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앞에 두고 옛 이야기를 나누는 여러 이유 중에는 그런 그리움에 닿고 싶은 심정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리움을 나누는 시간이 또 다시 추억이 된다.

사는 재미에 그런 것도 있나 보다. 누군가에게 들려준 얘기가 한때 상대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내게 위안으로 돌아온다는 것. p58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보내온 감자 덕분에 비 오는 저녁이 더욱 운치 있고 따뜻해졌다. 물론 감자를 처음 먹어 본 것도 이보다 더 맛있는 감자를 먹어 보지 못한 것도 아니지만 '시골'이란 이름표를 달고 온 녀석들은 그냥 감자 혹은 그냥 고구마일 수 없다. 왜냐하면, 어렴풋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골의 따뜻하고 풍성한 느낌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묶는 글은 지었다기보다 주웠다 전하고 싶다

작가란 모름지기 세사 이야기를 주워 얻을 뿐 새로 짓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어린 시절 기역에서, 혹은 길에서 주운 얘기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옮겼다.

저자의 유년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과 일상을 담은 이 책의 이야기들이 그냥 '주운 이야기'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추억을 공유한 나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할 것이고 너무 생경해서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공상과학소설'만큼의 재미를 느낄 도시의 '시골'이 없는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너무 촌이고 형편이 어려워 연탄을 몰랐던 저자와 더는 필요 없게 되어 알지 못하는 도시의 사람들에게서 모순적이나 형성되는 공통점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의 제목은 지은이의 별명인데 '불로장생약'의 실험 대상이 된 동네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이 별명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태 망태 부리붕태 내리영태 그래서 영태가 되는 할아버지 나름의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전라도 고흥 전기도 연탄도 낯설던 어려웠던 시절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겉으로는 거칠고 무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식들을 위하는 아저씨 아줌마가 그의 아버지 어머니이다.

이야기 곳곳에서 저자의 유머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할머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재치있고 지혜로운 분이셨다.

한 달 가까이 두 권의 책과 씨름을 했다.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팩션이 대세인 요즘 익숙지 않은 장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걸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내린 결론은 '난, 드라마가 보고 싶었다. 드라마 대본이 아니라. ' 였다.

이번 소설은 무인도에 숨겨진 300톤의 황금을 찾아내기 위한 혈투와 모험이란 큰 줄기뿐만 아니라 막대한 정보가 수많은 가지를 치고 있는데 이것이 읽는 사람에 따라 즐거움이 될 수도 유익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많이 버거웠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 내용(정보)이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소설 속에서 소재로 국제, 정치, 경제 등이 양념처럼 적재적소에 자신의 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된다면 풍미를 더하겠지만, 국사책을 읽고 있는 듯한 혹은 경제 잡지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면 오히려 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대본의 지문을 보는 듯한 서술이 많아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1권을 읽다 보면 작가가 인물 설정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1권 대부분의 내용이 사건 중심이라기보다는 인물을 소개하고 부각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인물들의 국적만으로도 남과 북 그리고 한미일의 관계와 갈등 등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754번 홀로섬으로의 항해는 소설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험난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소설도 예상대로 진행되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고 긴 시간 고전은 했지만 나도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결국 사람들이 잘 살라고 하는 이유가 머겄냐? 다 잘 죽을려구 그러는 거 아녀.
좋은 삶은 좋은 죽음으루다 마무리 되는게여. (p119)

삶의 목적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 그리고 표면적인 더 좋은 사람...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이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더 좋은 마무리, 더 좋은 죽음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한층 가벼워짐을 책 속의 한 문장이 일깨워 준다.

유씨의 농담만으로도 재밌는 책이다. 생의 마지막,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삶의 또 다른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상한 책이기도 하다.

자살을 기도했던 여기자가 60년간 죽은 이들의 마지막을 인도하는 염쟁이 유씨를 인터뷰하면서 만나게 되는 죽음과 그것이 남긴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지키려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어서도 어머니가 죄책감에 매일을 보내진 않을까 걱정하는 조폭 아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을 남기고 간 이들의 죽음은 눈물이 마를 틈을 주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실컷 하자! 마음먹기도 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눈물의 양은 점점 줄어들지만 깨달음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

미련한 인간 이야기 하나 더 해주지. 자식이 아직 어릴 때 부모가 죽으면 자식에겐 슬픔이 남지만 철이 든 후에 연로하신 부모가 죽으면 자식에겐 후회가 남기 마련이야.(p82)

사람들의 죽음은 사랑을 그리움을 혹은 눈물을 후회를 허망함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남은 이들은 삶에 대한 애착과 내일의 희망을 꿈꾸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염쟁이 유씨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삶에 대한 애정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여기자처럼 말이다.

이제는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도, 너무 두렵게 느끼지도 않는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도 생각지도 않는다. 그래 내일을 한번 살아보자. 어제는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오늘이지만 난 어느새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난 이제 내일을 힘차게 살아갈 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 그 순간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 죽음 그 뒤에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