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하악하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이거 왠 낯 뜨거운 단어일까. 내가 저자 이외수를 처음 만났던 때는 2005년, 그의 책 ‘장외인간’에서였다. 어떻게 보면 가볍고, 허무맹랑하고 어이가 없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만큼은 한 없이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정녕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일까.

하악하악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서점에서 이 책을 들춰 봤을 때는 글자보다 흰 여백이 많았고, 무엇보다 물고기 그림들도 채워진 책이 낯설고 또 당황스러웠다. (알고보니 저자는 민물고기과 식물을 그림을 위주로 이 책을 구성했다) 이건 대체 어떤 내용일까. 맨 처음 책을 폈을 때는 짤막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귀 하나하나가 신선했다. 때론 재치있고 때론 쓸쓸하고 때론 풋풋하고 또 날카롭기까지 한 글귀들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더군다나 책에 뿌려진 향긋한 향수냄새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더 미소 짓게 만들었다. 절로, 자꾸 책장을 넘기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유일한 책.

대중매체를 통해 본 이외수라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괴짜’에 가까웠다. 외딴 강원도 화천에서 살고 특유의 희끗희끗한 긴 머리를 고수하는 모습부터, 인터넷과 야동을 즐기면서 글을 쓰는 삶에 빠져 지내는 ‘괴짜’. 비록 이 책에서는 ‘꽃노털 옵하의 알흠다운 세상’이라 일컬어 졌지만. ^^ 아마도 그가 범상치 않는 인물이었기에 이런 범상치 않는 책이 나온 것이 아닐까. 아무리 괴짜라도, 괴짜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역시 괴짜만이 가진 ‘무언가’가 그들에게 통했기 때문이다. 하악하악. 이책을 읽고 나면 괜시리 자꾸 이 단어를 쓰고 싶어 진다. 책을 다 읽고 나도 사실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하악하악. 재밌다.

이외수를 추종하는 팬들은 그가 그들의  ‘잃어버린 감성’을 찾아준다고 열광한다. 어디 그 뿐인가. 바쁘고 지친 일상에 한번이라도 웃음 수 있는 여유까지. 하악하악이 사랑 받는 이유다. 누구보다 이외수가 쓴 책이라면, 일단 한번 그를 믿고 마음 편히 낄낄댈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해 봄직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 예술이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카알라일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렇다, 태양으로서는 결코 담뱃불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

* 아시나요. 시간이 정지해 버린 다목리. 무릎까지 빠지는 적설량으로 차오르는 이름들.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싶어도 모두들 듣지 못할 거리에서 살아갑니다. 아시나요. 날마다 내게서 버림받은 낱말들은 모두 하늘로 가서 그대 잠든 머리맡 새도록 함박눈으로 쌓입니다.

* 젊은이여.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멀고도 험난하니, 그대 배낭 속을 한번 들여다보라. 욕망은 그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소망은 그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법. 젊었을 때부터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잡다한 욕망들을 모조리 내던져버리고 오로지 소망을 담은 큰 그릇 하나만을 간직하지 않으면 그대는 한 고개를 넘기도 전에 주저앉고 말리라. 하악하악.

* 밤새도록 장대비가 쏟아졌고, 순식간에 계곡물이 범람했고, 진입로가 유실되었고, 식구들은 고립되었고, 하지만 라면은 충분하고, 우리 집은 노아의 방주보다 더 안전한 벙커, 석 달 열흘 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을 자신은 있는데, 오로지 이 빌어먹을 놈의 외로움이 처지 곤란한 문제거리다.

* 한 우물을 파다가 끝까지 물이 안 나오면 인생 막장 되는 거 아냐, 라고 말하면서 손도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삽질 한 번 해보지 않고 그런 소리나 하는 사람들, 대개 남에게 물을 얻어먹고 살거나 한평생 갈증에 허덕거리면서 세상 탓이나 하고 살아간다. 쩝이다.

*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보다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깨닫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태산같이 높은 지식도 티끌 같은 깨달음 한번에 무너져버리나니, 오늘도 몽요담 돌거북은 번개 한 번에 삼천리를 두루 살피고 돌아온다.

* 시간의 강물 가득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내 젊은 날의 환영 하나가 남루한 차림새로 담벼락에 이마를 기댄 채 오열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모두들 나를 버리고 어디로 멀리 떠나버렸을까요. 세상은 텅 비어 있고 빗소리만 자욱합니다. 

 

 

한국의 무림 고수를 찾아서

궁극의 무예로써 몸과 마음을 평정한 한국 최고 고수 16인 이야기..이 책의 저자 박수균은 현재 문화일보 기자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사람 냄새가 좋아 도복을 입었고 한 동안 무술 수련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기자가 되어서도 체육부에서 ‘고수’ 기획을 고안해냈고 결국 ‘한국의 무림 고수를 찾아서’란 시리즈 기사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바로 그때 실린 무림고수들의 이야기를 한 데 담아 엮어낸 것으로, 한 편의 ‘자기계발서’이자 ‘명상집’이자 소소한 ‘수필집’ 같은 느낌이었다.

“삼일 배운 것을 삼년간 익히기를 반복하는 고수들은 안으로는 자기절제와 수양에 강직하면서도 밖으로는 관대한 성품과 여유로운 풍모를 갖춘 사람들입니다.” 저자가 서문에 쓴 이 대목은 바로 이 책의 특성을 단 번에 알게 해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칫 ‘무림 고수’리면 가질 수 있는 편견, 속세를 떠나 한적한 곳에서 몸을 단련하며 소위 ‘자신 만의 세계’에 틀어 박혀 사는 존재라는 약간은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졌다. 대신에 그들은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세상을 누구보다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자신을 이기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태껸, 태권도. 합기도, 우슈 외에도 팔괘장, 형의권, 아이키도 등 생소한 무술을 소개해주고, 그 분야의 고수들의 삶을 묘사하고 인터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자신도 한번 쯤 무술의 세계에 빠져보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의 고수들은 서로 다른 무술수련을 통해 각각 저만의 개성과 소신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그들에게서 ‘그 만의 향기’가 느껴졌다면 다만 그들이 ‘1인자 고수’였기 때문일까.

이 책은 참 흥미롭고 따뜻하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고수들과 함께한 시간 동안의 소소한 에피소드, 솔직한 내면인터뷰 등을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 삶의 철학을 느낄 수 있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 진정한 무림고수들을 더 ‘속세’로 이끌어 세상의 중생들에게도 더 많은 깨달음을 전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이었다. 

 

정당한 분노.

엘 모소테 마을 대학살, 방글라데시의 마지막 천연두, 체르노빌의 유산인 기형 아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역시 강렬한 사진이다. 그 어떤 설명을 주절이지 않아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때론 소름이 돋는 사진들은 왜 매그넘이 그토록 유명한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분노는 나의 힘이고, 당신의 힘이며, 우리의 힘이다. 이 책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프로덕션, 극단, 방송 구성 작가, 번역 등의 일을 하며 이제는 ‘떠나고 글 쓰고 다시 떠나는’ 삶을 사는 조병준이라는 작가가 글을 썼다. 작가는 책의 앞머리에도 그 동안 이 책이 나오기 까지 자신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해준 유럽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책에서 그는 매그넘의 사진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써내려갔다. 왜 자신이 이 사진을 선택했고 이에 대한 의문들과 아쉬움들을 토해낸 글귀들은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층 친근하게 다가오는 말투일 것이다.

개성강한 사진들 만큼 그 전에 보여주는 제목들도 각양각색의 느낌을 담고 있다. “엄마, 울지마 내가 크면 큰 집을 지어줄게.” “오 형제여! 먼길 함께 걸어온 형제여!”. “당당하게! 눈을 내리지 말고! 마주보라!” 사진을 보기 전부터도 왠지 따뜻하고 감동적인 사진을 기대하게 만든다. 한편 “미안합니다...I am sorry...” “메마른 대지에 비를 내려라!”. “낡은 사진 한 장, 그리고 눈물” 이와 같은 제목들은 왠지 사진을 미리 보기 전에도 절로 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분노가 우리의 도덕률이 될 때가 있다.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왜 ‘정당한 분노’라고 지었을까. 이 책에 담긴 매그넘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참혹하고 애처로운 시선을 담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들도 하나 같이 아프거나, 슬프거나, 고통스럽거나. 사진의 배경부터가 소위 미개발지, 분쟁지역 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보는 독자라면 누구나 화를 내고 이 세상의 ‘가려진 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정당한 분노’가 아닐까.

얼마 전에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를 봤다. 영화에서는 전쟁이란 자신이 직접 경험했을지라도, 혹은 경험하지 않았을 지라도 전쟁에 대한 자신만의 ‘기억’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개인에 따라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어쩔 때는 가짜가 진??고 전한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이 사건들에 과연 어떤 기억을 전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영역으로 남을 테지만, 바라건대 가짜기억은 물러가고 왜곡된 기억은 바로잡아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