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작년말 끝을 보고도 몇 일동안 쉽게 마음에서 내려놓질 못했던 책, 그리고 처음 얼마 읽어내려가지 않았던 순간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줄곧 어떤 강박관념 같은 것이 절 괴롭히기도 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이 책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단 한 사람을 위하는 일일지라도 이 책의 리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꼭 제대로 써야지!'라는....
그런데... 너무 많은 생각과 의무감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일까요?
'제발 써, 얘기를 해...' 속삭이듯 끝도없이 저를 충동질하던 그 충만했던 의기충천의 결의들이 오히려 컴 앞에만 서면 어떤 족쇄가 된 듯 좀처럼 생각의 실타래를 풀지 못하게 억누르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만드니 ... 그렇게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마음속의 얘기는 단 한 단어도 내뱉지 못한채 그냥 덮어버리고 만 책이었는데....
어제 우연찮게 몇 달 전 사진들을 정리하다 전혀 다른 부류의 파일속에서 낯설은 방문객마냥 조용히 숨어있는 이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 표지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요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故 장자연씨의 성상납 리스트'가 머리속에 떠오르더라구요. 저명 인사의 탈을 쓰고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금과 같은 인물들처럼 맹활약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 멋진 가면 뒤에선 짐승들조차 안하는 인간 이하의 파렴치한 만행을 번듯이 자행하면서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아주 뻔뻔스런 악마들(개인적으로 이런 이들은 인간의 부류에 절대 포함시키고 싶지가 않네요).
사건의 추이도 추이지만 이미 인터넷상에서 진위 여부를 떠나 그 실명이 거론되어진 인물들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사건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제대로 판결이 나오리란 기대는 애시당초 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뻔한 스토리의 사법부의 판결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이란 것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그네들 스스로가 그 치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끝내 그 치욕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 만행을 사회에 폭로하고 위안받고자 했던 고인 장자연씨. 그녀처럼 죽음까지 불사하진 못했지만 역시나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에 스스로가 등을 돌리며 평생을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과 동료들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까지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변호사 김용철씨.
아마 두 사람 모두 이렇게까지 병들고 무기력한 사회이고 법망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젋은 생명을 저버리면서까지 내지른 절규인데, 본인의 열정과 젋음과 인생을 고스란히 받친 두 직장과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과 독기서린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을 극한의 고통으로까지 내몰면서 발표한 진실이고 현실인데....
故 장자연씨와 김용철씨 모두 자신들의 인생에서 모든 걸 잃을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진실을 토로하고 엄청난 양심 고백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자신들의 희생이 가져올 사회적인 파장이 어느 정도는 변화의 바람에 도화선이 될 거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단한 폭탄 발언들이 가져온 결과라는게 아주 잠시나마 개울가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지나가는 순간의 바람에 불과했으니....
법의 두 얼굴을, 그 가면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설친 두 사람의 순수한 아둔함만을 탓할 수만도 없는 너무도 씁쓸하기만 우리 사회의 현 주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제목처럼 우리 나라를 넘어 세계로까지 뻗어있는, 대한 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에 대해, 그리고 삼성이란 그물망에 걸려 그들의 손아귀(?)에서 때론 의도치 않는 꼭두각시 역할까지 하고 있는 우리 사회와 국가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보고 딛고 넘어서야만 할 문제들이 빼곡히 가득차 있는 책입니다. 그만큼 담겨져 있는 내용들은 아주 철저히 외면하고 싶은, 아니 어쩌면 이미 우리 모두가 수위만 다를 뿐 어느 정도는 다 알면서도 묵과하고 있었던 사안이기도 하기에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책의 저자이면서 동시에 대부분 사건의 핵심에 서 있기도 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흑과 백이란 극과 극의 이중적인 잣대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못생겼다고 탓한다'.
책 속에 나와 있는 한 구절인대요. 제가 구구절절 이 책의 내용(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삼성가의 비리들)을 언급하지 않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달'을 직시할 것인지 아님 그걸 가리키는 '손가락'만 볼 것인지.... 그건 오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각자의 몫이자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책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그렇다고 강한 추천의 이유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어정쩡한 리뷰를 쓰면서까지 이렇게 뒤늦게나마 조심스레 이 책을 여러분들께 펼쳐보이게 된 건.... 다만 김용철씨의 이 말 만큼은 꼭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때문이었습니다.
.... 썩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현실 앞에서 체념하고 냉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다 그런 거지"라는 체념과 냉소 속에서 부패는 관행이 되고,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구조가 된다..... 한번 기울어진 법의 저울은 계속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한쪽에 관대한 법의 저울은, 다른 쪽에는 지나치게 가혹해지곤 한다.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권력층에 연줄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 <삼성을 생각한다> 분문 중에서 -
2년여만에 다시금 대한 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장자연씨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저의 반응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다 그런 거지... 아는 것도 모르는 척, 이미 있는 사실도 없는 척.... 돈 앞에서, 권력 앞에서 다 덮어주고 뭐 뻔한 거 아니야...' 그렇게 아무런 기대감도 없이 그저 이번에도 잠시잠깐 일어난 폭풍은 주변의 작은 먼지나 살짝 건드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조용해질거라며 차가운 냉소만을 날렸더랬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저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반응... 저처럼 이런 식으로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며 자신도 모르게 부패의 공범이 되어 우리 사회의 관행으로 구조로 더욱 굳건히 부패를 키워나가는 우리들의 모습..... 그것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제가 조용히 이 책과 함께 고인이 된 장자연씨의 아픔을 가슴으로 새기고 있는 이 시간에도(어느덧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네요)... 아마 그 리스트의 대단한(>.<) 인물들은 그 옛날 삼성이 그러했듯 엄청난 돈과 권력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입막음하기 위한 계략의 시나리오를 짜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겐 언제나 그렇듯 돈과 권력, 인맥이란 든든한 방패가 둘러져 있을 테고요.
장자연씨 사건이 다시금 들춰보게 만든 책 <삼성을 생각한다>.
할 수만 있다면 앞의 두 사건에 드라마 <싸인>과 영화<Taken>과 같은 결말을 안겨주고 싶습니다.
아직 마지막 한 회를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싸인>의 그네들처럼 올곧은 사명 의식과 직업관으로 무장한 법조인, 경찰, 그리고 이 사건과 관계된 많은 주변인들의 열정과 끈기, 냉철한 판단이 그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김용철 변호사의 용감한 고백이 적어도 망언으로 빛바랜 야사로 무의미하게 흩어지지않게 제대로 된 수사와 판결을 통해 우리에게 '당당한 법의 위엄'이란 것이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님 일당 백으로 싸워도 끄떡않고, 모든 난관도 척척 해결하며 마침내 납치된 딸 앞에 그 든든한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한 마디 약속을 굳건하게 지킨, 영화 <Taken>의 전지전능한 아버지 리암 니슨과 같은 누군가가 그들을 철저히 벌하고 이 사회에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뒤틀리지 않는 '합리적인 이성의 법'과 정의를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잔인한 사건, 사고들은 그 환상의 벽을 가볍게 뚫고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에서도 엄연히 자행되고 있는데 왜 결론만큼은 현실과 영화&드라마가 현격히 다를 수밖에 없는 건지.... 그 통쾌한, 기분 좋은 결말을 현실에서도 기대해 본다는 게 그토록 무리한 욕심인걸까요? 그저... '無所不爲(무소불위)'의 잘못된 권력이 적어도 법 앞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활보할 수 없는, 그 누구에게나 법은 평등하고 죄 지은 자들은 당연히 죄값을 치를 수 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의 심판과 위용을 바라는 것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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