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건축가 또는 건축가가 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진 ’구조이야기’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앞부분은 구조에 대한 기초 지식이다[19~108쪽 (90쪽 정도)].

학사과정에서는 구조역학을 배울 때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물론 전체는 아니고 내가 보기엔 학교에서 구조역학을 배우기 전에 베이스(기본기)를 깔기 위해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배우는 구조역학과 이 책에서 만나는 구조역학이 다른 점은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이해시키겠다고 두 팔 걷어붙인 교수가 아니라 반드시! 꼭! 꼭! 두껍고 재미없는 전공서적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전공서적의 특성상 온갖 수식어에 용어에 흑백이미지는 기본, 거기다 건축관련 출판사들은 뭣들 하시는지 대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구성이라 공부에 도대체 흥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대학생들 전공서적은 업그레이드하곤 영 거리가 멀어서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가끔 어려운 용어가 섞여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초보자도 알 수 있을 그런 적절한 비유로 구조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전반부에서만큼은 저자가 의도한바-건축가가 원하는 형태나 공간을 만드는데 필요한 최소의 지식, 더 나아가 형태적 공간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워주는 구조지식이다-를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있다.

 

뒷부분은 서양 건축사에서 구조적인 양식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중심으로 시대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109~ 쪽(125쪽 정도)].

이 부분은 전반부보다는 어렵다. 그나마도 사진과 그림이 많음에도 한 문장에 어려운 용어가 속사포처럼 쏟아질 때엔 머리가 잠시 아찔해질 때도 있다. 광범위한 서양 건축사를 너무나 짧은 글에 압축해서 더욱 그렇기도 하지만 역시 건축가 또는 건축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입체감이 있어야 하긴 하나보다. 서양건축사에 대한 부분은 약간의 상상력도 필요하다. ’이렇게 저렇게, 저러해서 이런저런 구조·재료·형태의 건물이 지어졌다’라고 하면 금방 알아먹어야 하는데 기본지식도 없고 서양건축사에 대한 기본기도 없는 사람에겐 조금 역부족인 것 같다. 하지만 부족한 개념은 접어두고 구조관련 서양건축사를 대략 훑고 싶은 사람에겐 이 책이 적절하다. 군더더기 없이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중간 중간 알아먹을 수 있게 썼기 때문이다. 이 저자의 책은 처음 접해보는데 내가 읽어본 다른 건축가들의 저서에 비해 필력(글을 쓰는 능력)이 돋보인다.

이는 저자의 설계경험이 구조이야기에 현장성을 부여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현장경험이 없는 건축가들일수록 문장도 꼭 그만큼 현장성을 잃은 이론 투성이이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딱딱한 이론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또한 그림과 흑백·컬러 사진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다. 사실 건축을 공부하는 초보자한테는 그림은 욕심껏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하다. 말 그대로 욕심이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 담아둘 만한 글이 있다. 어렵고 골치아픈 구조를 왜 알아야 할까?

 

1. 왜 건축가가 구조를 알아야 하는가?

건축이 정신이라면 구조는 몸이다 또 구조시스템이 정신이라면 재료를 입은 구조체는 몸이다. 몸과 정신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며 어느 것이 어느 것 위에 있지 않다. 정신이 육체를 통하여 세계와 관계를 맺듯이 건축은 시대의 소산인 구조(기술)을 통하여 현실과 관계를 맺는다. 건축가는 정신으로서의 건축이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몸으로서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다루어야 한다.

2. 구조적으로 효율적인 것은 미적으로도 만족스러운가?

3. 건축에 있어 구조는 종속적인가 독립적인가?

4. 건축 양식의 변천은 자율적인가 타율적인가?

5. 왜 건축의 합리성은 종종 실패하는가?

6. 현대 건축 위기의 실체는 무엇이고, 과제는 무엇인가?

나머지 답들은 직접 책을 보는 것이 좋겠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연륜이 묻어나면서도 현장감 있으면서도 쉬운 설명으로 쓰여진 책을 만나는 일은 어찌보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바라건대 나는 건축가들이 말만 거칠고 투박하게 할 것이 아니라 글도 적절히 투박하면서도 재미있게, 소위 말하는 글빨 나는 건축가가 많이 나와줬으면 한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듯 건축가는 꼭 자기 전문성을 살려 책을 남겨주시길.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나는 우선 직장생활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싶다. 뭣도 모르고 직장생활에 뛰어들어 투정부리고 짜증부리던 나는 어느날 문득 ’대체 어떤 인간이 이러한 직장이라는 해괴망칙한 룰 내지는 구조 내지는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었더랬다.

썩 마음에 내키는 구조도 아닌데 자세하게 파헤치고 싶지는 않고, 대충 살펴본 바로는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부터라고 한다. 산업혁명이 대량으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혁신을 수반하면서부터 허리를 구부리고 땅을 착실하게 일구어 자급자족하던 농부들은 도시로 불려갔다. 농사는 따로 원리를 배우지 않더라도 본능에 충실하여 자연의 룰을 따르면 되었지만, 직장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직장도 별 룰이 없었다가 점점 인간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인간을 로봇이나 다름없이 보고 최단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보려고 끊임없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처음 직장이란 곳에 투입된 농사꾼들은 어리벙벙하다가 반항도 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그러한 감정은 내가 지난 몇 년 전에 느꼈던 감정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다. 아마 나는 직장인이 되기 전에는 풍부한 농부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나싶고 더구나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직장의 룰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사람, 일을 잘한다고 하는데도 어쩐지 꼬이기만 하는 직장인, 이직을 고려하는 직장인, 일반 사원, 팀장 등 어느 상황,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건 실용적인 조언을 줄 수 있는 안내서이다.

얼마나 실용적인 안내서인지 벙어리처럼 행동하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라니. 언뜻 생각하기에도 쉽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이미 군상급자를 대할 때 벙어리가 되는 정도의 경험은 해봤을 거라는 추측도 해본다. 또한 남을 놀리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에 맞서서는 속으로는 괴로울망정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당신의 얼굴과 몸에서 더 이상 어떤 감정도 찾아낼 수 없도록 하라고 한다. 나 같은 농부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반응이 즉각적이고 표현도 자유롭고 열정을 말 그대로 ’열정(열심)’으로 알아 듣고야 마는데 이 책은 최소한 나 같은 사람에겐 뭔가 역설이나 반전을 말하는 것 같다. 중립적이면서도 진중한 태도로 어떤 위험에 처해서도 울거나 화내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알려주는 스파이의 한 사람 같기도 하다. 

여기서 얘기해주는 ’열정’에 대한 진실은 이렇다.

"콜라란 자고로 적당한 거품과 방금 땄을때 느끼는 그 시원함 때문에 마시게 되는 음료이지. 아무도 흔들어 따서 거품이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콜라나 오래 따라두어 김이 다 빠진 맛없는 콜라를 마시고 싶진 않을 걸세....’열정’이라는 ’포스’는 콜라의 탄산처럼 아주 예민해서 현명하게 다루지 않으면 제대로 쓸 수 없다네."

로빈의 고민을 듣고 『경력 관리에 대한 진실』이란 책을 건네준 요다는 영화 ’스타워즈’에서 수많은 제다이들에게 포스의 가르침을 전했던 스승 요다와 같은 사람이다. 요다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승모드의 열정에 대한 진실도 그렇고, 소규모 벤처기업에서 잘 나가던 로빈이 대기업으로 옮겨서 의욕적이고 호전적으로 일했지만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왜 그런지 쉽게 풀릴 수 없는 문제들이긴 하다.

60개의 진실들이 짤막하게 토막내어져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한 토막씩 읽으면 좋을 것 같지만, 책 한 권 분량이 생각보다는 길다(300쪽 가까이). 글씨도 완전 듬성듬성하지는 않다. 그래서 직장인이면 누구나 읽어도 좋지만 경력 1~2년차보다는 4~5년차가 읽기에 더 부담스럽지 않다. 3년차 이상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겠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직장생활을 한다면 직장이란 게임의 룰을 실질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사고로부터 조금은 탈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철들지 않는다는 것’
책 제목이 약간 수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사람은 철이 들어야 제 구실을 하며 살고 더불어 사람 노릇까지 해가며 주변사람들을 챙기며 사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책까지 낸 저자가 의사 친구로부터 "철 안 난 것으로 치자면 자네는 거의 정신병 수준이야."라는 말을 듣고도 별로 싫어라 하지 않고, 오히려 보통 철이 들었다는 사람들보다 정신수준이 더 나아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정확한 부제는 <철들지 않고도 썩 괜찮은 사람, 하종강의 중년일기>라고 말하고 싶다.

 일기라는 보물처럼 은밀한 것도 없고, 반대로 편안하게 읽히는 글도 없을 텐데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그의 글대로라면 중년의 사내가 세상과 만나 겪는 일들을 가능한 한 건강하게 정리해보려는 노력의 하나이며, 아내에게 바치는 송신 아테나인 셈이기도 하다. 내가 다시 정리하자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노동상담이라 불리는 일을 해온 그가 정직하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보이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꾸러미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마도 1970~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세대라면 이 책을 읽으며 자신과 같은 모습에 낄낄낄 웃다가 그만 책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할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문제(구체적으로는 노동문제)를 만나면 턱에 손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길 수도 있으며, 간혹 그를 ’바보’라며 비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별 의미없는 비웃음에 그치고 말지 더는 아니기 때문에 그냥 재미있는 책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정보는 아니다.

 ’첫눈 조심’이란 간판을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첫눈의 감상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나, 아스팔트 바닥에 씌어진 ’사당’이라는 이정표를 ’사랑’이라고 읽었다던 중년의 하종강 씨, 처제를 놀리는 약간 사악한 장난꾸러기 하종강 씨, 보통 남자들처럼 어찌보면 똥폼(죄쏭~)처럼 보이기도 하는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관심과 엉뚱한 홍보맨역할 등.

그렇다고 마냥 재미는 아니고 역사와 함께 살아온, 자기 안위만을 위해 살아서 굳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 우리나라의 사람살이에 비하면 하종강 씨만의 독특한 향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솔직히 내가 만난 우리 사회의 40~50대는 조금 끔찍했다. 일본 유학파로 스스로를 빨갱이 컴플렉스가 있다고 밝힌 모 교수는 내게 별 이유없이(자신의 강의 스타일에 대해 내가 의견을 말한 것에 자존심 상했던 것 같았음.) 학점 C를 줬으며, 또 다른 한 사람도 운동가 출신인 것만 소문에 듣긴 들었는데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여 현재 하는 일은 간판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뒤에 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안내해줄 사람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세상은 오래 살아서 뭔가는 알므로 있어 보이는 말과 행동으로 레이저는 쏘아대는데 그게 햇볕처럼 온화한 빛이 아니고 따가운 빛일 따름이었다. 1970~80년대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슨 사상이니 운동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을 내가 경험해보지도 않고도 그들을 통해 그저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싫을 뿐이다.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책에서 만난 하종강 씨처럼 가슴 따스한 중년을 많이 만나고 싶다. 아니 나 말고 IMF이후 우리나라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급변 등으로 특히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등불을 밝혀줄 수 있는 중년들이 많아져서 우리나라의 40~50대를 존경한다는 젊은이들의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