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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중앙에 있는 카파도키아 지역의 풍경은 무척 특이하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도착한 외계 행성 같기도 하고 시간을 거슬러 멀고 먼 인류 문명이 시작되는 땅에 불시착한 것 같기도 하다. 그곳을 지날 때 우리는 차창 밖으로 나무도 없는 마른 땅이 연속되며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아프리카 초원에 서식하는 동물군처럼 무리 지어 모여 있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곳은 영화 촬영지로 많이 이용되었다. 그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 편에서 나중에 '악의 축' 다스베이더가 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포드레이싱을 하는 장소이다. 지구가 아니라 어느 다른 행성처럼 보이는 그 낯선 풍경은 에르시에스(Erciyes) 산의 화산 분출로 생겨난 용암과 화산재의 충적층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지층 때문이다.
간단한 도구로도 쉽게 파낼 수 있는 연한 석질로 이곳에는 독특한 주거 형식이 많이 있다. 버섯처럼 생긴 바위에 창문이 달리고 사람이 쉬는 발코니가 있는 모습에서는 '개구장이 스머프'라는 만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또한 이곳은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지정학적인 위치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문명이 거쳐간 곳이고 여러 사적이 여기저기 숨어 있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데린쿠유(Derinkuyu)는 정말 특별한 장소이다. 데린쿠유라는 말은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데, 그 속을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우물이며 거대한 지하도시이다. 개미굴처럼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길이 뻗어 있고 그 길 중간중간 삶의 공간이 달려 있다. 지상의 도시야 하늘로 올라가서 새의 시점으로 내려다보면 전모가 보이고 구성이 보이지만, 지하 도시는 어느 곳에서도 전모를 알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쉽게 파고들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살기 쉽지는 않지만 외부 공격에 대해서는 천혜의 요새라는 말이다.
이곳은 1960년 어떤 농부가 집을 나간 닭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잊힌 과거의 도시가 갑자기 사람들에게 발견된 것인데, 물속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나, 혹은 하루아침에 용암에 덮여버렸던 폼페이와는 사뭇 다르다. 그 도시들이 지상에 있다가 어떤 계기로 물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땅에 묻힌 도시였다면, 데린쿠유는 아예 처음부터 땅속에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방공호처럼 사람들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땅속에 임시 거주처나 피난처를 구축하기는 하지만, 데린쿠유처럼 장기간에 걸쳐 도시가 건설된 예는 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땅속으로 들어가 정착한 것일까. 그 시작은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히타이트인들이 그곳에 살았던 흔적이 나와서, 데린쿠유의 기원은 멀리 4000년 전으로 잡는다고 한다. 기원전 20세기경 아시리아인이 이곳에 교역을 위한 식민도시를 만들었고, 기원전 17세기 이후 500년 정도 히타이트인이 이곳을 교역도시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히타이트의 멸망과 더불어 쇠퇴하면서, 역사의 전면으로 부각되는 일이 별로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곳의 지하공간은 꾸준히 유지되고 확장되었다고 추정되는데, 7세기 무렵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이 피신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 역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가 거듭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은 부분이 비어 있다.
지하라는 공간은 사실 온도나 습도 측면에서 큰 변화가 없고 외부 공격에 방어가 쉬워서 외세 침략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적합한 곳이지만, 신선한 공기가 없고 햇볕을 쬘 수 없어 인간이 사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데린쿠유의 규모는 80m 깊이, 20개층에 이른다고도 한다. 그러나 현재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부분은 지하 8개층까지이다.
조용한 마을에 들어가 기념품을 파는 가게를 지나 규모가 작은 이슬람 첨탑(미나렛) 옆에 지어놓은 작은 건물을 통해 데린쿠유에 들어가게 된다. 도시로 들어간다기보다는 갱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 안에서 만나는 공간들은 축사와 창고와 양조장과 학교가 있는 1층과 거주지가 있는 2층, 창고와 우물이 있는 3층, 그렇게 계속 거주 공간과 사회적 공간들이 겹쳐지다가 마지막에는 교회로 추정되는 십자형 공간이 나온다. 또한 여러 곳에 아주 성능이 뛰어난 흡기구와 배기구를 설치해서 공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옆으로도 길게 뻗어나가 9㎞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지하도시 카이마클리(Kaymakli)와 연결되어 있다. 좁고 울퉁불퉁한 통로로 어떻게 물자를 운반하고 배수와 오물을 해결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지만 길을 잃지 않는 데 집중하느라 그곳에서는 어떤 생각도 이어지지 못한다. 적게는 몇천명, 많게는 수만명이 거주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지하도시가 카파도키아 일대에 수십개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별이 있고 달이 있고 해가 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시간을 알게 되고 계절을 느끼며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지하에는 그런 좌표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좌표를 뺏는 것은 감금이다. 감각이 소거된 채 방황하는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하도시에서는 그런 환경이 생존이고 생활이다. 과연 어떤 역경이 어떤 공포가 이들을 지하로 내몰았을까. 어떤 절박감이 있었을까. 나는 앞서 가는 일행을 놓치면 이곳을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속에서, 주황색 등이 군데군데 켜있는 지하도시를 거닐며 그런 생각을 했다.
노은주 · 임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