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즐겨 듣는  KBS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에서 고통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과  반면 아주 가벼운 자극에도 못 견딜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영화 '통증'이 떠 올랐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작은 고통에도 죽음을 느끼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했던가? 그 때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피로감과 나른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음악과 따뜻한 DJ의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귀 기울여 들었다.

한 미래 사회의 인간 사회를 그린 이야기 The Giver의 내용과 오버랩 되면서 과연 인간에게 고통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모든 것이 잘 통제되어 있는 사회에서 육체적인 고통은 약으로,  심리적인 고통은 고통을 수반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제한하고 통제함으로써 사람들은 늘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광고 속의 장면 들처럼 공허하고 거짓된 느낌이어서 오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다. 비록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사랑, 미움, 분노, 열정, 변화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지 않을지....  

오늘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 두려움도 없고 오히려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해 자신에게 닥친 위험이나 문제를 제때에 감지하지 못해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옆에 사람이 지나가거나 문을 닫는 정도의 자극, 즉 공기의 진동만으로도 고통을 느낀다니 말 그대로 살아 숨쉬는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끔찍한 느낌이었다.

나에게 고통이란 어떤 것일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남의 고통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고통 자체가 객관화된 실체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른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이라는데  ........ 내 삶에서 고통은-물론 심리적으로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감정-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문득 '고통은 의식하는 것이다 '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 하나에 베인 상처가 나면 그 상처가 주는 느낌 때문에 한동안 그 손가락을 의식하게 된다. 가라앚은 통증이 헹여나 다시 살아날까봐  한동안 조심하고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으면 더 이상 손가락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가끔씩 찾아 오는 몸 이곳저곳의 통증도 이제 내가 내 몸을 돌보고 신경써야 할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신호로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지.

그래서 인생의 고통은 나로 하여금 느슨해진 일상 속에서 나를 다시 일깨우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다짐하게 하는 알람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조심하라고... 내가 잘 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일깨워 주는 경고라고....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시간이 흐름을 거스를만큼의 큰 고통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하고 간혹 마주하게 되는 베이거나 긁힌 상처에 불과한 고통에 주저 앉거나 우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다짐해 본다. 

이 책을 읽은 지는 꽤 되었지만 다시 읽을 때도 역시 '공은 여기서 멈춘다' 말이 주었던 처음의 감동은 여전히 빛을 발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만 해도 이 책의 주인공의 폰더씨의 불행에 대한 공감 때문에 한줄 한 줄이 너무나 소중했고 긴장감이 있었다. 개개인의 구체적인 사연은 달라도 어느날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라는 말이 너무나 잘 이해되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내게만 닥치는 듯, 작은 것 하나 꼬이지 않은 것이 없고 불안하고 힘들고 벅차서 더이상 살아가야 할 의미보다 그만 두어도 아쉬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에 더 몰입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그 허무, 슬픔, 외로움.....

너무나 아파 누구를 향해서라고 할 수도 없는 분노, 그래서 삶을 포기하는 것으로써 세상을 향해 복수하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망상에 문득 사로 잡히던 순간들.....

그래서 폰더씨의 아픔이 그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와 실컷 울고 나서 다시 책을 잡곤 했다. "공은 여기서 멈춘다. 그래!  여기서! 나 스스로 멈추게 하겠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가련한 인생의 실패자로서 나는 내 스스로 변화를 꿈꾸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외칠 수 있었다.

그리고 체임벌린의 놀라운 반전이 용기있는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세번째 결단이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라는 다섯 번째 결단! 

이런 저런 것을 갖추어야 행복한 사람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해 왔던 나는 내가 과연 행복할 가치를 가진 사람인가라는 자조적인 패배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행복을 꿈꾸면서도 내가 그럴만한지에 대해 늘 의문을 갖고 있던 내게 그것은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지 자격이 아니라는 아주 명쾌한 명제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 할 수 있어! 행복이 선택의 문제라면 나는 매순간 무엇이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지를 분명히 하고 지금과는 다르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것이었지만 원칙을 알고 적용하는 행동의 문제라면 분명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숨죽여 읽었던 일곱번째 결단! 존재할 뻔 했지만 결국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모아 놓은 장소에 대한 가브리엘의 말을 읽고는 나도 모르게 숨을 헉하고 들이 쉬었다. 

그곳에 쌓여 있을 용기없는 사람들의 꿈과 목표 속에 나에게 속했던 것들이 보이는 듯했다. 수많은 두려움과 변명들과 후회들.... 그것들이 바로 지금의 나였다.

자기 계발서라는 분류에 어울리지 않게 각 장마다 살아 쉼 쉬는 이야기들이 내 마음에 파고 들었다. 내게 꼭 맞는 그 순간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들려 준 책이었다. 

감히 그 때 내가 받은 충격과 감동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빈약하고 허술했던 스토리를 좀더 치밀하고 풍성하게 만들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지금 꽤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내 삶을 좀 더 의미있게 바라보고 마음 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그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나는 행복하다.       

A life of Sameness and predictability or the memories of the true pain and pleasure of life..... 

나는 이 중 그 어떤 것을 선택할까? 

한 개인의 삶이 마치 개미 사회의 일원처럼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한 치의 오차나 예외도 없이 잘 통제되어 매끄러운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완벽하게 돌아가는 공동체가 있다. 그 공동체 안에서는 심지어 가족조차 혈연이 아닌 필요에 의해 구성되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이를 테면 각 가정의 식생활이나 직업, 결혼까지 안전한 매뉴얼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어서 두려움이나 고통없는 인생을 사람들은 만족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 모든 것에 결여된 것은 각 개인의 개성, 욕망, 욕구, 감정과 같이 개개인을 독특하고 특별하게 해 주는 것들일 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The giver 라는 제목이 불러 일으키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책 읽기는 다 읽고 책을 덮기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표지의 인물이 보여주는 그 슬픔과 고통을 간직한 표정이 계속 나를 지켜보는 듯했다. 영어로는 the giver이지만 그의 역할을 잘 설명하려면 모두에게는 잊혀진 전 세대의 기억을 홀로 간직하고 다음 세대의 담당자 (the receiver)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야 하는 사명을 가졌다는 점에서 기억 전달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날씨와 지형까지도 완전하게 통제된 매우 평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포기한 것은 끊임없이 분열과 분쟁, 갈망을 일으키고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희노애락의 감정과 자유의지였다. 그들은 인류의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추악하기도 하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동시에 괴로움과 분노를 일으키는 모든 유산을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인류의 역사, 문화, 음악, 미술 모든 영역의 책들도 금기 사항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류의 유산은 한편으로는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류의 경험과 지식의 원천이기도 했기에 이를 유지, 보존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래 사회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것이 오직 한 사람이 다른 모두의 이익을 위해 대신 그 모든 유산을 짊어 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완벽해 보이는 이 계획이 에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이 책에 묘사된 공동체의 모습은 평화롭고 매우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완벽한 이상형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이 계속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 완벽해 보이는 세상에 뭔가 분명히 빠진 것이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 

그 실체는 어느 날 the receiver로 선택된 12살 소년이 the giver로부터 전달받은 기쁨과 환희, 고통과 분노, 열망과 같은 통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알게 된 후 진실과 대면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소년이 인류의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그의 기억을 통해 보여지던 과거 인류의 삶과 그 소년이 속해 있는 세상이 대비되면서 우리의 현재의 삶과 앞으로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모습들이 혼란스럽게 겹쳐졌다.

 

누구라도 현재 불합리하고 모순된 세상 때문에 가슴 아파 했다면 어쩌면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이상적인 사회, 하지만 그 때문에 포기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과연 어느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 결론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큰 위험과 불안, 고통을 수반한다 해도 기쁨과 환희, 사랑, 희망과 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까지 포기하면서까지 얻고 싶은 안정적인 삶이란 정말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모든 것이 함께 공존하기에 더 아름답고 살 만한 것이 인생이라는 역설이 역시 오늘의 고단한 하루도 기꺼이 감내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지....

책을 덮고도 한참을 생각에 잠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