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전략을 적절히 수행하는 것은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만약 이 게임이 그처럼 단순하다면 돈만 많으면 누구나 회사의 경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보다는 제대로 된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46 페이지)

작년 가을 상당히 갑작스럽게 사이버 대학에 출강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스를 가르치고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좁은 스튜디오 안에서 카메라 한 대만을 두고 강의를 하려니 처음에는 어찌나 식은땀이 나고 발음이 꼬이던지, 첫 녹화 때 실언한 것으로 재미있는 어록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어이없는 실수들이 많았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지 이제 만 3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언어에 그렇게 큰 자신이나 자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았고요. 다행히 학기가 지나면 지날 수록 조금씩 익숙해지긴 했는데 자신의 강의를 모니터하면서 "내가 저렇게 안좋은 습관이 있었나?", "너무 발음을 우물거리는데" 혹은 "저런 행동이나 말버릇이 정말 신경쓰이는구나" 등 정말 다양한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보면서 아쉬운 점이 참 많더라고요.

그 후 서점을 오가면서 우리말 발음을 연습하거나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책들을 찾았는데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답니다. 아나운서나 성우 학원이라도 등록하지 않으면 안되나 실망하다가 듣게 된 신간소식! 이미 우리들에게 여러 "국민 프로그램"으로 익숙한 정용실 아나운서가 <혼자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기>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굳이 아나운서에 지원할 것은 아니어도 제대로 말하고 카메라 앞에서 능숙해지고 싶은 저에게는 정말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었답니다. 그야말로 "어머, 이 책은 읽어야 해!" 였죠!

아나운서는 뉴스 읽는 기계가 아니다

뭔가 우리말 발음에 대해서, 목소리 관리에 대해서, 또박또박 읽는 법에 대해서 읽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한 후 꽤 오랫동안 기대했던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뭔가 목차를 보았을 때는 이게 아니었는데, 혹시 책의 내용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저자는 초반에 꽤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합니다. 어떻게 아나운서가 되었고 어떤 시련과 역경에 마주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나운서가 된다" 정도의 비결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저자의 이야기는 자신조차도 오해하고 있었던 (혹은 잘 알지 못했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가지는 비중과 의미, 그리고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필자가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20여 년 내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20 페이지)

우리는 흔히 아나운서라고 하면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전형적인 미인의 얼굴을 가진 (그리고 늘씬한 몸매를 겸비한) 여성을 생각하곤 합니다. 글을 또박또박 읽을 수 있으며 우리말과 발음에 능한 그런 사람 말이죠. 저자는 바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담긴 진정한 가치와 소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방송 생활과 여러 방황, 대학원 과정을 통해 깨달은 방송인으로써의 비전은 아나운서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그 이상의 지성과 인성을 가져야 한다는 배움을 가져왔고, 이후 그녀는 멘토의 입장에서 여러 후배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아나운서가 사회적으로 가지는 고유의 의미와 의식변화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답니다. 단지 외적인 요소를 보고 아나운서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보다 더 큰 내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아나운서 정용실, 인간 정용실

언제나 깔끔하고, 아름답고, 완벽해보이는 아나운서의 모습만 보고는 그들의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너나할 것 없이 “후천적 미인”이 되는 요즘 세상에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부터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아나운서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차세대 아나운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준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들어진 완벽함이 아닌 내실있는 방송인이 되는 것. 아나운서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당장 공채에 합격하거나 뉴스를 읽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을 개발하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으며 스스로를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아나운서의 자질들 대부분은 사설 학원 등에서 ‘일정 기간 동안’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 어디에서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삶’이란 엄혹한 현실에서 배울 수 있다. ‘위기 대처 능력’이란 것은 어떠한 힘든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고도의 집중력에서 나오고, ‘공감’이란 사람을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나오며 방송에서 구사하는 ‘언어’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읽고 쓰고 말하고 들은 것들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나오는 적나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72~73 페이지)

어렸을 때부터 외향적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카리스마 있게 나서는 것을 좋아하던 저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운서로써의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수많은 역경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이 과연 자신의 길이 맞는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조금 더 나은 자신’을 계획하고 꿈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녀는 그제서야 방송이, 아나운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문이 하나가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이 보였다. 그리고 한길을 가기 위해 때로는 다른 문들을 슬쩍슬쩍 넘겨다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의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이 사실만은 전해주고 싶었다. (38 페이지)

혼자서 어떻게 아나운서 준비를 할까?

아나운서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쓰여진 이 책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실질적인 테크닉이나 방법보다 내면의 자아를 깨닫고 자신을 계발하는데 할애하고 있지만, 그 후에는 기다리던 본격적인 아나운서를 향한 트레이닝이 시작됩니다. 물론 말하고 듣는 음향적인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려니 상당히 많은 부분에 있어 타협하고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글자의 색상이나 기호(예를 들어 크게 띄어 읽기 혹은 들숨, 날숨 등)를 사용하여 상당히 효과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확실히 이 부분에서 그간의 교육 경력이 빛을 발하는 듯 했습니다. 절대적인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읽어도 조금만 생각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이러한 발음이나 예문에 있어서 해당하는 MP3 파일이 담긴 CD가 첨부되어 있거나 QR 코드로 인터넷 상의 음원 파일을 들을 수 있다면야 더욱 좋았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단순한 경제/행정적 문제가 아닌 “스스로 연습하고, 깨닫고, 해내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의도에 의해 생략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생각하던 “볼펜을 물고 발음을 연습하는 것”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는데, 확실히 사람에 따라 의견 차가 나겠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믿고 있다 해서 무작정 따라할 것은 아니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이어트를 할 때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겨우 하루 이틀 열심히 운동하고 적게 먹어놓고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해 비정상적으로 운동량을 늘이거나 (혹은 너무 적게 먹거나) 아니면 지쳐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고, 수치화 할 수 없는 아나운서 트레이닝의 특성상 독해나 발음, 리딩 연습 역시 이러한 비건설적 패턴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매일 매일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데 천리 길을 한 걸음부터 가기에는 마음이 앞서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루 연습했다고 얼마나 전과 달라지겠는가?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앞서 듣지 않았는가. 설사 시행착오를 겪게 되더라도 도망가거나 피하지 마라. 다시 자리에 앉아라. 오늘이 쌓이고 하루하루가 쌓여야 제대로 된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있을 수 없다. 계단을 올라가듯 한 계단 한 계단 차분히 올라가는 것이다. 한 계단 한 계단, 건너뛰지 말고 차근차근 밟으며 올라가야 한다. (78~79 페이지)

생각해보면 결국 음악도, 방송도, 세상의 어떤 일도 똑같지 않나 싶습니다. 당장의 이익이나 성과에 얽매이다 보면 발전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은 마치 흩날리는 눈송이와 같아서 땅에 내려앉자 마자 사그라드는 것 같지만 그 작은 알갱이가 쌓이고 쌓이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말을 잘 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나서고 싶으면서도 실질적인 노력은 거의 전무했던 자기 자신을 반성해보는 계기도 되었답니다. 더불어 구체적인 발음과 독해 능력을 향상시켜야겠다는 결심도 했고요. 원하던 여러가지 지식과 함께 (굳이 아나운서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조언을 얻었던 유익하고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어차피 크게 성공할 것도, 실패할 것도 없는 인생인데 무엇이 두려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랴. (44 페이지)

어렸을 때 이상하게도 열 일곱이라는 숫자가 좋았습니다. 뭔가 아름답고, 멋진 숫자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지만 왜인지 열 일곱살이라고 하면 "어른"이 된 것 같은 이상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를 위한 20권짜리 세계사나 한국사 책을 볼 때도 유독 17번째 책을 즐겨 읽었고 좋아하는 숫자를 고르라고 할 때면 망설임없이 17을 선택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막상 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른은 커녕 사춘기조차 제대로 겪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좀 당황스러웠답니다. 남들은 반항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나이였지만 저의 생활은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사춘기라고 할만한 때는 20대 초반이었고요). 전혀 자란 것도, 나이가 든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 "그 나이 정도면 중년이지!"라고 발칙하게(?) 이야기했던 30대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닥 철이 들었다거나 어른이 된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 뿐만 아니라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대적인 나이의 인식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변화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이제는 환갑을 축하하는 것이 무안할 정도로 평균연령이 높아졌습니다만 정확하게 이것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와 의미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입니다. 예전 진시황은 그렇지 않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무작정 오래 산다는 것이 좋은 일일수만은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진시황 역시 늙어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영원한 젊음을 꿈꿨겠죠).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보장되지 않은 청년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준비된 노후란 무엇일까? 흔히 보험회사 선전처럼 틀에 박힌 "그러니까 지금부터 돈이나 모으십시요"가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80세의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놀라운 저력의 아이콘, 이시형 박사님의 신간 <인생 내공>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길~어진 인생.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흔히 "100세 시대"라고들 합니다. 기대수명이 크게 길어지면서 각종 보험들은 온갖 보장과 수익을 내세우며 끝없는 공포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끔씩 걸려오는 보험가입권유 전화에서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제 준비해도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에는 늦은 편"이며, "아마도 50대 후반, 60대 초반에 은퇴를 할텐데 그 후 약 4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솔깃하여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수익 모델과 보험 회사의 생태를 점점 알게 되면서 그것 역시 절대 안전한 노후 준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러시아에서 오래 사신 어떤 분께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때 당시 상대적으로 우울증 발병 빈도가 높고 회의론자들이 많았던 러시아 사회를 분석한 결과 그들의 심리상태가 이른 결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우리나라의 평균 결혼연령대가 20대 후반이었던 그 시절, 러시아에서는 20대 초반, 심지어는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어떻게 보면 어른이 되고,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특히 자식으로) 관심사가 넘어가는 시점이 너무나도 빠르게 찾아왔고, 이로 인해서 러시아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빨리 '노화'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 이야기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 만큼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우리들 역시 이러한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50대에 손주를 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당연했고, 당사자들 역시 "조부모"라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던 문화였지만, 지금의 50대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가 되기에는 너무도 젊고 역동적인 세대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후에는 은퇴하여 그저 손주들의 재롱을 보는 것이 낙인 것 역시 "옛 문화"가 되었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조부모 세대"가 등장하였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활력이 넘친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길어진 기대수명이 매몰찬 반전 포인트가 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 때문입니다. 

장수가 축복이 되느냐 재앙이 되느냐는 준비하기에 달렸다. 준비되지 않은 장수는 재앙이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나라에도 큰 짐이다. 2012년 한 해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출한 진료비가 16조5천억 원이다. 전체 국민 진료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20 페이지)

흔히 노후를 준비한다고 하면 달마다 꼬박꼬박 받게 되는 연금이나 아플 때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보험 정도를 생각하지만 이시형 박사의 책을 읽고 있으면 이러한 발상 자체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어진 수명에 대한 대책을 엄한 데서 찾고 있다는 것이죠. 은퇴한 후 진짜 40년의 세월동안 매 달 어느 정도의 연금을 받으면서 병원만 잘 갈 수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할까요? 그런 시간을 꿈꾸는 것 자체가 이미 "은퇴한 이상 나는 밥과 시간을 축내는 무력한 존재"라는 가치관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중년, 그 놀라운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린 시절에 "나는 빨리 중년이 될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빨리 어른이 될거야"라고 생각하는 정도이지 이미 피부 노화가 시작되고 기력도 청력도 점점 떨어져 가는 중년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화는 절대로 부정적이거나 괴로운 것이 아님을 이시형 박사는 강조합니다. 오히려 중년이 됨으로 인해 깨닫게 되고, 성장하게 되고,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불행들로 인한 상처도 많다. '집이 가난해서', '부모가 이혼을 해서' 등등.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도 한 사람의 성장기에는 큰 그림자를 드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상처들조차 씻고 낫게 하며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그것이 충년력이다. 신중년은 젊은 날의 독소를 스스로 씻어내는 데 성공한 멋진 나이다. (59 페이지)

솔직히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염치없는" 중년과 노년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처음에는 선뜻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유교 문화가 교묘하게 퇴색되어 그저 한 그릇이라도 밥을 더 먹은 것이 마치 벼슬인양 행동하는 일부 사람들로 인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곧 "몰상식하고, 염치없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중년"은 그저 물리적인, 신체적인 나이만 먹은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자신의 나이와 위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 배우고 발전하는 지혜로운 세대를 뜻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상처는 아물고 더욱 넓은 세상을 보며 젊은 시절의 특권(?)인 흑백논리를 초월하게 되는 것.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관록을 가졌기에 더욱 겸손하게 되는 그러한 세대를 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해야 하는 것" 만큼이나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저자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생을 지식인으로써 연구하며,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온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지기도 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치 자식이나 손주들을 향해 애정어린 뼈있는 말을 던지듯, 때로는 강력한 "NOT TO DO"도 등장합니다. 

여유가 있는 노인들까지 '공짜니까' 하면서 혜택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받기를 너무 바라지 마라. "나 여행 좀 안 시켜 줄래?", "나 용돈 좀 안 줄래?" 이런 말 남발하지 마라. 이걸 '안 해줄래 지수'라 부른다. 그리고 이게 높으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는 일이다. (99 페이지)

다고다고 하며 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진상"이라고 욕하곤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친구니까, 가족이니까, 정으로 받고 주려고 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변질되어 때로는 "내놓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이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나쁜 마음보다도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한 것과 나이가 들었다는 것에 대한 자기연민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늙어서 그래" 혹은 "늙으면 죽어야지" 등의 근거없는 넋두리 역시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세포는 유일한 예외로써 증식을 한다는 사실이 발견된 점이다. 머리는 쓸수록 좋아진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단, 해마의 신경세포가 증식하려면 기분 좋은 자극이 주어져야 한다. (196 페이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기억력이 쇠퇴하고 머리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 시절과는 달리 머리를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이시형 박사의 <뇌력 혁명>을 통해 설명한 바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대로 해마의 세포는 죽는 그 날까지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나이에 무슨…" 하며 새로운 도전을 무마하려는 변명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삶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시기가 유년기와 청년기라면 중년에 들어서서는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모든 것이 빨리 빨리 지나가는 청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고요함과 가치를 알게 되는 중년의 시기는 그로 인해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대와 20대에 경쟁사회에서 치여 즉각적인 성과와 점수를 지향해 왔다면 중년에 들어서서는 그보다도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다. 남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다. 남을 수용하는 것은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대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냥 다르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이런 태도가 가능해지는 것도 나이의 힘이다. (118 페이지)

더욱 찬란한 후반전을 준비하라

사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로 이미 잘 알려진 이시형 박사와 문화인류학자인 이희수 박사가 공저한 책입니다. 전반적인 글에서는 이시형 박사의 문체와 내용이 묻어나지만 때때로 이희수 박사만의 조언 역시 등장합니다. 사실 이 두 저자의 만남은 의미심장합니다. 최초의 한국인으로써 이스탄불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희수 박사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아온 이슬람 문화에 정통한 이희수 박사야 말로 "다름과 틀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떠한 사회적 현상을 색안경을 끼고 원하는 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분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이시형 박사의 연륜과 오래된 연구가 결합되어 <인생 내공>이 탄생하였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진심으로 (아마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 어떤 모습의 나 자신을 기대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혹시 나 자신이 바란다고 착각하고 다른 사람의 바람과 욕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에요.

거울을 보라. 그 안에 내가 있다. 매일 새로운 나를 발견해 보라. 나는 이발을 하거나 새 양말만 신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삶을 행복하게 살려면 일상의 사소한 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98 페이지)

태어나서 50세까지가 인생의 전반전이라면 50세부터 100세까지는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경기를 어떻게 시작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마지막까지 어떻게 플레이하느냐가 더 중요한 축구 매치처럼 인생이라는 필드에서 롱런하기 위해서는 당당하고도 확고한 중년의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중년과 노년들이 방향을 잃고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 역시 전반전을 힘있게 달리고 난 뒤 막상 후반전에는 어떠한 전략을 쓸 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 역시 과연 인생의 후반전을 어디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입시를 준비하고 졸업을 할 때 만큼이나 치열하고 열성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습니다. 지난번 <뇌력 혁명>도 그랬지만 이번 <인생 내공> 역시 80년의 농축된 지혜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네요. 앞으로도 더욱 활발한 신간활동을 기대하고, 또 응원합니다!

목표가 있을 때 삶에 대한 확신과 의욕도 커진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순간도 소홀히 보낼 수가 없게 된다. 목표가 이루어지기 전엔 늙어도 안 되고 죽어도 안 된다. 목표가 내 머릿속에 분명히 살아 있는 한 우리 뇌는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10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