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거구나하는 느낌을 주는 책,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

작가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끈기있게 깊이를 가지고 조사한 자료로

옷감을 짜듯 촘촘하게 짜놓은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맘껏 누릴 수가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하면 의례껏 상식처럼 떠올리던 지동설...

그와 그의 발견을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그 앎이 결코 진정한 앎이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와 그의 발견-이책에서 쓴대로 하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둘러싼 이야기를

귀가 솔깃해지고, 눈이 동그래지도록 일깨워주며 들려주는 작가의 노력이 사뭇 놀랍기만 하다.

그의 발견이 문득 자기한테 던져진 사건이 아니듯,

오랜 시간동안 연구와 그를 돕는 이들의 마음이 모아져 연구의 결과가 빛을 보게되는 과정도 극적이다.

 

익숙한 사실의 새로운 발견과 재구성, 재인식이 주는 뿌듯함이 바로 참된 지식을 쌓는 즐거움인 반면,

씁쓸하게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앎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둠이 주는 아픔이다.  

  

만일 누군가가 600권이 넘게 남아있는 16세기의 책을 거대한 전시실 안에 함께 모아두었다면, 비록 이 책들이 제목과 내용이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전혀 같은 책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16세기에 인쇄된 책들은 제본되지 않은 채 팔렸으므로 구매자의 선택에 따라...제본이 각각 달랐다....때로는 검은 색, 붉은 색, 선홍색, 갈색, 황갈색, 암청회색...으로 그 색상이 다양했다. 344쪽

 

20세기에 한 연구자의 30년 노력으로 이루어진 "코페르니쿠스의 <회전에 관하여> 주석에 관한 조사"의

결실로 찾아낸 초판 277권과 두번째 판 324권에 관한 이야기다.

새로운 앎의 역사를 이뤄낸 그의 결과물들이 새로운 이들의 손길과 영혼을 거쳐

정말 다양한 색으로 피어나 빛을 말하는 것 같다.

한사람의 노력과 참지식에 대한 집념이 인류에게 주는 혜택이

이렇게 다채롭고 풍성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그려주는 것 같아 정말 경이롭다.

 

미국 남동부의 한 박물관에서는 지구의 지질 역사를 45억년에서 성서의 수천 년으로 축소시키고 공룡이 인간과 함께 공존했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354쪽

 

물론 그랬다. 벌써 오래 전에 책을 한권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사실, 굳이 다른 말로 둘러댈 필요도 없다. 노인은 책을 여러 권 썼다. 그게 그의 직업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해, 글쓰기가 직업이 된 것은 그에게 별다른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다...더 정확히 말해, 글쓰기가 그냥 직없이 되고 말았다. 별다른 직업이 없었기에. 18쪽

 

이렇게 귀를 막음으로써 세계 전체라 할 수 있는 오글뤼츠와 거짓의 계곡을 폐기시킬 수 있었다. 29쪽

 

그러니까 이렇게 되었다. 모든 확신을 잃어버렸음에도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나는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했다. 때로는 실어증을 동반한 신경쇠약증으로 때로는 공격적 태도를 선택하였다. 계다가 나는 사리분별있는 사람이기에, 내가 외부세계보다 훨씬 더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비교적 일찍 알아차렸다. 나약함과 무방비상태에서, 게다가 어느ㅡ 정도의 혼란과 불확실한 희망에서 나는 마침내 그을 쓰기 시작했다. 준비되었고, 끝이다. 보라. 이것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이 말로 이 짧은 글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끝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해야만 했다. 계속 써야 했다. 그렇다. 두 살인자가 대화하듯, 신뢰하며 혐오감을 느끼며 속을 털어놓았다. 비록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이 무감각하게 단순화된 살인처럼 절망적이며 객관적이라고 할지라도, 더 나아가 똑같이 쓸모 없는 통계자료가 될지라도......109쪽

 

그는 아주 신중하게, 교활하게, 생생하게 또 교양 있게 글을 썼다. 117쪽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주위에서는 모든 것이 끓어오르며 위로 솟아오르고 단어들이 사방으로 윙윙거리며 날아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전주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전선을 타고 생각과 충고와 계획과 희망이 한 사람의 머리에서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번쩍거리는 전기의 방전처럼 튀어 옮겨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이러한 거대하고 일반적인 생산과 소비의 관계에서, 세상의 이러한 거대한 물질변환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바로 이것으로 내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그 순간 알아차렸다. 나는 소비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소비되어지지도 않는다. 129쪽

 

쾨베시를 적대시하는 행복한 분주함, 암묵적인 동의가 그의 주변에 형성되었다. 207쪽

 

"없어요!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지요. 어느 것에 대해서도 결코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산다는 건 믿음이 넘쳐흐르는 샘물이 아닙니다. 산다는 건, 난 잘 모르지만 산다는 건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는 거예요." 218쪽

 

"이게 문제입니다. 아마도 난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었어요. 무얼 해도 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난 두려워서 시도를 해보지 못했어요." 270쪽

 

인생의 깊은 슬픔을 경험하고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으스대지 않고 세상의 명령에 따라 밝히려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379쪽

 

소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쓰며 삶을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444쪽

 

 

난 이해할 수 없어요

카카오로 초콜릿을 만든다면

당연히 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루 종일 흘리는 그 많은 땀이

카카오에 떨어져 젖으니까요

 

나는 매일 상상해요

초콜릿은 어떤 맛일까?

누가 나에게 말해 주세요

(17쪽 진짜 진짜 달콤해?)

 

자고 일어나면 불쑥불쑥 커져서

머리가 지붕에 닿을까 봐 걱정하던 때도 있었어

벽돌을 열 장도 넘게 머리에 이고 다닐 쯤엔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어

휘어가는 다리와 아픈 무릎이 더 걱정이었으니까

(23쪽 머리 위의 벽돌)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문명의 편리함들과 상품들,

그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당연한 혜택과 풍요로움으로 허락되어지까지

어떤 이들의 수고와 땀방울이 깃들어있는지를 고민해보았던가.

한번도 맛본적 없는 초콜릿을 위해 쉼없이 조그만 손이 나무열매를 거두고,

한번도 신어보지 못한 신발과 갖고놀 엄두조차 못내는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본드냄새에 찌들어가며 조그만 손이 손가락이 휘도록 바느질을 계속했으리라 생각해본적이 있었나.

 

요즘같이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면 백화점이나 쇼핑센타에 들어갈 때 참 민망한 기분이 들때가 있다.

눈길을 밟으며 들어온 내 발이 남기는 시커먼 자국을 열심히 닦으시는 분들의 수고가 피부로 느껴져올때가 그렇다.

쉼없이 드나드는 사람들의 자국을 그분들 또한 쉼없이 닦아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그 당연함과 그것을 곁눈질하며 불편해하는 눈길들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평상시에는 알지못했던 백화점이 쇼핑센타의 깨끗함이 누군가의 보이지않는

끊임없는 수고로 인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만 여겨왔다.

그 보이지않는 수고를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요즘 같을 때는 피부로 와닿는 것을 느끼는 게 몹시 불편하다.

 

내가 보지못하는 곳에서 숨죽이며 행해지는 누군가의 끊이지않는 수고,

그 노동의 절박함을 견디며 인고해야만 하는 삶의 무게...

그것이 내 눈앞에 도드라져 오는 때의 민망함과 죄송스러움,

다시 내눈앞에 않보이는 곳으로 치워주기를 바라는 불편한 속내...

그 이기적인 속내마저 까발려져 흘리게되는 찐득한 눈물이

이책 <넌 아직 몰라도 돼>를 읽는 내내 눈시울을 따갑게 했다.

 

3~4살의 아이들까지도 어른의 즐거움앞에 희생제물이 되어

먹지도못한 빈약한 몸으로 낙타등에 묶여 내지르는 비명소리속에 낙타경주를 즐기는 이야기까지도

비겁한 마음속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뿐이야하며 애써 물리적 거리감을 찾는데,

책의 절반을 넘어서자 2부에서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어딘가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려주고 있다.

차마 눈을 돌려 외면할 수 없는 이땅의 현실이며 아픔이고, 우리가 외면해온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어둔 구석에서 작지만 힘있게 목청을 돋우는 귀뚜라미의 소리를 이책에서 듣는다.

누군가의 가슴한자락 울릴 수 있기를 바라며 쉼없이 울어대는 울음소리...

아마 이책을 쓰고, 그리고, 엮어낸 분들이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누군가 그 한사람의 마음을 울리길, 한사람 한사람의 새로워진 마음이 모아져서 이 세상이 바꾸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