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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저는 농담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서 하는 적극적인 농담을 하는 것은 아니고,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소극적인 농담을 주로 합니다. 아는 사람들만 알아 듣는 그런 농담 말이죠. 그리고 볼거리나 읽을거리도 그런 식의 농담이 들어간 것을 좋아해서, 그것을 보고 혼자서 의미를 두고 키득거리며 웃다가 주위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또 소심하게 시작한 몇마디 농담 때문에 종종 오해를 사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농담 하나 잘못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망하는 이야기,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어보았습니다.

아,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농담>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리는게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얀 루드비크라는 한 인물이 농담을 합니다. 그런데 그 농담이 문제가 되어서 그는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고 광산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심판을 주체했던 제마네크에 대한 복수를 단행합니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건 전체 이야기의, 중요하지만 작은 한 부분의 이야기일 뿐이라서 어떻게 이 책의 줄거리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체제와 사회의 모순된 모습, 종교의 역할, 사랑의 본질에 대한 반감,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 무의미한 복수 등.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베일에 쌓인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제 자신의 무지 때문일 것이고, 그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고도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었다고 말하는 제 자신이 못났단 생각이 듭니다. 그와 동시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놓는 밀란 쿤데라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런 표현들이 이 소설을 굉장히 어려운 소설이라고 묘사하고 있는듯 보이겠지만,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스스로가 담아갈 수 있는 그릇의 크기만큼, 소설을 읽은 후 얻어갈 수 있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담아 갈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보면 아마 답답함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대단히 무거운 소설의 존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숨막힘.

그리고 웃음으로 망각할 수 없는 현실의 비참함.

이야기의 큰 흐름이 4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시점을 옮겨 다닙니다. 이들은 제 각각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고를 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속에서 마치 가면을 바꿔쓰며 다른 인물로 변하는 듯, 내면의 자아들이 특정 사건을 겪으면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밀란 쿤데라는 독자에게 그런 변화를 전적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묘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섬세한 감정 묘사로 아주 작은 심경의 변화 모두를 잡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통찰력으로 이 인물들을 모두 꽤뚫어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마음까지 말이죠. 그와 그녀, 너와 나, 같은 사건을 겪고 서로가 달라지는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진실을 구하는 최종 질문을 하게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아아,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정치와 철학, 사회,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지루할 것 같지만, 재미의 요소만 봐도 이 소설은 굉장합니다. 큰 반전부터 작은 반전까지 도대체 몇번의 반전을 거쳐가는지 셀 수 없을 만큼 반전 투성입니다.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를 알아맞히는 재미부터 결국 역설적으로 상대방의 곤란한 처지가 되어버린 반전, 그리고 한 사람의 사고가 흘러흘러 결국 이르게 된 곳이 전혀 예상 밖의 결론이라는 반전까지. 뒷 이야기를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흥미진진함 속에서도 진지함을 볼 수 있어서 굉장했습니다.

이 소설 속의 진지한 현실이 결국엔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이야기, 그것이 밀란 쿤데라가 하고 싶었던 농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세상이 결국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는 지금 말도 안되는 농담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렇지만 농담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 말 또한 농담 같아 보이는데 이마저도 통하지 않아 보인다 뭐, 이런 말입니다. 숨이 탁, 막힐 지경이지 않습니까. 아, 농담입니다.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것은 사실이구요, 그 앞에서 했던 이야기 말입니다. 그렇다고 잡아가진 마세요, 잘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습니다. 이 소설 <농담>과 밀란 쿤데라에 대한 경외심마저 생깁니다. 소설 중의 소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대단한 소설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이 분의 소설만 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이분의 소설을 계속 볼 생각을 하니, 호흡이 가파지는게 또 다시 숨이 턱 막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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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56쪽)

나는 인간의 운명을 심판하는 최고재판소에 비치된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도저히 바로잡아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이 이미지는 나 자신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실제적이며, 그것이 나의 그림자가 결코 아니라 나, 바로 나 자신의 내 이미지의 그림자였다. (89쪽)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은 적이 아니라 친구이므로. (271쪽)

나는 종종, 인간이 무사히 하느님의 옥좌를 차지하고 앉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 사물들의 질서는 제아무리 공평하다 해도 그분의 개입 없이는 결국 잘못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게 해 주시려고 하느님이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353쪽)

그 증오는 당신의 저주가 되어 버렸어요. 아무것도 용서되지 않는 세상, 구원이 거부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으니까요. (392쪽)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어떠한 위대한 운동 앞에서도 조소와 우롱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부식시켜 버리는 녹이기 때문이지요. (404쪽)

내 인생의 모든 일들을 전부 취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일들을 초래한 실수들이 내가 한 실수들이 아니라면 무슨 권리로 내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내 엽서의 농담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잘못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중략) 이런 실수들은 너무도 흔하고 일반적이어서 세상 이치 속에서 예외나 '잘못'도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순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 그런데 왜 그런 실수들이 역사 탓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 뿐, 만일 역사에 자기 고유의 이성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48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