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이렇게 다양하고도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있었던 적도, 아주 어린 나아에서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던 적도, 인터넷과 글로벌 시대로 인한 다양한 기회가 제공되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만큼 위태롭고, 끊임없는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청소년들 역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청소년기의 위험이라고 한다면 그저 "좋지 않은 친구"들로 인한 탈선이라던가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중학생, 심지어는 초등학생까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뉴스로 접하곤 합니다. 모든 것이 전문화되고 발전하였지만 실제로 세상이 그로 인해 좋아졌다고 생각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악한 아이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렇게나 이기적이고 자기만 사랑하며 악랄하게 다른 사람을 괴롭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이 딱 벌어지는 사례를 심심찮게 만나게 됩니다. 아직까지 제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그런 아이들이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해질 정도로 말이죠. 반면 그렇게 "험악한" 아이들의 정반대인 학생들도 많습니다. 스스로는 어떤 것도 결정하거나 생각하기 어려워하는, 사유하는 힘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볼 때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도해주어야할지 난감해지곤 합니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의 행복한 정도를 생각한다면 공부를 잘하는 것도,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것도, 돈이 많거나 적은 것도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인성이 사라진 시대"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는 시대. 그리고 피해자가 제 2의 가해자로 변해가는 시대. 모두가 잃지 않기 위해 공격하고 짓눌러야 하는 그러한 경쟁 사회는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 될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가치관과 개념을 심어주고 있을까요? 끊임없이 재고 겨누고 경쟁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그들이 무엇을 배우고 따라가게 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 그리고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고민해보게 되고요.
사실 이것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체적인 나이만 먹었다 뿐이지 정신적으로 전혀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온갖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낸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요즘 안드로메다 별이 참 살기 좋다고들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부터도 과연 나의 인성은 얼만큼이나 성장했는지, 어른이라고 할 만큼 혹은 창피하지 않을 만큼 갖추고 있는지 되돌이켜보게 됩니다.
시대가 이렇다보니 몇년 전부터 이른바 "인문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식자층을 중심으로 이제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식과 학문보다 인성을 기를 수 있는 고전 인문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겠다는 것이었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정작 그 책을 읽고 반성하고 사유하는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정작 진짜 인성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아직도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오히려 여기저기서 인문, 인문을 외치다 보니 오히려 더 무감각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 소식에 가슴이 쿵쿵 뛰었던, 다른 인문학 책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꼭 읽고 싶었던 책이 있습니다. 중국 칭화대에서 1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로 꼽히는 강의, 지칠대로 지치고 물들대로 물든 지금의 현대인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신"의 존재를 다시한번 상기시켜줄 "수신의 길", 팡차오후이 교수의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소개합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유
"지금 당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곧바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물론 원동력은 다양한 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20년은 남은 주택대출을 상환하는 것일 수 있고, 사랑하는 배우자나 아이들일 수 있으며, 현재 종사하고 있는 자신의 직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난 후에는? 혹은 그것이 절대 이룰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정답이 없는 만큼 이 문제를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도 없겠지만 저자는 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삶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즉, 자기 자신의 삶이 목표이며 목적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죠. 매일 매일이 전쟁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은 삶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는 주로 마음에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긋하게 일을 처리할 시간을 줄여 그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데에는 중요한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의 일을 끝내는 동시에 또다시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고, 연이은 일에 파묻혀 자신을 잊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인생은 어느 단계에서나 현재를 다른 더 중요한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만 여기게 될 것이고 어떠한 순간에도 과정을 즐겁게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50 페이지)
실제로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그들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구조"에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일류기업에 입사하는 것. 뮤지션으로써 성공하는 것 등의 목표는 그 성공여부가 스스로의 행복과는 겨우 미미한 관련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대학에 합격했거나 취직이 되었을 때는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기쁘고 행복하겠지만 그러한 상태는 그 전의 노력에 비해 너무도 짧고 순간적일 뿐입니다. "이것만 되면 소원이 없겠어!" 하며 갈망하고 소원하는 것은 마치 그것만 성사되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비현실적이고도 무서운 오류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왜 살아가는 것일까? 무엇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가치관과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제각기 다른 자신만의 가치관과 목표를 찾는 것입니다. 저자는 수신이야말로 이렇게나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의 수신은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한다"는 뜻으로써 내면의 고요를 찾아 외형적인 자신이 아닌 내면의 자신을 깨닫고 수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양철학에 바탕을 둔 저자의 주장은 자칫 종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내면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에 있어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그러한 자아성찰(강의에서는 그것을 "정좌" 혹은 "정양"이라 합니다)이야말로, 정확히 말해 자아성찰을 가질 수 있는 여유와 가치관이야말로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한번도 배우지 못했던 인성을 다듬는 길이라는 것에는 비판의 여지가 없어보입니다.
당신은 왜 행복합니까? / 당신은 왜 불행합니까?
총 아홉 개의 챕터로 나뉘어진 이 책은 아홉 번의 강의의 요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강의는 하나의 대주제를 가지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전개되며 중첩되어 강조되는 부분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강의의 대주제는 물론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많은 개념들이 생소했던지라 마치 다른 언어의 책을 읽듯 수시로 사전을 참고해야 했답니다. 때로는 한 페이지에서만 열 개가 넘는 단어들을 찾아보고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열심히 읽어야 했고요. 물론 한국에서 지내지 않아 상대적으로 어휘력이 부족한 저에게 국한된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이 훌륭한 내용에 비해 읽기가 어려운지라 선뜻 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답니다. 몇천 년의 지식이 축적된 인문학 책을 소설책 읽듯이 주르륵 읽을 수야 없겠지만 반복되는 주요 개념들을 번역함에 있어 주석으로 간단히나마 설명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아홉 가지 주제들은 서로 다른 분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행복과 목표를 찾는 것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어려움을 느끼는지, 무엇에 고통받는지, 어떤 것이 견디기 힘든지, 그리고 왜 그런지를 차례차례 생각해보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자신의 불만이 때때로 전혀 다른 욕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난 후에야 제대로 대처하고 고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수신의 길이고 우리가 평생동안 노력하고 이루어야 할 숙제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프로이트는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것들은 쉽게 관찰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의 성격에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강력한 욕구를 반영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들의 행위 방식을 강하게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인의 잠재의식 안에 있는 욕망을 풀어놓으면 놓을수록 마음 깊은 곳의 억압은 점차 감소하게 되고 성격이 더욱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한 개인의 잠재의식에 자리 잡은 욕망이 한 차례 좌절과 억압을 받게 되면 그의 성격은 쉽게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 바로 인격 장애이고, 정신병입니다. (87 페이지)
살다가 보면 자신의 뜻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일 정도로 삶은 척박하고 고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삶의 환경으로 인해 정신병자가 되거나 인격장애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과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타협 안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요즘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 마치 내일이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밸런스가 잡힌, 안정되어있는 상태의 아이들이 오히려 드물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점점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곤 합니다. 오죽하면 북한이 가장 두려워 하는 집단이 중2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한채 똑같은 잣대에 갇혀 경쟁하고, 판단받으며 좌절하고 또 반항하기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점차 사회(혹은 부모, 학교)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립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 남들과는 다른 나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잃어가는 것이죠. 결국 비좁기 짝이 없는 "사회적 성공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모든 아이들은 낙오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살기 바빠 죽겠는데 신선놀음같은 인성에 신경쓸 여유가 어디있냐고. 하지만 <나를 지켜낸다는 것>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선놀음같은, 배부른 소리같은, 살아가는 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보이는 자아성찰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내 삶을 결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더 많이 일하고 더 높은 곳을 갈망한다면, 더 좋은 배우자와 더 큰 집, 공부를 더 잘하는 자녀와 더 비싸고 좋은 차를 원한다면, 또다시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는 굴레"에 자신을 가두게 될 것입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은 한번 읽고 "참 좋은 책이었어!"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수십 번 읽으면서 음미해야 할 것입니다. 미처 글로 표현되지 못한 깊은 뜻을 줄간과 자간 사이에서 찾으며 사유하고, 노력하고 또 수련하면서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돌아보고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