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과 서울시청 사이에 남창동과 북창동이 있다. 남창동은 남산 아래에서 남대문 시장을 향해 뻗어 있고, 북창동은 남대문시장과 서울시청 사이에 끼여 있는 동네이다. 이 근처에는 대동법이 시행되었던 조선시대에 만든 창고가 있었다고 하며, 그 터가 남창동에 남아 있다. 남창동은 사람이 제법 살고 있어 동네가 유지되고 있지만 북창동은 서울 도심의 여느 동네처럼 살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낮에만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동네이다.

임진왜란 이후인 광해군 원년(1608)에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게 되어 있던 공물제도를 쌀로 통일하는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그때 대동미를 전국으로 출납하는 기관인 선혜청이 설립되어 용산에 별창(別倉)인 만리창을, 삼청동에 북창(北倉)을, 옛 장용영(壯勇營) 자리에 동창(東倉), 남대문 안에 남창(南倉)을 두었다. 선혜청이 있다 보니 남대문 인근을 '창동'이라 불렀고, 그것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쌀 미(米) 자가 붙은 남미창정, 북미창정이 되었다가 다시 남창동, 북창동이 된 것이다.

선혜청에 보관되었던 대동미는 관리의 급여로 지불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국가의 비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때 지급받은 쌀을 다른 식량이나 의류 등의 생활필수품으로 교환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한다. 위치도 서울의 제일 관문인 숭례문 인근이고 커다란 국가의 창고가 있었으니, 그런 흥청거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던 것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지금의 봉래동에 있었던 칠패시장이 이곳으로 옮겨오며 더욱 큰 시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조선시대 서울에는 3대 시장이 있었다. 종로통에 있던 운종가, 지금의 동대문시장인 이현시장, 그리고 칠패시장이다. 운종가는 그야말로 국가 공인 시장이었고, 이현시장은 청과물 등 농산물이 주종이었다. 그리고 칠패시장은 마포나 서강 등이 가까운 영향으로 수산물이 주로 거래되었다.

이후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은 20세기, 한 세기 동안 서울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군림했다. 큰 행사를 치른다거나 할 때면 그 시장으로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양한 물건 중에는 당시엔 아주 귀했던 외제 물건들도 있었다. '미제'나 '일제' 물건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어깨에 힘을 주었던 시절, 사람들은 남대문 도깨비시장에 가서 카메라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양담배'도 사곤 했다.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그 당시 물건을 판매대에 늘어놓고 장사하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순식간에 철수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도깨비장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허리춤에 붙어 있는 가죽 패치에 말 두 마리가 청바지를 당기는 그림이 있는 미제 '쌍마청바지'라 불렀던 리바이스사에서 만든 청바지는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북창동은 임오군란 이후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곳은 서울의 차이나타운으로 무척 특색이 있는 동네였는데, 70년대 초에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중국인들이 거의 빠져나갔다.

북창동에 대한 나의 기억은 늘 시청광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청 앞 광장과 그 앞에 빤히 보이는 덕수궁,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이 잠시 사라지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철로 된 담장이 대신 그 자리를 지켰을 때이다. 시청광장을 지나 남산 쪽으로 걸어서 북창동 친척집에 놀러 갔었다. 한국은행 뒤쪽 골목 안에 있는 허름한 일본식 목조 주택이었는데 아주 비좁았다. 폭이 좁은 집으로 들어가면 답답한 방들이 늘어서 있었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으며 이층으로 올라가 복도에 면한 방에서 놀았었다.

마당이 좁은 도심형 한옥에서 보던 하늘과 다다미가 깔린 이층 방에서 보는 하늘은 사뭇 달랐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그리고 인근에 사는 중국인들의 사는 모습과 중국말을 듣고 있자면 한국에서 일본식 집에 누워 중국말을 듣는, 말하자면 한·중·일이 혼합된 재미있는 상황이 되곤 했다.

가끔 친척과 친한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사람 머리만 한 공갈빵을 얻어먹었다. 그 빵은 이빨로 깨물면 허무하게 부서지며 금세 텅 빈 속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끈적하고 달콤한 꿀이 발려 있었고, 사실 그 맛이 나에겐 북창동 방문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좁은 골목길과 그 골목에 얼굴을 비비며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집들, 동네 끄트머리 소공동 경계에 한국은행이 있었고 시경이 있었으며 길을 건너면 남대문시장이 있었다.

40여 년 전의 일들이다. 그런데 마침 남창동에 집을 지을 일이 생겨 오랜만에 그 동네를 찾았다. 번잡한 시장 뒤 남산으로 향하는 조용한 주택가는 사람 사는 집들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길 건너 북창동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1990년대 이후 퇴폐적인 유흥업소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북창동은 이상하게 변색되고 덧칠되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유흥업소들도 썰물이라고 한다. 대신 늘어나는 관광객 수요에 맞추어 호텔이 급격히 늘어나며 동네가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그런데 주 고객이 관광하러 찾아온 중국인들이라 하니 참으로 묘한 역사의 인연이 느껴진다.

골목을 벗어나 남대문시장을 마주 보는 도로변으로 나왔다. 예전 시경이 있었던 자리에 2층 한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옆 건물들이 이사를 떠나는 바람에 옆구리를 노출한 채 남아 있는 그 건물을 보며 문득, 사람들은 참 땅에 못할 일을 많이 하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일본 도쿄 한복판에선 조선 공예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한창이다. 메구로(目黑)구의 일본민예관에서 12일까지 열리는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전이다. 말간 백자 항아리, 책가도(冊架圖) 병풍과 소반, 붉은색 호랑이가 그려진 도자기 등을 8000여명이 보고 갔다. 100년 전 일본의 근대 공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매료됐던 작품들이다.

전시는 한·일 합작의 결실이다. 민예관 설립 80주년을 계기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곳의 한국 문화재 컬렉션 1600여점을 처음으로 전수조사했다. 보존 처리가 시급한 10여점은 우리 장인을 현지에 보내 보수를 마쳤다. 국내서도 희귀한 고려 공예품을 발견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 결과물로 재단은 조사 보고서를 겸한 소장품 도록을 냈고, 민예관에선 전시를 열었다. 작품 실태를 파악하고 현지에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도 널리 알리는 일석이조 효과다.

도쿄국립박물관을 포함해 일본의 대다수 박물관은 한국 문화재 소장품 목록을 밝히지 않는다. 민간 기관이 보물 창고를 개방한 것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다. 한·일 관계가 몇 년째 삐걱대는 와중에 양국 문화인들이 마음을 모은 기획이라 더 반갑다. 민예관 측은 처음엔 공개를 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재단이 "환수가 목적이 아니라 일반이 자유롭게 볼 수 있기를 원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하자 마음을 열었다. 스기야마 다가시 민예관 학예부장은 "우리가 소장한 한국 문화재 전부를 한국 측에 맡겨 가치를 제대로 밝히고 싶었다"고까지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쓰루가(敦賀)의 조구(常官) 신사에는 1952년 일본 국보로 지정된 '조선 종(鐘)'이 있다. 통일신라 흥덕왕 8년(833) 경남 진주의 연지사(蓮池寺)에서 주조한 아름다운 동종이다. 임진왜란 때 약탈해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종을 돌려받기 위한 반환 운동이 진주를 중심으로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2012년 3월엔 시민단체 수십명이 신사를 찾아가 "우리 종이니 돌려달라"고 시위를 했다. 그러자 놀란 신사 측은 동종을 창고 속에 감춰버렸고 현재까지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상당수 우리 문화재가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2016년 현재 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확인된 것만 16만여점. 이 중 절반 가까운 7만여점이 일본에 있다. 일본 내 박물관·도서관·사찰과 개인 소장으로 흩어져 있는 이 유물 중 실태 조사가 완료된 것은 40%가 채 안 된다. 국내 환수가 최선이겠지만 그게 안 되면 양지로 끌어내기라도 해야 한다. 무조건 내놓으라고 요구할수록 유물은 꼭꼭 숨는다. 우리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겁먹지 않고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일단 햇빛 아래로 끌어내고 실태 조사를 통해 불법 반출이 확인되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환수를 추진하는 게 순서다. 그게 불가능한 유물은 현지에서라도 적극 활용하는 게 좋다.

1200년 전 맑은 불심(佛心)의 힘일까. 강원도 삼척 산골짜기 옛 절터에서 통일신라 때인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정병(靑銅淨甁) 두 점이 흠결 없이 완벽한 상태로 세상에 나왔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일감 스님)는 지난 4월부터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절터를 3차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최상급 정병이 출토됐다며 2일 현장에서 공개했다.

"이건 기적이에요. 어디 하나 깨지거나 구멍 난 데 없이 완형이잖아요."

해발 717m 산속 절터에서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흥분한 채 말을 이었다. 매우 희소한 통일신라 청동정병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출토됐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청동정병은 2009년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일부 훼손된 상태로 출토된 2점과 충남 부여 부소산에서 일제시대 때 공사 중 수습된 1점뿐이다. 최 교수는 "8세기로 추정되는 인각사 정병이 당나라 양식을 그대로 모방한 데 비해 그보다 늦은 시기의 이 정병은 한국적 양식이 확립돼 고려 시대로 이어지는 발전 양상을 보여준다"며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통일신라 혹은 당나라 것으로 소개되는 청동정병이 있는데 이것과 형태가 매우 비슷해 통일신라 유물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인각사 정병은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위쪽 길게 솟은 부분)가 매우 길고 몸체가 직선에 가깝지만, 흥전리사지 정병은 첨대가 짧아지고 몸체는 어깨가 둥글어졌다. 이런 특징은 고려시대로 이어져 첨대가 둥글고 두꺼워지면서 몸체도 더 둥근 계란형으로 바뀐다. 통일신라 정병은 문양이 없지만, 고려 때에는 은 입사 기법까지 활용해 무늬를 넣어 국보 제92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 정병' 같은 걸작을 만들어냈다.

정병은 부처나 보살에게 바치는 맑은 물을 담는 물병. 관음보살이 늘 손에 쥐고 있고 고려불화 '수월관음 도'에는 달빛 비치는 바다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 옆에 언제나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강원도 오지 산골에서 어떻게 통일신라 청동정병이 나왔을까.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까지 통일신라 문화와 기술력이 전파됐다. 경주에서 출발해 양양 선림원지, 진전사지 등 선종사찰과 연결되는 불교 문화의 루트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