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의 빛깔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소설이었다. 검은빛이 감돌다 더없이 검어져 검푸른 빛을 내기도 하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점점 파랗게 시퍼렇게 변하기도 했다. 차고 맑음에 베일듯한 파란빛이 감돌기도 하고 핏빛으로 하늘이 물들기도 하며 끝내 희망을 품은 밝은 빛으로 변화하기도 하는 그 모든 변화를 담고 있는 소설이란 느낌이 들었다.

성능 좋은 알람이 몸의 한구석에 박힌 듯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것이 이 책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 때와 참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30초 광고에 한 제품의 모든 것을 담아내듯 책의 표지는 한 장의 그림으로 요약된 줄거리란 생각이 들 정도로 표지의 색감과 느낌이 정말 잘 들어맞는 10편의 단편소설이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 10편의 단편을 읽었지만 각각의 독특한 제목만큼 기묘한 이야기들은 '환상특급'이란 제목이 어울릴법한 영화를 본듯한 착각을 주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한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눈 쌓인 흙바닥을 뚫고 핀 봄꽃 같은 느낌의 소설이었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한 번 감탄하고 희망적이고 따뜻함에 또 한 번 감탄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캣 오 나인 테일즈... 충격적인 소재와 더욱 충격적인 결말에 소름이 돋기도 했으며 그녀의 뛰어난 묘사력에 나도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한 사람으로 참석해 있는듯한 착각마저 주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무엇인가 개운치 못한 기운이 오랫동안 남았다.

해피데스투유...제목에서 이미 나는 작가에게 반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죽음이 축복이 되는 이야기이다.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 다시 누군가를 죽여야만 죽을 수 있다는 처음부터 그러했듯 정말 독특한 이야기였다.

시선... 화자를 처음부터 알아버려 조금은 싱거운 감이 있었다.

하나의 심장...샴쌍둥이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데 반전에 조금은 심장이 조여드는 듯했다

그녀의 거짓말...그녀에게 많은 돈이 필요했던 이유도 충격이었지만 죽은 사람에게서 듣고 있는 이야기란 것에 이미 오싹해진 상태였다.

가장 많은 분량의 '안녕 나디아'는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을 그리고 있는데 살인이란 행위 자체보다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더욱 오싹했다.

점...3D영화로 제작된다면 노약자나 임산부는 관람을 금해야 할 것이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금단현상 중에 온 몸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환영이 보인다고 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온몸에 점들이 출렁이는 악몽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후기까지 재밌었다. 이 소설에서는 조금은 잔인하고 무서운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녀의 재능을 할머니께 돌리는 겸손함과 할머니 덕분에 본의 아니게 1000편의 단편소설을 쓴 작가가 되었다는 일화는 그녀가 재치 넘치고 유머러스한 인물일 것이란 확신을 주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 구매는 이미 나의 지름신과 합의가 끝난 상태이다.

 

책을 손에 들자마자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책 커버에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검은빛을 띤 붉은색 표지에서 커피 고유의 향이 날 것만 같았다.역시나 종이와 인쇄 약 냄새만이 났다. 파블로프의 개가 생각나 실소가 터졌다. 처음 마신 커피의 향과 맛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수많은 뇌 세포가 기억하고 있을 만큼 매혹적인 것 같다. 기억보다 무의식이 먼저 반응한 걸 보면 말이다.

 

친구와의 전화통화 중 쵸콜릿 묻은 파이를 맛있게 먹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파이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마시마로가 부풀어 오르려 할 때 꺼내 먹으면 쵸콜릿 케이크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고 했다.

다음날까지 계속해서 쵸콜릿 묻은 파이를 맛있게 먹는 법이 머리를 빙빙 맴돌았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의 글자도 눈앞에서 빙빙 돌았다. 겨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내 머리 옆에는 말풍선이 크게 하나 생겼다. 쵸코묻은 파이의 껍질을 뜯었는데 정작 나온 내용물은 오! 그래 파이!!!

제목만 보면 남자에 반대되는 성을 가진 여자에 대한 밀도 높은 심리서쯤으로 보인다. 물론 읽기 전 '아홉 여자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병들고 일그러진 단면과 그 속에서 여성이 교묘하게 억압받고 희생되는 얼룩진 현실을 보여준다'는 문구를 보았기 때문에 그것과 전혀 다른 단편들이란 것을 알았고 그러기에 더욱 끌렸다. 기대도 컸다.

그러나 읽기 시작하면서 마치기까지 계속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이 소설이 과연 여자라는 성별을 가진 사람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무엇으로 인한 억압이고 무엇으로 인한 희생이라는 것이지? 죽이는 자와 죽는 자가 있지만, 그사이의 고리는 과연 무엇이지?

전혀 의문에 대한 답은 구할 수 없었다. 그저 인간이란 큰 틀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는 궁색한 답으로 개운치 않게 마무리해야만 했다.

9편의 단편들 대부분이 미스터리한 도입부로 시작된다. 그러나 결말은 연관성의 부제로 처음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했다.

20대의 보안관 대리인의 성희롱에 가까운 장난으로 시작된 사랑 그리고 결혼... 결말의 살해... 이해력의 부족이었을까?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것일까?

미친 듯 사랑에 빠졌을 때 했던 일을 나중에 돌아보면 소스라치게 된다. 어쩌면 자랑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였을 리가 없어. 그때 그사람은 내가 아니야(p14)

이 문장 때문에 처음과 끝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억압된 여성? 희생된 여성?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이 여성에게 국한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

동생이 태어나고 모든 관심과 사랑을 빼앗겼다 느낀 아이는 아기를 질투하며 죽음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모의 시선을 끌려한다는 두 번째 단편.

의붓아버지는 딸을 성매매에 이용하고 딸은 성매매의 상대를 살해하는 단편은 소재는 충격적이었지만......글쎄 나라면 의붓아버지를 먼저 죽였을 것이다.

허영심 많은 여자의 비참한 최후... 허영심을 여자의 전유물로 본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무엇을 느껴야 할지 당황했던 단편이다.

허기란 제목의 단편의 한 구절이다.

이혼은 말도 안된다. 그 과정을 밟는 동안 참을성 없슨 애인을 잃게 되리라는 걸 크리스틴은 안다. 그리고 생명보험은 날아갈 것이다. 막대한 유산도(p213)

진부한 삼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살해 동기이다.

죽고 죽이지만 그 사이에 이유라는 것이 그리 유기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못했다. 또한 '여자'라는 단어가 꼭 필요하지도 않았다.

글자들이 눈앞에서 흩어지는, 집중하기 어려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