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독서가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고, 자칭 책을 좋아한다고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독서가의 위치란 어떠하며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도 아닌 나의 어린 시절만 해도 책이란 게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 사실 어디라도 가면 책이야 많이 있었겠지만 그 당시 책 편집이나 책 자체의 품질이 너무 조악하지 않았나 싶고, 그리하여 어린 마음에 책에 대한 호기심을 전혀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것까지면 좋았겠다. 대학 졸업 후 언제인가 대학 시절의 교재를 펼쳐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누렇고 이상한 글씨체에 한자는 왜 그렇게 많은지. '대학 때부터 내가 바보가 된 이유가 있었구나'란 생각에 순간 안도감과 화딱지가 동시에 났던, 그러면서 내가 혹 일제강점기 전후에 대학을 다닌 줄 이상한 착각에 빠질 뻔했던 매우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 책을 좋아한다는 학생도 그리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되며, 지금도 '나 책 좋아해'라고 광고하듯이 퍼트리고 다녔다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줄지... 물론 우리나라에서 현재 독서가라고 자처하며 독서일기식의 책을 펴낸 작가가 몇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그 책들이 그리 널리 알려진 것 같지는 않고 호기심 가득한 책벌레들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거나 책을 펴낸 독서가들의 자기만족 수준에 그치고 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의 수많은 책벌레들에게는 독서가의 길을 밝혀줄 안내자가 필요없다는 말일까? 선배 독서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지 않은가? 안내자가 필요하다거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분이라면 이 책이 적절하다.

이 책은 1950~60년대 미국 오하이오 주의 로레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철강 노동자의 아들 마이클 더다(Michael Dirda, 1948년생)가 중년의 나이에 들어 자신의 스무 살까지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책을 매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낸 회고록이다. 말하자면 책이 없는 저자의 삶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책을 너무나 사랑했던 독서가의 철저한 자기 회고록이다. 보통 자서전을 스스로 쓰게 되면 부풀리거나 왜곡해서 쓸 수 있기 때문에 회고록의 형식을 따랐다고 하며, '책을 많이 읽은 사람답게' 이야기가 많고(전체 400쪽을 이루며 조금 묵직한 느낌의 책) 사소한 것에도 책과 관련하여 엉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따라온다. 저자의 기억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기분이다. 

뭔가 원형적인 것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끼게 되는 -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에 둘러싸여 있는 평화를 떠올리고 물을 좋아하는 성격에서부터 처음 책과 편안하게 만났던 기억.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분인지, 그리고 두 분의 만남, 생활. 안경을 끼고 몽상을 잘하던 기질에다가 산만한 아이는 운동을 못하여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기억. 만화책이나 모험소설에 푹 빠진 유년 시절, 곧이어 중고등학생 시절 '실종'이라는 아이디어에 매혹되어 가출을 감행하여 거리에서 난생처음 책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기억에 남을 경험. 

       

          나는 발 빠르게 가벼운 마음으로 탁 트인 길에 나선다.

          내 앞에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세상,

          내 앞의 갈색 길은 내가 선택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행운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곧 행운이니까.

          이제 더 이상 징징거리거나 불평하거나 연기하지 않는다.

          실내의 불만거리, 도서관, 쓸데없는 비평 따위를 작파해 버린다.

          강인하고 만족한 마음으로 탁 트인 길을 따라 떠난다.

             - 휘트먼, 탁 트인 길에 관한 노래

 

단순 노동을 체험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문장 길게 늘이기' 놀이를 하며 버텼고, 무엇보다도 고된 노동을 통해 신경질적인 아버지를 깊게 이해하는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다. 그 밖에도 사랑을 찾고 기다리는 시간들마저 독서가는 독서가식 특유의 방식을 따랐고, 그 역시 책을 발견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준다. 정밀한 지성,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정신, 광범한 학식을 지닌 진짜 교수, 진정한 교수, 모범을 보여준 교수를 만나서 책과 발전해가는 저자의 모습은 대단히 부러웠다. 또한 책벌레들이 궁금해할 책을 읽는 법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도 꽤 담겨있으며 책 뒤편에 착하게 정리되어 있는 '마이클 더다가 읽은 책 목록'은 독서목록이 부족한 독자들이 따로 메모하지 않고도 참고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답게' 저자의 독서 이력이 무척 광범위하기 때문에 잘난 척으로 보여지는 부분도 있고, 무수한 외국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제목이 언급되는 부분에서는 놀람을 넘어서 질려버리면서 속독법을 모르는 나도 저절로 속독으로 재껴가며 읽어야 했다. 1950~60년대부터도 만화책, 잡지 등 온갖 책의 종류가 널리고 널렸던 미국이란 나라의 미국인의 경험이 썩 재미있거나 반가이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에 와서는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알고 싶어졌고, 마이클 더다라는 독서가에 대한 애정이 샘솟아 그의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따라해보고 싶다고 작정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는 필독서를 강요당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다수가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체험하는 경험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책벌레 기질이 있거나 책벌레가 되고 싶은 독자라면 한 번쯤 만나도 좋을 그런 유쾌하고, 유용한 책이다.

 

나는 이제 모험가라기보다 식도락가로서 독서에 나선다. - 에필로그에서 '마이클 더다'

봄은 해가 바뀌어서 들뜨고 여름은 찌는듯한 무더위에 몸이 먼저 지치고 가을은 가만

히 불어오는 생각의 바람에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참으로 적절한 계절인 것만 같다. 또

한 가을엔 누군가 추억을 벗삼아 이 얘기, 저 얘기 써내려간 산문집을 읽는 것도 그만

이지 않을까.

 

추석을 낀 긴 연휴의 기간에 도서출판 작가에서 펴낸 (나로서는) 두 번째 산문집을 만

났다. 처음이 김원일 씨의 <기억의 풍경들>이고 곧 이어 만난 산문집이 김영현 씨의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이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책제목이다. 나쓰메

소세키? 나로선 통 알 수 없는 글귀이니 말이다. 무슨 욕 같기도 하고(책 속에서 저자

도 그의 이름이 좀 듣기에 거북했다는 인상을 밝히고 있다), 아니면 어쩌지? 괜히 웃

음이 나오면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내심 기대했었나보다.

 

그런데 이 책은 산문집답지않게(?) 그리 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잘 모르는 1970~80년대의 뼈아픈 과거가 참혹한 언어로 드러날 때엔 내심 경악

하면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는데 저자는 극복한 듯이 말하면서도 또 그렇지 않

고 허무주의? 염세주의? 자연주의? 뭐 이런 쪽으로 빠진다. 저자의 전공인 철학과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저자가 우리나라의 1970~80대와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 대해 지

금!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는 마무리를 지었는지이다.

 

지금 한국 문학에는 오랫동안 한국 문단을 지배해 온 노작가들의 목소리와 어디서 왔

는지 모를 젊은 작가들의 목소리밖에 없는 것 같다. 말하자면 4,50대의 중간 세대 작

가들이 한꺼번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솔

직히,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의 작가들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109쪽)

 

위의 글은 좀체 이해할 수가 없기도 해서 말이다. 내가 만난 운동권 출신의 어르신에

대한 인상을 말하자면 패배자는 아닌데 어딘지 죄를 지은 듯하면서도 몸 안에 심지가

박혀서 빼도 박도 못하고 고집을 부린다는 그런 느낌? 부족한 의견이지만 감히 한 마

디 해보자면 우리나라의 1970~80년대는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산 사람들은 나가떨어지

고 나머지 세대는 그 시대를 너무 모르고 그렇게 그렇게 지나간 강물은 다시 오지 않

듯이 지나쳐버리고 있는 것 같다.

 

시대의 고민이든 그 사람만의 치유할 수 없는 고민이든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 찌

꺼기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갑갑함을 준다. 개인적으로 이 산문집은 내게 그런 면

이 없지않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저자가 축약적으로 말한  "생은 고(故)다!" 란 말

앞에서 내가 뭘 그리 고민하는가 싶어서 내 고민들을 모두 풀어놓고 가을을 맞이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 띄어쓰기가 맘대로 안 돼네요. 아잇...

가벼운 소설책 한 권인 줄 알았다. 앞에 표지도 제법 우스꽝스럽고 크기도 만만하다. 약간 긴 손가락을 가진 내 손바닥만 한 그런 작은 책이다. 표지그림에서 머리만 큰 청년 둘에 대머리 아저씨가 좁은 방에 앉아있는 건 딱 봐도 빈곤티가 나지 않는가. 표지그림에 속았을까? 아니면 '청춘'이 가벼워보였을까? 재미로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닌 와세다 대학교 탐험부 '다카노'의 11년간의 자취생활의 기록이다. 단순히 '독특하다'라고만 표현하기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다카노'와 같은 인물이 주변에 실존한다면 사람들이 손가락질도 귀찮아서 집어치우고 집에서는 버린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아니 이게 이럴 수가...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저자가 바로 그 유명한(?) 다카노 히데유키이다.

다카노는 1989년, 22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친구의 제안을 듣고 호두나무 옆에 자리잡은 1.5평짜리 쓰러져가는 자취집 '노노무라'에 거주하게 된다. 노노무라와의 인연은 이후 2000년까지 이어진다. 친구의 제안은 이렇다.

"내가 사는 자취집에 한 평 반짜리 방이 하나 났는데, 누구 들어와 살 사람 없어? 방세는 12,000엔이야. 주인아줌마가 보증금은 그냥 한 달치 방세만 내면 된대."  

너무 가벼운 일상언어처럼 들린다. 이에 다카노도 이렇다 할 이유는 없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들어갈게!"

실제 이유는 부모님은 다카노 자신만큼 쿨하지 못한 관계로 독특한 정신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므로, 하여 어디라도 좋으니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흔히 우리니라가 일본보다 경제발전속도가 10년쯤 뒤처져있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지난 1990년대 중후반의 시기(다카노의 1989년 전후 시기)에 다카노와 그의 동료들 - 괭이 마빡만한 노노무라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넘아들 같이 인생의 반쪽도 없이 막막증에 걸린 피터팬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정년이 보장된 직장도 가지지 못한 채 뭘 해도 나만 뒤처진 듯한 기분으로 '만성 대인 울렁증'까지... 참으로 비참하디 비참할 것 같은데... (소곤소곤 : 꼬질꼬질한 얘기도 많긴 하다)

이 책은 다름 아닌 '청춘기'였던 것이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20대의 지나친 객기나 광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억지로 밝은 미래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막장으로 갈수록 슬슬 웃음이 비어져나오게 된다. 노노무라에서 지낸 11년이 다해갈 무렵, 다카노에게 일어난 변화는 괜스레 감동스럽기까지했다.

"그런 패턴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보는 눈이 달라졌다." (346쪽)

"그런데 그 돌아갈 중심이 이제 '장소'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347쪽)

다카노는 제일 꼴찌였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제일 꼴찌가 맞는데 왜 내 기분이 이렇게까지 좋은지 모르겠다. 참 유쾌한 책이다.

예전에 한참 인기를 끌었던 원태연 시인의 시집 제목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에서 유추해보면 이 책을 만나고 싶어하는 청춘들에겐 <1.5평 손바닥만 한 크기를 뺀 만큼 세상이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1.5평 바깥세상이 보인다.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