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누군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어떻게든 그 사람의 아픔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라며 위로를 한다. 하지만 상대가 그 아픔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면 금방 짜증을 내며 포기해버리기 마련이다. 결국 그 사람의 아픔은 그 자신의 것으로 남게 된다.
이렇게 절망이 찾아와 나를 힘들게 할땐 어떻게 해야 할까?

 작년에 1984를 읽으며 느낀 충격은 대단했다. 책을 덮고도 며칠동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수 없을 정도였다. 놀라운 작가의 상상력과 글쓰기의 힘은 그 후로도 살아가며 순간순간 그 내용이 생각날 정도로 내 삶속에 깊이 파고들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자마자 읽고 싶었고, 책을 덮으며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걸 느꼈다.
조지오웰, 그는 글을 쓰기위해 모든 걸 다 바쳤던 정말 타고난 글쟁이였다.

에릭(조지오웰은 필명)은 1903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만 인도에 남겨두고 엄마와 누이들과 영국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는 귀족들이 다니는 예비학교에 에릭을 장학생으로 넣는다. 에릭은 밤마다 오줌을 쌀 정도로 부적응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어머니가 원하는 공립학교에 또다시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된다.하지만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명문학교인 이튼에 입학하면서 멈추게 된다.공부보다는 축구나 글쓰기,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시간을 보내고 결국 형편없는 성적을 받게 된다.

더이상 공부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된 에릭은 취업을 결심하고 입사시험을 치뤄 어릴적 환상이 남아있는 버마로 발령을 받게 된다.하지만 5년 남짓한 버마생활동안 그는 영국제국주의에 대한 회의와 증오심을 느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설것을 결심하게 된다.
"내가 벗어나고자 했던 것, 그것은 단지 제국주의만이 아니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의 온갖 형태였다.(...) 억압에 대한 나의 증오심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순간, 나에게는 실패만이 미덕으로 보였다."-117쪽-
그는 글감을 찾기위해 밑바닥인생들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접시닦이등 노예같은 삶을 자청하며 글쓰기에 매진했던 그는 결국 어릴적부터 좋지 못했던 기관지염, 각혈등으로 고생한다.


버마의 체험과 밑바닥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들이 꾸준히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1932년 그는 드디어 필명을 '조지 오웰'로 정하게 된다.
밑바닥인생을 경험하며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한 그는 '사회주의'를 신봉하게 되고, 이때부터 1984의 세계를 떠올리는 생각들이 싹트기 시작한다.
"불공정함의 상징적 희생자들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작가가 분담해야 할 참여의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181쪽-
그리고 스페인내전이 발생하자 전쟁에 자원해서 참가하게 되고, 목에 관통상을 입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전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후에 '카탈로니아 찬가'를 탄생시키는 밑바탕이 된다.


그의 기대와 달리 사회주의가 패배하고 파시즘이 승리하는걸 보며 그는 좌절한다.
"최고의 통치자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라고 결정해버리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그런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듯 보인다.이미 이런 종류의 무언가가 정착되고 있지 않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216쪽-
이후 그는 소비에트체제가 무언인지, 스탈린이 이끄는 전체주의 국가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동물농장을 쓰기 시작한다.
어렵게 출판한 동물농장이 놀라운 인기를 끌자 그는 그동안 준비해둔 자료들을 토대로 <1984>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1984>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그는 또다시 폐결핵을 심하게 앓게되어 입원하게 되고 퇴고작업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1984가 미완으로 남는다면 원고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파기하라"며 유언하기도 한다.


결국 <1984>는 그의 건강을 잡아먹으며 완성된다. 그는 <1984> 완성본을 출판사로 보낸 후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1984>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만 망가진 그의 건강은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해져 있었고, 그는 결국 46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온전히 책을 읽을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는 '쓸데없이 미리 걱정하지 말자'하는 생각을 하곤 지워버린다. 누구나 늙는다는 것,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정말 너무 슬픈 일이다.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의 저자인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으로 이 세상과 이별하려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었을때 과학자의 삶을 살며 누구보다 수학을 사랑했던 할아버지, 하지만 이제 그의 기억은 기억의 집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한 채 늘 헤맨다. 점점 작아져만 가는 기억이라는 공간, 매일 아침에 눈을 떳을때 먼 우주를 헤매고 있는 느낌, 그 먼 곳에서 다시 집까지 찾아오는 일이 점점 벅차감을 느끼는 일은 끔찍하다. 그런 할아버지 곁에서 헤매는 기억속을 함께 하는 이는 손주'노아'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하늘도 그 마음을 다 담지 못할'만큼 사랑하는 노아와 작별해야 한다....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 우리들 삶은 죽음으로 종결된다. 살면서 느끼는 그 행복, 슬픔, 모든 희노애락이 모두 죽음으로써 사라지게 된다. 우린 작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살아가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라질 것들을 움켜쥐기 위해 이리도 아둥바둥 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가장 평범했던 일들이 그리워. 베란다에서 아침을 먹었던 거. 화단에서 잡초를 뽑았던 거. 할아버지 또한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이별의 날이 다가온 그에게 남은 기억은 바쁜 날들이 아닌, 그저 너무나 평범한 순간들이었다. 할머니와 함께한 따스한 기억들만 할아버지의 머리속을 채우고 있었다. 처음엔 열쇠를 잃어버리다 결국 사람까지 잃어버리고 그러다 그 모든 걸 다 잃어버리고 가야하는 인생. 어차피 잃어버릴 날들, 오늘 조금 더 행복하고 오늘 조금 더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게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짧지만, 의미있는 울림을 주는 따스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