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있는 '게으름'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말 그대로 게으름을 피우라고 이 책은 말한다. 게으른 삶을 어리석다고 치부하지 말라고 한다. 게으름은 나름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평소에도 빈둥거리던 사람에게 게으르기까지 하면 인생 망친다. 따라서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도 얇아서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한 명이 아니다. 게으름에 대한 몇 편의 수필이 이 책에 묶여 있다. 몇 가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워낙 게으름을 타고나서 늘 빈둥거리며 사는 이들은 드물다.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뒤섞기 일쑤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장 깊숙이 가라앉았다가 그득 차서는 이윽고 살점 한 조작이 된다는 것이다." (11쪽)

"우리는 휴식 시간이나 여가 시간이 있어도, 이를테면 일요일에도 계속 움직인다. 심지어 평일보다 더 열중해서 움직이기도 한다." (12쪽)

"늦잠은 단박에 일요일의 시간이 평일의 시간과 다름을 알려 준다." (118쪽)

내용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천 년 전 예수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꼬박 사흘을 추위에 떨면서 약삭빠르기도 하고 잘 속기도 하는 가련한 몇몇 떠돌이가 도대체 뭘 기다렸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랑은 남아 잇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144쪽)

이 책은 1905년 당시 최고의 러시아 전함 포템킨 호에서 일어난 선상반란을 다루고 있다. 당시는 제정 러시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패배했다. 포템킨 호에서는 수병들이 장교의 학대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수병들에게 제공하는 수프의 재료인 고기가 썩었다. 악취가 풍겼고 구더기가 득실거렸다. 수병들은 이를 함장에게 보고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고기를 검사한 군의관은 이상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더기는 해충이 아니므로 바닷물에 씻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수병들이 항의할 움직임을 보이자 함장은 무력으로 해산을 명령했다. 결과적으로, 수병들은 봉기를 일으켜 장교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전함을 장악한다. 전함이 항구(오뎃사)로 향할 즈음, 이 봉기 소식을 접한 시민은 수병들을 환영하려고 부두로 나왔다. 출동한 정부군이 시민에게 무차별로 총을 난사한다. 분노한 시민과 수병들은 합세하여 혁명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다만 이 사건이 12년 뒤 볼세비기 혁명에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 전함 포템킨 봉기 100주년을 맞아 2005년에 이 책이 출판되었다. 1925년에는 흑백 무성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요즘 등록금이 비싸다며 대학생들이 촛불시위를 한다. 정책을 펴는 사람이 아니라 등록금을 내는 당사자인 학생이 비싸다고 느끼면 비싼 것이다. 정책이 합법적일지라도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역사적으로 국민은 항상 옳았다. 이 책이 그린 그 옛날의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책 <나가사키>는 읽어볼 만하다. 다만, 정색한 채 읽을 필요는 없다. 머리를 쥐어짜면서 읽는 책 중간에 막간으로 읽기에 좋은 책이다. 두께가 얇고, 내용도 복잡하지 않다. 표지를 보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은 잔잔하다. 미닫이문이 달린 다다미 마루에서 햇볕을 즐기는 여인의 모습이 표지다. 이 여인은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이다. 등장인물이라야 두 명이 고작이다. 나머지 한 명은 50대의 독신 남자다. 이 남자는 기상관측사인데, 직장에서 거의 따돌림을 당한다. 회사와 집만 왕복하는 따분한 삶을 산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 집에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직감에서 출발한다. 냉장고에 넣어둔 요구르트가 없어지고 주스가 줄어드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중요한 물건이 없어지지는 않아서 도둑이 든 것은 아니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지켜보던 중에 한 50대 여자가 모니터에 잡혔다. 경찰에 신고했고, 그 여자는 경찰에 잡혔다. 그 여자는 1년째 그 남자의 집에서 살았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다락에서 잠을 잤고, 남자가 출근하면 다다미 마루에서 햇볕을 쬐었다. 그 남자는 그런 사실에 치를 떨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여자에 대한 연민도 느꼈다. 자신에게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 책은 세 꼭지로 나뉜다. 하나는 위에서처럼 남자의 시각이다. 두 번째 꼭지는 여자의 시선이다. 살 곳이 없는 여자는 이집저집을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그 남자 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 집 남자는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한다. 조심성 있게 숨어 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목욕도 아침에만 한다. 집주인 남자가 돌아오기 전에 물기가 말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1년을 살았지만 결국 꼬리가 길었다. 경찰에 잡혀 5개월 감옥살이를 했다. 출옥 후 그 집을 다시 찾았지만, 남자는 집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 

이어지는 세 번째 꼭지는 이 여자가 그 남자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사실 그 남자가 살던 집은 이 여자가 어릴 때 살던 집이었다. 그 외에도 자신이 그 집에 몰래 들어가 살게 된 이류를 설명한다. 이 편지가 그 남자에게 전달되었는지는 이 책에 나와 있지 않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다. 

이 줄거리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저자 에릭 파이는 로이터통신 기자다. 취재차 여러 차례 일본을 찾은 그는 2008년 어느 날 한 사건 기사를 접했다. "한 오십 대 독신 남성이 부엌에서 음식물이 사라지는 걸 보고 놀랐다"는 기사의 첫머리에 끌려,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라니 더욱 흥미롭다. 

저자는 프랑스인이다. 프랑스 사람이 일본 사람을 등장시켜 소설을 쓴 자체가 이색적이다. 단순히 일본인을 등장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일본 문화와 정서를 소설에 녹여 넣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일본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마치 저자가 일본 사람인 것처럼. 

일각에서는 이 소설을 조금 더 세밀하게 뜯어보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남자와 실패한 인생을 사는 여자를 통해 현실의 삭막함을 꼬집은 책이라는 평가가 있다. 또 원자폭탄이 떨어진 역사적 사실이 시간에 묻혀 덤덤해진 현재를 지적한 소설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였을까. 이 소설은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나가사키라는 제목이 소설 내용과 큰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외국인들에게 이국적으로 보였을 터이다. 한마디로 책 판매를 늘릴 수단으로 제목을 그렇게 정했을 것 같다. 게다가 최근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건 때문에라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제목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