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가 보고 싶으면서도 가 보지 못하는 산과 강과 마을, 어쩌면 무지개가 선다는 늪, 이빨 없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산다는 산속, 집채보다도 더 큰 고래가 헤어 다닌다는 바다, 별똥이 떨어지는 어디쯤..... 소년은 멀리멀리 떠가는 연에다 수많은 꿈과 소망을 띄워 보내면서, 어느새 인생의 희비애환과 이비를 아는 나이를 먹어버렸다. 

도시에서 태어나 그리 멀리 벗어난 적 없는 사람들에겐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글로나마 그때 그곳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여유롭고 넉넉해지는 한편 무엇인가가 마구 그리워지기도 한다.

시간을 되돌려 돌아간다 해도 소설 속 그때 그곳일 순 없겠지만 유일한 위안이라면 어릴 적 몇 번 시골 길을 달려보고 고추밭에서 잠자리를 잡아보고 우물에서 물도 길어보고 한 기억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야기 속 풍경들이 낯설지만은 않다는 정도다. 

신기한 일이다. 그들에겐 특별한 연락수단이 있었던 것도, 일부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참 잘도 모여진다.

기차도 전기도 없었지만 가지 못할 곳은 없어 보인다. 

우스운 것은 기차보다도 더 빠른 운송수단이 있는 지금,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어디도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고 싶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그것을 감수할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다.

미식가 아버지의 낙은 주말마다 맛집을 찾는 것이다. 몇 년째 계속되어온 아버지의 취미 생활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런 아버지가 수많은 맛집을 거쳐 최근에 즐겨 찾는 곳이 보리밥에 열무김치 그리고 누룽지가 있는 곳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맛있는 음식을 찾고 찾아 결국 다다르게 되는 곳은 다름 아닌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이 있는 곳이라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편리하고 재밌는 것 많은 오늘들을 보내다 보면 전기도 영화도 없었지만 너구리 굴에 연기를 피워 잡으려 했던 물까마귀를 구워먹던 참외서리와 콩서리를 했던 작은 장난에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순진한 친구들이 있던 어제들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함을 소설은 보여준다.

엉뚱하게도 책장을 덮으며 떠오르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잃은 야생동물의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추억의 그때와 그곳이 있는 마음의 보금자리가 파여지고 깎여 언젠가는 사라져 잃게 될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돈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아닐 거라 자신했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그것 앞에 혹은 그것 때문에 너무나도 구차하고 초라해진 내 모습을 발견하며 돈 덕분에 살기도 돈 때문에 죽기도 하는구나! 그것 덕분에 행복할 수도 그것 때문에 불행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함부로 이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자신할 수도 없는 거구나! 이런 생각과 함께 불쾌감을 동반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벙어리에 모자라기까지 한 (어쩌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치에 가까운 그의 성격이란 표현에서 모자라 보일 정도로 착한) 아다다라 불리는 한 여자를 통해 생과 사, 희와 애, 길과 흉의 사이를 오가며 그 모습을 달리하는 돈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이것 때문에 시집가 예쁨을 받기도 했고 이것 때문에 변한 사람들에게 구박받고 버림받기도 했다. 이렇게 대비되는 삶을 살게 되는 그녀의 모습은 돈의 양면성과도 많이 닮아 있다.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책은 살 수 있지만 두뇌는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입맛은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장식품은 살 수 있지만 미는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사치스러운 생활은 살 수 있지만 교양은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유흥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십자가는 살 수 있지만 구세주는 불가능하다. 돈이 있으면 종교의 사원은 질 수 있지만 하늘나라는 불가능하다"

이것을 숭배하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며 원하기도 하면서 배척하기도 한다. 이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말하면서도 이것은 무엇도 할 수 없다 말하기도 한다. 이것이 많아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많아 불행한 사람도 있다. 이것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기도 은폐되기도 한다.

아다다가 시집을 온 후 집안 살림 사정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풍요로운 생활이 시작되자 변하는 사람들. 남편은 세 아내를 얻었고 그녀를 아껴주던 시부모님도 등을 돌린다. 날로 심해지는 이들의 폭행과 폭언으로부터 도망쳐 온 아다다

이런 그녀를 몇 년 전 부터 탐내 오던 수롱. 그녀를 꾀어 섬으로 도망을 가는데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에게 의외로 많은 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다다는 불안해진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녀의 남편처럼 변할 수롱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돈이 있어도 없어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그녀다. 

그녀의 불길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수롱이 잠든 사이 바다에 돈을 내다버린 아다다를 죽음으로 내모는, 돈 앞에 남편과 다르지 않은 또 다른 남자가 실재가 된 것이다.

그녀의 남편도 수롱도 나쁘다 욕할 순 있어도 자신은 절대 그들과 다르다 함부로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 단언하는 순간 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의 사랑의 사계(四季)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막상 그 속에서 하루하루 사랑이란 감정에 여념이 없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그래서 오히려 공감하지 못했던 책 속의 이야기들이 이별 후 표면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실제론 그와 정반대의 상황을 겪으며 혼란스러울 때 시리게 절감하게 된다. 책 안의 글귀 어느 하나 나의 것이 아닌 게 없다는 것을.

봄...두려움없이 사랑을 시작해도 될 것 같은 용기를 주는 계절이다. 이런 용기가 호르몬의 이상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에 기대어 마음의 문을 열고 먼저 고백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혹은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란 바보 같은 질문에, 귀찮을 법도 한 질문에 저자는 참도 친절하게 답을 해준다. 처진 어깨를 토닥이며 움츠러들었던 마음에 용기를 주기도 한다. 

망설이는 그대에게...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하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주저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치열하게 사랑해도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랑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또한 그녀는 사랑은 운명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열심히 찾고 갈망하고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그 대상을 찾을 수도 사랑을 이룰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안다. 알고 있다. 충분히. 그녀가 말하는 이 모든 것을. 하지만 그 혹은 그녀를 향한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여 보이는 자신의 부족한 점이 이 모든 것을 주춤하게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는 사랑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놓친 부분이 있다. 사랑 앓이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님에도 멈짓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곱 난쟁이가 왜 백설공주랑 한 놈도 연결이 안 됐는지 알아? 

고백을 못했거든, 일곱 놈 다 난쟁이란 사실이 부끄러워서. 

사실 백설공주는 키 작은 남자를 좋아했는데. 

영화 새드무비 중에서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그래서 그 기다림이 길기만 한 이들에게 그녀는 전경린작가의 글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건 조금 늦게 와도 좋다

기다리는 동안의 환희에 가까운 고통, 그 애탐과 간절함

때로는 그 힘이 내 삶의 구심점이 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