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 길 -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을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을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과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을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늦은 저녁 대문 밖에 놓은 고양이 사료를 확인하고 비어있으면 한 번 더 가득 채워놓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하루의 마지막 일과가 된 지 몇 달째이다. 새벽녘에 잠을 설칠 때면 밖으로 나가는 일도 잦아졌다. 그 시간은 정말이지 낮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 사람들로 가득 찼던 혼잡했던 거리는 어느새 인적이 끊긴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안면 있는 고양이들도 만날 수 있고 방랑 강아지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고요함에서 오는 평온함과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과 행복으로 조금은 별난 습관이 생기고 말았다. 바람이 많이 불 때면 고양이의 털이 미세하게 날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동안 실수로 혹은 섣부른 판단에 의해 짧은 만남으로 이별했던 모든 것들의 생각으로 마음이 아프고 시려온다. 오늘 새벽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 시가 떠오른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사랑받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

특히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란 구절에서는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맑고 예쁜 시어임에도 시리게 파란 날카로움에 베이는 듯한 느낌이다.

부끄러움이란 양심의 가책이란 작은 흔들림에도 큰 울림을 남기는 법인가 보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이지 힘들게 읽히는 시집 속 두편의 시이다.

윤동주 - 서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이 땅에 어머니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유키오의 엄마는 아들을 위해 4인조 아버지를 탄생시켰다.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운 설정이다. 네 명의 아버지. 그것도 생물학적 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재밌는 것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아버지들의 장점이 조합되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역시 한 아버지에게서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던 거다. 오! 아부지.

그런데 이 설정! 낯설지가 않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4인조 (은행강도).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이후 편집자와 나눈 이런 강도에게 키워진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머리에 남아 있었다는 인터뷰로 보아 아마도 이 소설의 연장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소설은 이전 그의 작품에서 보아왔던 사건 중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중심이 되는 소설이다. 그래서 읽는 순간순간이 재밌고 특별한 사건(특히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아도 상황 상황이 흥미롭다. 이전 소설보다 덜 서늘하고 덜 긴장된 상태가 중후반까지 이어지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느슨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처음 유키오가 친구 때문에 린치 상황에 몰리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장면을 전철 안에서 읽다 웃음이 터졌는데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아 책을 덮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후반부에 현지사 후보 간의 과열된 경쟁과 유키오의 친구가 개입하게 된 들치기 사건이 얽히고설켜 인질극으로 발전하게 된다. 순식간에 유키오 구하기 대작전으로 극이 전환된다. 한 편의 영화와 같은 흥미진진한 모험극이 펼쳐지게 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이 이사카코타로 쇼케이스와 같은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그동안 소설에서 써온 많은 요소를 사용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끝까지 깨알같은 복선이 깔려있고 그가 즐겨 이야기하는 정치,경제,사회문제가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게 담겨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던 탓인지 아니면 연재되던 신문소설의 한계인지 지금까지 소설에서 보여주던 큼직하고 묵직한 임팩트는 다소 약화된 느낌이다. 또한 이야기가 성급하게 마무리 된듯한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이란 것도 그저 응석에 불과하다. 아쉬움보다는 역시나 만족감이 큰 소설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저승 가는 길도 이 작가의 책만 있으면 문제없을 것 같다. 두려움, 지루함... 모두 잊고 소설 자체에만 몰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의 숨소리만 들어간 앨범을 듣고도 눈물이 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이사카 코타로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그를 거친 것이라면 백지에 점만 찍힌 책이라도 며칠이고 상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초등학생 때 나의 일기장 속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동시집이다. 

평범한 일상의 언어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단어 속에서만 느껴지는 그 특별함과 많이 닮아있다.

분꽃의 향은 알지 못하지만 어릴 적 맡았던 아련하고 포근한 향의 엄마 화장품 분냄새가 피어오를 것만 같은 제목의 시집이다. 

매일 보는 식구들인데

우리 집 대문이 /멀리 보이는 /골목길에 들어 서면 /빨라지는 발걸음에 /내 마음이 앞서 뛴다

이제 왔니 /반갑게 ？S아 주실 어머니와 /웃음꽃 가득 피울 /언니 오빠 동생이 /오늘 따라 너무 보고 싶어 /금방 눈물이 날 것 같다

참 이상도 하지 /매일매일 만나는 /우리 집 식구들인데 /매일매일 새롭게 보고 싶다니

영화 헬로우 고스트를 보고 난 후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돌아갈 그곳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곳에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그러한 평범한 모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해인 수녀의 동시들에서도 영화의 영상이 전하는 메세지와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음에 드는 한 권의 책

요란하게 겉을 꾸몄지만 /속은 비어 있는 /한 권의 책보다 /수수한 옷차림이어도 / 속이 꽉 차 있는 /한 권의 책

마음에 드는 /한 권의 책을 골라 /집으로 오는 마음은 /날개가 달린 마음

좋아하는 동무로부터 /첫 편지를 받을 때처럼 /설레이는 마음

빨리 읽기 아까워 /며칠 동안은 /만지작거리가만 한다 /잠을 잘 때도 /베개 ？뼁？ 넣어 두고 잔다.

책을 그리고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에 감사한다. 아무리 욕심을 내도 아무리 탐식을 해도 비난받지 않는,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주는 행운이며 축복인 그것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책장 앞에서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 오랜만에 읽는 동시는 지금 이 순간이 마음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때 그곳이게 해준다. 쉽게도 편하게도 고맙게도.

멋 부리지 않아도 어렵지 않아도 감동을 주는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집 속 동시들은 보여준다. 또한, 동안에 집착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동심으로의 회기임을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