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의 <서유견문>을 고른 이유는 100년 전 조선 양반은 서양을 어떻게 구경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외국 여행길은 설레는데, 그 시절에 다른 나라를 돌아본 느낌은 무엇과 같을까? 설렘을 넘어 충격에 가깝지 않았을까? 조선인으로는 거의 최초로 일본과 미국은 물론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본 저자는 이 책에 그 느낌을 담았다.
책 제목이 '견문'이라니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술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100년 전 서양의 모습이 눈에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과 미국에 각각 1년6개월 머물렀고, 유럽 각국도 들렀으니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이런 오해가 있었다거나, 처음 동양인 특히 조선인을 본 그들의 반응은 어땠다'는 등의 생생함이 펄떡거릴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마치 백과사전을 읽는 듯했다. 서유견문은 총 2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천문, 세계지리, 정치, 사법, 행정, 교육, 복지, 공공기관, 종교, 학문, 풍속, 산업혁명, 세계 여러 도시 등을 설명했다. 저자가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설명한 탓에 독자는 지루하다. 100년 전에야 그 내용 자체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겠지만 지금의 사람에게는 별다른 감흥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귀국 후 2년 후에나 이 책을 집필했으므로 많은 기억이 희석되었을 것 같다. 또 다른 책들을 번역한 내용을 이 책에 첨가했다. 그러니 견문기가 아니라 논문집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권할만하다.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그처럼 방대한 자료를 한 권으로 묶은 것이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당시 사회를 유추하기에 적합한 사료이다. 예컨대,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일본과 미국의 세금액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일본은 인구 35,925,000명에 세금이 13억7,140만냥이므로 1인당 평균 액수는 38냥 남짓이라고 기록했다. 미국은 인구 57,000,000명에 세금이 69억7,039만7,400냥으로 1인당 평균 액수는 122냥 남짓이라고 했다.
또 당시 외국의 분위기를 엿볼 수도 있다. 저자가 호텔을 표현한 방법은 이랬다. "이곳의 팔레스 호텔은 세계에서도 첫째 간다고 들었다. (중략) 방 안의 시설을 설명해 보자. 백회를 바른 반자에 엷게 채색한 벽이거나, 또는 채색된 벽지로 도배하기도 했으며, 유리창에는 비단 휘장을 드리웠다."
"사람의 생각이 소리로 나타나면 말이 되고, 모양으로 쓰면 글자가 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합하여 언론의 권리라고 한다." (149쪽)
"나라가 부유하고 국민이 번성하면 세금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가난한 나라의 가벼운 세금에 비하여 납세하기가 쉬울 것이다." (219쪽)
"정부가 국채를 사용하는 법이 서양 여러 나라들과 같다면 나라의 큰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만약 이집트와 같다면 나라를 팔아먹는 근원이 될 것이다." (252쪽)
"청혼하는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의 예절과 아주 달라서 비판할 거리가 ？愎？. 그러나 다른 나라의 풍속이다. 그런 대로 덮어 둔다." (404쪽)
"그들은 묏자리를 고르면서 풍수설의 허탄한 이치를 믿지 않는다. 어느 지방이든지 정부가 숲이나 도시 가운데 건조한 곳을 정하여 매장지로 삼고, 누군든지 가리지 않고 그 안에 장사를 지내게 하였다." (414쪽)
"서양사람들이 여자 대접하는 예절을 보면 우리나라의 제도와 아주 다르다. 듣는 자의 의향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는 내가 본대로 쓸 뿐이며, 좋다거나 나쁘다는 비평은 내리지 않겠다." (4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