세상을 어렴풋이 맛보게 해주었다. 책을 덮고 사람들 사이에서 헤매이다 돌아왔을 때에도, 책 속에 숨어 세상의 고민을 털어낼 때도, 탈출이며 도피이며 피난처이고 집이고 감옥이었던 책. 나는 아직도 그 속을 헤매고 있다.
- 다락방 서재에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