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엿소리는 장례 의식 때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일종의 노동요다. 노래의 내용은 고인의 살아 생전 업적과 덕망을 평가하고 이별의 슬픔을 말하기도 하며, 내세에서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또 남은 이들에게 삶의 집착과 미련은 덧없다는 인생무상의 교훈을 남기기도 하며, 상여를 메는 상여꾼들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도 담겨 있다. 97쪽

 

상엿소리와 그와 더불어 한 평생을 걸어온 이의 삶의 기록.

이책 <이제 가면 언제 오나>는 책표지의 사진이 주는 첫 느낌에서부터 특별했다.

표지를 꽉 채운 주름지고 두터운 손은 금방이라도 흔들어 쨍한 소리를 들려줄듯 종의 손잡이를 야무지게 잡고 있다.

정감있는 흑백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주름진 손의 마디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잔잔히 느껴졌다.

그리고 윤기가 흐르고 단단해보이는 종의 모습에선 금방이라도 울려질 쨍한 소리의 힘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단단히 종의 손잡이를 붙든 손매와 종이 어우러진 전체적인 모습에서는 사진 뒤로 감춰진 주인공의 이야기, 

책을 펼쳐 접하게될 그만의 이야기가 맵시있고 정갈하게 잘차려진 식탁처럼 맛깔날 것을 기대하게 해주었다.

 

"말은 안 허지만서도 좋아했겠는가? 미안허제, 가족들헌티. 천한 벌이했응께."

그랫따. 그의 자랑 안에는 항상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묻어 있었다. 전통문화다, 전통소리를 계승해야 한다, 이런 건 관심 없어 보인다. 164쪽

 

"...우덜 노인대학교 대표로 나가 또 이등을 해불고. 순천 여자가 일등을 하고. 또 나가 이짝 눈이 안 보여. 시각이 장애자여. 담양에 장애자 노래대회가 있었제. 거 가서 일등을 해불고." 180쪽

 

책을 만드는 일이 참 즐거웠을 것 같다.  

한 개인의 삶의 기록을 소중하게 담아내는 일이 본인과 그 가족에겐 얼마나 큰 선물이었을까.

자신의 소박한 삶이 누군가의 정성으로 책으로 엮어지는 것을 설레며 기다렸을 이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적지않은 자산이 될 것이다.

특별한 사람의 격정어린 삶의 기록도 아닐 뿐더러 애써 힘주어 뭔가를 그려내려하지 않아 더욱 그러하다.

전통문화라고 애써 큰목소리를 내려는 의도나 계승이라는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억지스런 걱정이나 허세는 작가의 글이나 주인공의 말에서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장애마저 별일아닌 듯 뒤늦게서야 얘기하는 주인공의 풋풋한 이야기라니...

두 사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와 그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소중히 엮어내는 이만이 나누었을 깊은 애정과

외떨어진 두사람의 삶이 특별한 관계로 연결되어지는 따뜻한 소통의 정이 느껴진다.

 

그를 찾는 내 발걸음이 그에겐 반갑고 재미있긴 하지만, 정작 당신은 "이렇게 날마다 와서 힘쓰는" 내게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득이 생길지 못내 미안하다고 말한다. 한번은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식사 대접받는 게 미안하다며 손수 수확한 쌀을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우덜은 신세지곤 못 사는디"한다. 계속 사양하기 죄송스러워 밥을 사달라고 했다. 소주도 시켜주신다. 쌀 한 가마니만큼 귀한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을 마셨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에. 194~195쪽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삶을 살아내는 각자의 걸음걸음이 다 소중하게 여겨지고

다음 세대의 소중한 자산이 될거라 믿어지게끔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기록이 더욱 많이 남겨지고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길 기대해본다.

한국의 근대는 분명 기념비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 많은 이들은 실패뿐만 아니라 성공 또한 고통을 양산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바야흐로 한국의 근대는 열망의 대상에서 성찰의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었다....한데 한국의 종교들은 한국의 근대를 여전히 '성장의 기억'으로만 해석하고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시민사회는 그러한 종교의 시대착오성에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22~23쪽)

 

1960년대 이후의 미국적 모던은 미국에 대한 선망과 겹치면서 맹렬하게 수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상품은 그 열렬한 소비자들에게 개인주의에 대한 낭만적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지향하는 것(개인주의)과 몸에 밴 것(군사적 집단주의)이 이질적으로 교합된 육체, 그것이 1970, 80년대 청(소)년의 공통된 존재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이질적인 것의 교합은 심각한 존재의 불안을 의미했다. (96~97쪽)

 

서구 신학 또한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의 산물이었음에도 초시간적인 진리 담론처럼 행세해왔다. 그것은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서구 제국의 팽창주의와 서구 그리스도교의 선교론은 '쌍생적'이었다는 문제 제기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제기된 대표적인 신학 담론이 '미시오 데이(Missio Dei) 신학'이다. '신의 선교'라는 뜻의 '미시오 데이'라는 용어는 1952년에 처음 사용되었고, 1960년대에 서구 신학에 대한 서구인 자신의비판적 대체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다. 이에 대립되는 개념은 '교회의 선교'다. 교회의선교는 이제까지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서구 제국주의적 선교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이의 모습으로 세계와 만나 세계를 섬기는 것, 그것이 '신의 선교'라는 것이다. 114~115쪽

 

나는 이 위기의 요체를 '교회라는 형식의 위기'로 해석한다. 교회라는 형식 자체가 오늘날 그리스도교 위기의 진원지이다. 이제 교회라는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교회라는 관성적 존재 양식의 특징은 '팽창주의적인 배타적 공동체'라는 데 있다. 즉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자기 중심적 체계가 그리스도교적으로 정착한 것이 교회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질서를 지켜내기 위해 정전화(canonization), 교권화, 교리화의 장치를 발전시켰다. 바로 이런 관행이 교회의 배타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외부를 향해 정복적으로 침투해가는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162~163쪽

 

그런데 에런라이크는 이와 같은 긍정의 담론이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전가'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비판한다. 즉 시스템은 공정하므로, 실패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무능력과 과오에 대한 사회적 처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 사고의 신은 후기자본주의적 소비사회의 자본과 같은 존재로 이해되었다. 그 신은, 성공을 이룬 이는 받을 만한 것을 받은 것이라고 축복한다. 하여 축복받을 만한 이의 존재가치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축복을 받지 못한 자에게는 채찍을 휘두른다. 신앙을 굳건히 하라고. 그것은 곧 자본의 원리에 충실히 살라는 뜻이기도 하다. 170쪽

 

요약하자면 해외 선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감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교회 성장의 위기가 심화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긍심이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을때 우연히 발견된, 효용성이 매우 큰, 자긍심 복원을 위한 대안적 선택이었다. 180쪽

 

하지만 적지않은 비기독교인들은, 이 교회의 사례에서 보듯, 교회 시설을 공공적 공간처럼 이용하는 것을꺼려한다...교회가 다른 종교의 공간을 우상이라고 배척하고, 사회의 많은 부분을 '세상의 것', '무가치한 것'이라고 폄하해온 것처럼, 이제는 많은 비기독교인들도 교회를 그렇게 대하고 있다. 어떤 사소한 얽힘도 싫다는 혐오감의 표현이겠다. 200쪽  

 

20여년 전, 김지철 장신대 교수는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본다'는 민중신학자들의 주장은 민중 우상주의에 다르 ㅁ아니라고 비판했다. 성서를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리스도의 눈'이란 무엇인가? 형식논리만으로 보면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없다. 왜냐하면 교회의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조차 너무 신성화된 것, 인간의 절대 타자성 범주에 있는 것이어서 해석하지 않으면 도무지 표상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신학의 언어로 표상하고자 했던 신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그리스도를 만들어냈다. 225쪽 

에세이집을 오랜만에 펼쳐들었다.

나에겐 낯설은 일본작가, 이츠키 히로유키...

작가소개가 대단하다. 그런만치 더 어색하고 낯설다.

책날개의 저자소개부분이 앞뒤 날개를 다 채우고 있다.

그러고도 한참을 모자란 듯 촘촘한 글씨들은 여백을 밀어내는 듯하다.

 

작가도 그의 글맛도 모른채 제목의 뜻풀이만을 마음에 담아 펼쳐든 책이다.

<대하의 한방울>...큰 물(큰 강)에 담겨진 물 한방울...

사람이, 인생이 그러하다는 뜻일진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도 여겨진다.

어쨌든 제목의 의미가 심상찮아 시작된 책읽기여서 그런지,

읽는 내내 제목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았다.

작가도 책의 곳곳에서 제목을 되풀이한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은 나뭇잎 위로 떨어지고, 한 방울의 이슬은 숲의 축축한 지면에 떨어져 흡수된다. 그리고 지하의 수맥은 지상으로 나와 작은 흐름을 만든다. 이윽고 시냇물은 강이 되고 평야를 빠져나가 대하로 합류한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바다로 흘러드는 대하의 물 한 방울이 우리의 생명이다. 탁한 물이든 오염된 물이든, 모든 물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 바다는 넓어진다. 이윽고 태양 빛에 달궈진 해수는 증발하여 하늘의 구름이 되고, 다시 빗물이 되어 지상에 쏟아진다. 24쪽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물 한 방울이지만 작은 흐름을 만들고, 강을 만들고 바다를 만든다.

그 조건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겠지.

저자는 애써 낮아지라는 식의 설교조의 말들은 늘어놓진 않는다.

대신에 모든 걸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한다.

 

자기 안에 있는 혼탁하고 뒤섞인 악랄한 색, 그것을 그대로 응시하며 인정해본다. 그리고 그 안에 흐르는, 커다란 우주로부터 시작된 생명의 흐름에 맡겨본다. 마치 대하의 한 방울처럼. 바로 그런 삶의 방식에 희박한 생명력을 되살리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닐까요. 104쪽

 

자신안의 엄연히 존재하는 어둠과 부정, 뒤엉켜 알 수 없는 감정의 회색지대...

그 모든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한다.

부정적인 것들을 떼어내라고, 아님 꼭꼭 눌러놓은채 꿋꿋이 살아가라고 세상은 말하는데.

어느 정신분석의의 말처럼, 그런 일에 허비되는 에너지를 되찾아오라고 하는 것 같다.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날까 늘 긴장하고 사는 나 자신에게 쉼을 주라는 말 같다.

호흡을 고르고서 숨가쁜 이세상에서 나의 어둡고 아파하는 모습들에 귀기울여주라는 말로 들린다.

나의 못난 모습들을 끊임없이 밀어내던 어리석은 행동들을 그만두고,

병들고 뒤틀어지고 희망없어보일지라도 그런 내모습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같다.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스스로를 받아들여줄때, 또다른 이들을 받아들수 있겠지.

그들이 탁한 물이던, 오염된 물이던 상관없이...

내가 깨끗하다고, 내 삶은 평화로워야만 된다고 고집하며 착각하며 살때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겠지만.

나 자신이 탁하게 물들어있고 오염되어 지독한 냄새가 나는 물임을 인정할 때 그 누구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대하의 물 한 방울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야 강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나와 다른 물방울들과 만나 서로 한데 섞여져야지만 되어질 일들이라는 것이

너무나 크고 무거운 슬픔으로 가슴에 내리앉는다.

그래야지만 저 높은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야지만 눈부신 비가 되어 이땅의 생명들을 적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낮아지고 한데 섞여지는 것을 그 무엇보다 힘들어하는 '나'라는 벽을 더욱 묵직하게 느끼는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