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전혜린의 모습을 일축할 때 “불꽃처럼 살다가 여인” 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처럼
삶을 태웠던 여인 전혜린의 유고수필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그런 그녀을 한층더
들여다 볼수있게 해준다. 창작할동에 그토록 목말라했던 그녀가 번역서를 제외하고 2편의 유
고집을 남겼는데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이 남는 것은 그녀의 생이 좀더 길었으면 그녀의 작품
을 더 접할수 있었을 것을 한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식이, 그의 언어가 집요하게 떠밀고 가는 순간의 지속-그것이 바로 그녀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귀한 선물이다.”라고 했던 이어령교수의 말처럼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과
욕망은 아직도 내가슴속에 지속히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힘이며 그녀의 지속성인 것이다.

수필집이 그렇듯이 이 수필집도 신변잡기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신변잡기는 나에게 특별한 의
미로 다가오는 것은 그녀의 사회성과 가정과 남성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이는 그녀가 우리
나라 여성최초로 유학을 갔었다, 최초의 여성 서울대 교수였다라는 프로필 때문이 아닌 여성의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에 지금처럼 페미니즘이 팽배한것도 아니고, 또한 교육으로서가
아닌 스스로 자각을 하였다는 것이다.

남녀 양성중 보다 불리한 조건에 놓인 것은 여성이다. 남성은 석기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사냥하러 돌아다니고 세상을 싸우고 아무튼 사회 참가의 자유가 주어져 있었고 여자는 동굴 속에 앉아서 아이를 낳고 불을 지피고 가정을 유지하는 쪽을 맡아 왔었다. 변화하는 방랑으로서의 남성에 대한 여성은 ‘지속’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역할은 원자시대인 오늘에도 어느 정도 그 잔재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수많은 직업 여성이 차라리 집에 머무는 편을 원하고 있으며 교황을 비롯한 수많은 남성의 꿈은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가 있는것이다. 여자의 본분은 뭐니뭐니해도 가정을 지키는데 있다고 보는 사람이 전인류의 태반이라고 보는 것은 직업있는 여자의 하나인 나만의 콤플렉스가 아닐것이다.’ Page 213

그녀의 스스로 더 괴로웠던 것은 여성의 지속성이 안정이라고 보는 사회성에서 자각해야만
했던 자아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알면 병이되는 사회의 진부성때문이라면 말
이될까? 관습적인 여성성을 거부했던 그녀도 그녀의 딸 정화에게 있어서는 지극한 모성을 보
였었다.

“정화는 나였다. 그 순간에 나는 분명히 정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불사라는 것을……. 나는 영원히 영원히 정화 속에 사는 것이다. 정화속에 있는 내 세포는 전부 다시 정화아이속에 살것이고 그렇게 계속 함으로써 내 육신은 지상에 영원히 유지되는것이다. Page 291 “

사실 난 그녀의 여성성 보다는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찬사를 보내는 편이지만 안타
까운 것은 그녀의 창작작품보다는 번역서가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번역서가 좋지않
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사실 그녀의 번역서들은 “생의한가운데” “에밀리에” “파비안” 등
더할나위 없이 위대한작품들이다 ) 그녀가 창작활동에 대한 괴로움이 피부속 깊숙이 전해지
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또 한번 관심을 끄는 것은 “생의한가운데”와 ‘데미안’ 등의 작품들에 대한 그녀의
평들과 헤르만 헤세로부터 받았던 편지에 대한 것들이다.

‘예의만을 갖춘 나의 편지에 그는 뜻밖에도 그의 최근에 찍은 사진 (생각보다 안 늙었고 고민에
찬 맑은 표정이었다)과 그가 그린 그림에 인사말을 써서 보내주었다. 나의 기쁨을 상상해봐.
스물두살의 내가 느낄수 있는 정도껏의 기쁨. 그 다음에 또 “방랑”이라는 제목의 그가 그린
그림을 알았고 (풀과 나무 하나와 흰 구름으로된) 새해 선물로 [데미안]과 [싯다르다] 내가 제
일좋아하는 헤세의 책을 두권 받았어. 나는 춘향이와 이도령의 인형을 보내 드렸어. 축복해
주고 채린이도 헤세를 읽어줘. Page 335.

이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을지 그녀가 상상이 갔고, 그녀의 헤세에 대한 사랑과 헤세의 자아
를 찾아 방황하는 작품세계가 그녀와 접목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고 존재하지
않은 그녀의 작품성향에 대해 감히 짐작을 해본다.

‘우리의 삶이란 결구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외의 아무 것도 아닌것이다. 보다 나에게 성실하게,
보다 진정한 실존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나와 내 죽음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모색하고 싶다.
언제나 언제나 너 자신이어야 한다. 아무앞에서도, 어디에서도… 과감할것, 견딜것, 그리고
참 나와 참 인간 존재와 죽음을 보다 깊이 사색할 것을 계속 할 것. 가장 사소한 일에서부터
가장 큰 문제에 이르기 까지 자기 성실을 지킬 것, 언제나 의식이 깨어있을 것. 1961년 1월
1일 전혜린의 일기중에서…

종교인이 쓴 산문집
나는 종교인이라해서 특정종교에 맞는 책을 마치 자신주변이 그 종교세계로 존재해야한다는
식의 테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이책을 쓴이를 종교인이라기 보다는 산문작가로 보고 싶다

. 흔히들 종교인은 금욕을 해야하기에 그리고 그 금욕자가 쓴 책은 다분히 종교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법정스님이 쓴 “홀로사는 즐거움”은 오히려 내 마음과 생활이 가야할길을
잘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 이책이 내 마음속에 길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정스님이 쓴 이책은 더불어 살지만 사실 홀로살아가는 인간의 생활과 그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
가짐을 일러주고 있지만 전혀 작위적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흐르는 세월에 나를
맞기며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세상에 올때도 홀로왔고 살 만큼 살다가 떠날때도 홀로 간다. 가까운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Page 55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본질적으로 홀로 일수 밖에 없는 우리지만 사회라는 집단에 구획되어있어 더불어 살아갈수 없는
사회성에 의존하고 살아가지만 홀로 살아가야하는 준비를 해야하는게 우리의 삶의 대처법이
될거같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산다고 해서 홀로 사는 것이 아닌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것이
홀로있음의 진정한 의미라고 즉 개체의 사회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속에서 거듭거듭 형성되어가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먼저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그 인생은 추해지게 마련이다. Page 57.

자신을 고립보다는 고독으로 인도하고 그안에 자기관리라는 행동양식을 넣어줄 때 비로서 홀로일수
있지만 법정스님은 그 자기관리라는 것에 대한 답은 독자에게 넘겨두는 듯하다. 아마 개인에
따른 자기관리의 차이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글 중에서 “내 그림자에게”라고 쓴 글부분에서는 작가에 대한 재치와 위트적인 면까지 느낄수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한평생 나를 따라다니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내 삶이 시작될 때부터 그대는 한시도 내곁을 떠나지
않았다. 햇빛 아래서건 달빛 아래서건 말 그대로 “몸에 그림자 따르듯’ 그대는 언제 어디서나
나를 따라 다녔다. 그러니 그대와 나는 뗄래야 뗄수없는 운명적인 동반자다.’ Page 142.

이책은 덮고 난 후의 전반적인 느낌은 화가가 자신의 그림에 시를 덧붙이는 시화집 마냥 아름답게
생활을 그리고 있다라는 점이다. 책을 읽을수록 고적한 산사(山寺)나 아직 씨를 뿌리지 않아
비어있는 밭을 보는듯한 느낌을 글로 그려주는것같이 아름답게 써내려간 책이며 또한 작가의
경직함 보다는 “부드러운 것이 정말 강하다”는 글처럼 부드러움이 강함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 잠언 6, 4
영화 [올드보이]에서 나오는 성경구절이다. 이 글귀를 보면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로의 몸부림을 처야야 자신을
구할수 있는듯하다 마치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의 글귀처럼 투쟁을
해야만 (번역자에 의하면 “투쟁”이란 표현이 원문에 가깝다고 함) 이루질수 있는 자아찾기를
구사해 놓은듯하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세계는 이와 같이 항상 구획지어진
자아의 세계에서 자아찾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그에따라 수반하는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론에는 자신과 고뇌하고 돌아온 자아와 일치하는 결론을보이는데 ‘데미안’ 역시 자신의
모습을 자아와 일관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헤르만 헤세 작품의 힘이며 오늘날에도
우리가 헤세를 찾는 이유가 될수 있을것이다.


l 데미안에 나와있는 종교성
난 헤세의 작품은 다분히 종교적이라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이는 헤세의 연보를 볼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것이다. 헤세는 신교목사의 아버지와 신학자 가문의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나 기독교의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데미안]에서의 종교적요소는 이책을
이루는 주된 요소라고도 볼수있다. 카인과 아벨, 예수옆에 매달린도둑, 야곱의 싸움과
같은 단락이 이 소설을 서술해 나가며 특히 카인에 대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 대해
이야기한 카인의 이야기는 싱클레어가 어린시절에 다른 세상을 보게되는 즉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자아를 분리하여 보는 시발점 이라고도 할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카인이 아벨보다 더 훌륭하다고 설명하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아버지는 몹시 놀라시며 그것은 새로울게 없는 견해라고 나에게
설명하셨다. 심지어 기독교 이전 시대에도 등장하였으며 사이비 종파들에서 전수 되었는데,
그 하나는 스스로를 <카인교도>라고 불렀다고 그러나 이 미친 학설은 물론 우리의 신앙을
깨뜨리려는 악마의 시험에 다름 아니라고, 왜냐하면 카인이 옳고 아벨이 옳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그 결과는 신이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서의 신이 올바른신,
유일신이 아니라 틀린신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카인교도들은 비슷한 것을 가르치고
설교하기도 했다………아무튼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아버지께서는 진지하게
경고하셨다.. Page 63.”

카인에대한 다른 이설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뜨기 시작하여 싱클레어의 시선은 예수옆에
매달린 도둑이나 야곱으로 옮겨 가는데 결론은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의 또 한걸음
이었다”라는것이다 본문중에서도 볼수 있는 이런 기독교적인 요소가 한편으로는
동양종교적 즉 불교적인 윤회라고 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책의 마지막 부분 전쟁터에서
데미안의 메트리스가 비워졌고 그리고 일어나 거울을 보았을 때 특히 나의 모습이 자신의
인도자 “그”의 모습을 닮아있었다는 결론은 신을 추종하는 자신의 모습과 윤회의
불교적인 요소라고 볼 수도 있다.


l 데미안에서 전쟁의 역할

1차 세계대전 직후에 [데미안]이 불러일으켰던 반향은 잊을수 없다. [데미안]은
섬뜩하리만큼 정확하게 시대의 신경을 건드린 작품이다.그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은 그들
또래의 선지자 한명이 나타나 삶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드러냈다고 생각했고, 그 고마운
충격에 기꺼이 휩쓸렸다. 1948년 토마스만.

토마스만의 데미안에 평가처럼 데미안은 1차 대전이후 젊은이들의 방황과 자신에 귀결성을
나타냈는데 이는 그 시대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것이다. 유년시절 프란츠에게서
구해줬던 데미안은 성장하는 내내 싱클레어의 정신적인 인도자로서의 구실을하며
싱클레어가 의지할수 있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데 떨어져 있어도 그의옆에 있던 데미안은
마침내 전쟁터로 나가며 싱클레어와 떨어지게된다. 싱클레어의 세계 즉 같은 세계에
살지만 싱클레어와 데미안이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이중적 자아의 세계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터에 나감으로써 데미안은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나가고
전쟁이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마침내는 자신의 모습을 싱클레어의 자아의 세계에
붙여놓는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놓은 피조물들을 파괴하는 전쟁은 그 파괴하는것들이
어쩌면 자신이 만들어놓은 피조물일수도 있는데 그런 전쟁에서 파괴한후 그후 밀려오는
허무함에 괴로워하고 더 자신을 찾을 눈을 갖게되는 것 싱클레어도 자신이 만들어놓을
수도 있는 피조물을 전쟁에 나가 파괴했고,결국은 데미안을 잃음으로써 자신에게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눈을 갖는 것이다.1차대전이후 [데미안]이 젊은이들 사이에 넓히 읽히게
될수있는것도 이런이유가 아닐까 싶다.


l 데미안에서의 베아트리체와 에바부인.

“그것은 내 꿈의 영상이엇던 것이다.!그녀였다. 키 크고 거의 남자 같은 여성의 모습,
아들과 비슷한데 어머니 다운 표정, 엄격한 표정, 깊은 열정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아름다우면서 유혹적이고, 아름다우면서 접근할수 없었다. 수호자이자 어머니, 운명자이자
연인이었다. 그녀였다.! 내 꿈의 영상이 지상에 살아 있음을 그렇게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엄청난 기적처럼 내 온 전신을 꿰뚫었다!.그런 모습의 여성, 내운명의 표정을 지닌
여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그런데 그녀가 데미안의 어머니
였다. Page 176

데미안의 이상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데미안의 에바부인이다. 싱클레어는
항상 꿈속에서 이상형의 형상을 보고 꿈을 통하여 현실을 보려했지만 구체적인 형상을
보인 것이 바로 에바부인인것이다. 헤세는 에바부인을 통하여 싱클레어가 이상으로 잡았던
것이 남성도 여성도아닌, 아름답고 유혹적이지만 접근할수 없는 그런 구도자로 하여금
싱클레어의 이상이 줄곧 꿈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실현시키고자 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꿈은 이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 그리고 내가 만질수도 사랑할수도 있는 대상을
현실화해서 자신의 성장을 더 가속화 시킬수 있는 모습을 보인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헤세는 데미안이라는 작품속에서 종교, 전쟁, 그리고 꿈의 현실화를
통하여 자신을 이루어나가는데 이는 헤세 자신의 시절의 방황에 대한 귀결과 전반적인
그의 작품세계라 할수도 있다.


나는 저 높은 하늘에 뜬 하나의 별이랍니다.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세상을 비웃기도 하고,
스스로의 불길 속에 타오르며 흩어지기도 하지요.
<나는 하나의 별 중에서 – 헤르만 헤세>


헤세의 위의 싯구를 보면 알아차릴수 있듯이 헤세는 항상 자신에대한 고찰과 세상에
대한냉소를 지니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작품을 접할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하나의 기회이며 자신에 대한 도전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