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제목에 끌렸다.게다가 극작가로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라니 그것도 기대가 되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소설이다.오랜만에 별다섯개를 주어도 모자람없는 소설을 발견했다! 읽으면서 완전 내 취향인데 싶기도했다.

악마적 아름다움이라는 치명적인, 그 유혹에 너무나 쉽게 넘어지고 마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악마적 아름다움이란 악인이 빠지기 쉬운게 아니라 선인이 빠질만큼 아름답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스카 와일드가 유미주의(唯美 :美를 유일한 최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미를 眞진과 善선위에 두었던 혹은 악마주의라는 말로도 대변된다고 함. 모든것위에 아름다움이 우선시된다는 주의)를 완성했다고 하고 이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엔 너무나 센세이션해서 질타를 많이 당했다고한다.

소설은 극히 아름답다. 고전소설이라는 생각이 절대 들지 않을만큼 현란하고 고혹적이고 드라마틱한 소재에 현실감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스토리를 자랑한다.  아름다운것을 추구하는것이 나쁜게 아니라, 보여지는 아름다움이면 모든것이 눈감아지는 요즘의 세태에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그래서 슬프고도 처절한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도리언 그레이는 아름다움을 축복처럼 받고 태어난 사람같았다. 순수한 눈망울과 소년같은 아름다움은 순정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하얗고 깨끗한 것이 더럽게되는것은 한 순간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초상화를 그려준 바질 홀워드가 소개해준 헨리 경에 의해 타락에의 눈을 뜨게 된다. 점차적으로 순수한 자아에서 본능적이고 유아독존적인 자아로 변질되어간다. 그러던 중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난것처럼 순수한 시빌 베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이 빠진다. 사랑으로 모든것이 아름답게만 보이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터져버린다. 모두를 시빌이 연기하는 극장으로 초대한 그 순간, 시빌은 도리언의 사랑’에 혼이 나가 극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연극은 삼류배우의 연기로 비난을 면치못하고 도리언은 시빌의 연기에 수치를 느끼자 사랑마저 시들해져버린다.지독한 사랑에 빠져있던 시빌에게 도리언은 가혹한 비난과 사랑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매몰차게 언제 사랑했냐싶게 시빌을 버린것이다. 시빌은 이 충격으로 자살을 선택한다.도리언의 잠깐의 후회와 비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시빌의 죽음은 연극에서의 완벽한 죽음’의 연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 후로 도리언 그레이가 걷게되는 욕망으로 점철된 탐욕의 길’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게된다. 사람들은 그를 혐오하면서도 그 아름다움 앞에 현혹되었고, 그의 외면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그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늪’처럼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깊게 빠져드는 소용돌이에 빠지듯이 말이다. 도리언 그레이가 타락하면 할수록 그의 초상화는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다. 외면적으로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지만, 그의 영혼은 점점 흉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었던건 도리언 그레이의 혐오스럽게 변해가는 내면의 양심이 잔혹하리만치 아름답게 묘사되어진다.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보존하기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도리언 그레이’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진 초상화 속에서 비틀리고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도리언 그레이의 순수했던 영혼은 자신이 얻고자 한 외면적인 아름다움, 젊음, 쾌락, 욕망,오만,자기기만의 온갖 것들을 뒤집어쓴 채 시들고 만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빛나는 외모와 모두가 원하는 재력이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아름다워지는건가? 아름다운 외모는 세월에 스러질것이고, 모든 본능적인 욕구들은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걸 모두 갖게되면 인간이 행복할까? 아마 더한 갈증을 느낄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하면서도 과연 나 자신이 보여지는것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善선에게 시니컬한 비웃음과 극한 쾌락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헨리 경과 도리언 그레이의 대화등이 매우 흥미롭다.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리는 나긋하고 그럴듯한 그의 말들은 솔깃하게 들린다. 또 어떻게보면 정말이지 그렇게 느껴지기도한다. 독한 향기에 어지럽다.고 해얄까 , 아주 매혹적이고 우아한 가식이고 위선인데, 역겹다기 보다는 몽롱하다고 해야겠다.

취할듯 탐욕스런 매력’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도리언 그레이가 추구하는 화려한 모든것들이 어떻게 추하게 자신을 잠식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감정묘사가 정말이지 탁월하다. 뇌와 가슴을 마구마구 후비는 묘사였다. 도리언이 공포에 질식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실감나게 그려진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이 아니라 추악하고 경멸스런 모습도 가려지지 않고 다 보인다면, 아마도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風の傳說(바람의 전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중에서

일본의 니카타현의 자그마한 온천마을을 배경으로 작가가 직접 그 지역에서 한달정도 머물며 쓴 작품이어서 그런지 실감나는 자연묘사가 곳곳을 장식한다. 생각보다 짧은 내용이었고, 보지도 않은 게이샤'라는 영화도 떠오르고 지금껏 예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게이샤들의 삶도 조금쯤은 엿볼수있었다. 엄격한 규율과 전통으로 어릴때 입문해서 진정한 예능인이 되는  사람은 드물다는 藝者(게이샤).

도쿄에서  온 유유자적한 시마무라와 내려오던 기차에서 마주친 요코, 묵게된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일하고있는 고마코. 대략의 줄거리는 고마코와 시마무라의 여행지에서의 인연과 그림같은 순백의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박한 이야기다. 솔직히 소박하다고 말하기에는 사람간의 사랑인지 정념인지 헷갈리는 그들의 인연이 그려진다. 상상을 하며 소설을 읽는것이 도움이 많이되기도 하는데,  일본 영화 오겡끼데스까'라는 대사로 유명한 <러브레터>의 배경을 상상해도 좋을것같고, 좀더 은밀하고 깊은 산골의 어느 마을을 상상해도 좋을것같다. 눈이 오면 30~40cm는 쌓여 오도가도 못하는 눈의 나라를  떠올리며 등장인물을 따라가 보는것도 소설을 더 실감나게 해줄것같다.

 

아무래도 번역서다 보니 와닿는 부분이 약하다고 해야되나 역자가 말했듯이 유명한 작품이고 불후의 문학작품이다 보니 그 글 자체를 우리나라말로 온전한 뉘앙스로  살린다는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렵게 번역하지 않았나싶고, 대사 부분은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해야좋을것같기도했다. 번역이란 정말이지 어렵고 새로운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것과 같다고 했다. 일본 만화영화에서도 직접적으로 해석하면 이상할 것들을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해서 번역한걸 보게된다. 아무래도 일본식과 우리나라식의 어투나 뉘앙스의 차이를 잘 살려 표현한다는것은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설국>이 영화로도 있다고 하니 그건 어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솔직히 아쉬운것이 소설을 읽으며 그려지리라 여겼던  아름다운 풍광도  동양미 넘치는 회화적 언어에 탁월하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 맛을 백프로 실감하지는 못했다. 일본틱한 표현이 어색했던건지, 전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 자꾸 끊기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 그것이 한번에 쓴 소설이 아니라 여러번에 걸쳐 쓴것이라 그런건지 흐름을 끊는 언어적 표현때문인지 하나의 이야기 였다기보다는 한장 한장 나누어진 그림엽서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얄까. 연결되어있는것같으면서도 이해는 잘 안되는 그런 ,

 

1년에 한번 찾는 시마무라와 온천장의 고마코의 관계도 좀 묘하고, 무위도식한다는 한 마디 말로 언급한 시마무라의 마음도 잘 이해가 안되고 예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의 아들을 위해서 게이샤가 되고, 현재의 애인인 요코와 함께 죽어가는 남자를 간호하고있는 고마코의 정서도 알송달송이다. 시마무라를 좋아하는 고마코와 요코에게 묘하게 끌리는 시마무라, 여기에 나오는 세 남녀의 마음이 뭔가 불명확하고 선명하지 않다. 다만 행동과 간혹 등장하는 시마무라의 혼잣말'이 설명을 대신하고 있을뿐이다. 일본의 고전시를 보는듯한 느낌도 든다. 정서적인 차이를 명확히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 지방의 고유한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왜 이런 표현이 나오는지 알 수 없을테니 말이다. 

일본의 향토색 짙은 표현들이 많고, 요즘엔 사용하지 않는 옛말들도 나오니 더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여수(旅愁) : 나그네의 근심,걱정 / 여행지에서의 고난,걱정- 아무래도 고전소설이다보니 예스런 분위기를 내려고 이런 표현을 썼나본데,  일본어로 어떤 표현을 썼는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했고, 어쩌면 일본어 한자도 똑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하다.  제사(製絲)공장이라는 말을 요즘에도 쓰나? 방직공장은 들어봤어도 제사공장이라고 하니 확 와닿지 않는다. 아마도 모르는 한자어가 다수 등장해서 더 어렵게 느꼈던거 같기도하다. 예전에 동화책 번역하는 어른이 내가 안다고 다른이들이 모두 안다고 생각하고 번역을 하면 안된다고 했던게 생각난다. 아마도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시다 보니 좀더 쉬운 표현을 찾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쉬우면 모두가 이해한다. 소수만 이해하는 번역이라면 고급번역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이 되지 않겠나.

 

암튼, 너무 기대를 하고 봤던 책이라 그만큼 감흥이 오지 않아서 그런지 나의 이해도를 탓하기도했고, 일본영화에서 내 취향이 아닌 영화를 보고나온 기분도 든다. 이 소설이 대학생들에게 추천소설이라고 들었다. 노벨상을 받은 작품이 모두 감동적이지 않듯이, 짧은 내용이니 언젠가 한번 더 봐야할듯하다.

일본 고전문학에 대한 이해가 좀 딸리는거 같다. <설국>이 하얗고 찬란하지만은 않아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