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드라마.
 - 인간이 신을 불러들였다.

"인간의 약점을 보완한 존재자 신이다. 자신의 유한성을 알게 된 인간은 신의 모습을 우선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상정한다. 그 다음에 자신의 유한성의 반대편에 자신과 닮은, 하지만 자신의 콤플렉스를 벗은 모습을 상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약점인 죽음을 삭제한 모습이 신이다. 그래서 신은 이제 인간을 닮은 무습이되, 죽지 않는 인간이다. 이렇게 신과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죽음으로 나뉘어 진다" 

"이제까지 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힘은 인간의 한계, 즉 죽음과 끈을 신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죽지 않는 존재와 죽는 존재의 차이, 그것이 신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다. 이러한 신들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인간이므로 어떤 인간이 신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신의 세계는 달라지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모든 신화와 관련된 책들은 신이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인간이 신을 만들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신화'라는 단어 자체는 신들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니, 인간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세계일 뿐이다"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신화 드라마. 말그대로 신화라는 말은 인간이 만들어 낸 말이다. 절대불멸의 삶을 사는 신이란 존재가 인간에게는 이루지 못할 꿈이 듯이.  

책 소개에 앞서 이 책의 저자를 살펴보았다. 최복현씨. 저자는 초등학교 이후로 늘 독학을 해왔다고 한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며 불어교육과 불문학 쪽으로 학위를 땄다. 그 뒤로 시와 수필을 써서 등단하면서 주로 인문학 관련 서적을 출판했다. 현재는 문화센터에서 강의도 하고 신문에 연재도 하면서 글쓰기와 인문학을 전하는 데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그의 소망은 '인문의 대중화'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그리스 신화 계보도는 마치 저자의 숙원사업처럼 여겨졌으리라 생각한다. 

어려서 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것이다. 한번 듣고 외우지도 못할 듯이 길고 어려운 이름과 국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복잡한 그들의 관계. 왜 그렇게 많은 신들이 등장하는지 신화를 읽는 동안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어렵고 머나먼 이야기로 간주되면 이 그리스 로마 신화.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에 잘 정리된  '그리스 로마 신화 계보도'를 첨부하면서 그야말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신화 드라마를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계보도 전지를 펼치는 순간, 정녕 저자의 노고가 느껴질 만큼 그 계보도의 꼼꼼함 수준이 가히 놀라웠다.

 이책은' 신화의 발견'에서 신이 무엇인지, 그리스 신들의 족보를 소개하고, '그시르 신들의 탄생과 계보'에서 시대별로 1세대 신들부터 차례대로 소개한다. 그리소 '신의 후예가 세운 인간의 나라'에서는 아테네 왕가, 미노스 왕가, 트로이 왕가 등 우리가 익히 들어봤음 직한 왕가와 가계들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참으로 알찬 구성이다.

 이 책은 얇고 가볍다. 생각보다 부담없이 읽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읽다보면 그렇게 녹록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전해주는 '신의 이름이 가진 의미'나 '신들의 마을'과 같은 이야기들은 물론  실제 신들과 신화의 배경이 되는 곳의 사진과 그림들을 함께 게재해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책은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가 원했던 대로 '인문학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로를 쌓지 않을까 기대되는 책이다. 기존에 나왔던 수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들 보다 막강한 '계보도' 1장이 이 책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넌 다섯 명의 남자랑 관계를 갖는 거야? 두명 더 채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버라이어티하게 살지 그래? 무슨 남자가 요일 팬티도 아니고..." 

"요즘 같은 현대사회에서 남성이 지는 책임이 뭐 그리 대수냐고 들이댈 수 있다. 혹은 여성운동가들은 남성의 책임이란 말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수컷들과 살아본 여자들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열불터지는 일이라는 것을."

 "발칙. 발정, 발랄한 다섯 남자와의 섹스에서 하나의 온전한 사랑을 구하다"  

책을 집어들고..나는 이렇게 도발적인 문구를 생각해낸 저자가 궁금했다. 이책의 저자 최은미는 이화여대 법학과 출신으로 인도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이주여성상담소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Beyond the Boundaries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이 약력만 봐도 저자가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저자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숨쉬는 그런 책.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말을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불쾌했던 기억들은 쉽게 잊혀지는 경향이 있다고. 그러나 진화심리학은 다르다고 한다. 유쾌했던 경험과 불쾌했던 경험 두 가지 모두가 잘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그때의 느낌이 강렬했기 때문이라고. 한편 다윈은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이론이나 원칙과 배치되는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것들은 불쾌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이 주장은 프로이트와 진화 심리학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책에는 영어선생인 노처녀 라니, 호기심많고 순진한 재순이, 룸메이트 상칠이, 그리고 정인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친한 친구들끼리의 모임명을 ’호니 걸스’로 짓자고 얘기하는 것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한남자만을 만나는 재순는 다섯 명의 남자를 만나는 친구들과 비교가 된다.  

아주 일상적인,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약간은 가볍고 수다스러운 이 여자들의 대화.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에게도 마치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을 보면서 내 친구를 떠올리기도 하고, 내 자신을 비추어보기도 하고. 아주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연애소설이다. 소위 칙릿이라고 하는 소설. 

가끔씩 이런 책을 읽으면 느끼는 것이 있다. 왜 여자들의 연애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은 하나같이 이런 ’가벼운 여자’이미지를 표방할까. 마치 억눌린 감정을 토해내듯.. 이와 같은 칙릿 소설에는 소위 ’잘나가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깃들여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남자를 쉽게 만난다던지. 여럿 남자를 동시에 만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쿨하게.  

읽는 동안은 키득키득. 재미가 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이들을 만나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너무 이율배반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조금더 색달랐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굳이 남자를 여럿 만나지 않아도 멋지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신감 있는 여자들의 ’발칙한’ 이야기였다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문구만이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문구도 있었다면 . 연애소설을 넘어 더 큰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