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멀지 않은 내일(來日), 내 일이 될지도 모를 이야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언제나 위트가 넘치고 흥미롭다. 
하지만 읽고 난 후의 뒷맛이 깔끔하지 못하다. 
뭔지 모를 서늘한 것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듯한 기분이다. 

이유는 책에 붙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리고 있는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법한 미래와 있을 법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있을 법한’에 있다. 

단순히 소설에나 나올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만 치부하기에는 파라다이스 속 이야기들은 너무나 그럴 듯하다.

과학잡지에나 나올 법한 근거들로 설득하려드는 전문가들의 말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다. 
백 날 말로 떠드는 것보다 한 번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글은 활자를 통해 눈으로 입력되지만 머릿속으로 들어가면 결국 영상으로 재생되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미래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끔찍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우리에게 보여준 있을 법한 과거와 미래의 모습은 추악한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그 추악한 현대인의 모습에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존중의 문제’에서 등장한 돈만 밝히는 경호원, 
티비에 나와 짐짓 선량한 척 연기하면서 뒤에서는 여자나 때리는 한심한 유명인사. 
‘안개속의 살인’에서는 거짓을 강요하는 사회에
굴복해 왜곡된 기사를 쓰는 햇병아리 기자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무섭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는 얼굴로 선량한 시민역할을 하고 있는 나와 
내 이웃이 속을 까보면 결국엔 이런 인간들인 것이다.

작가는 이런 사실들을 경쾌한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자신들에 대해 냉철하게 돌아보라고,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렇게 되고 말거라고충고하고 있다. 

‘환경 파괴범은 모두 교수형’이란 작품은 환경파괴로 인해 멸망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모든 활동과 물질들을 금지한다는 이야기이다. 
차를 타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것조차 금지된 세상, 그것을 어기면 모두 교수형. 
이제 인류가 자기네 것인 줄로만 알고 제 멋대로 환경을 오염시켜 온 대가를 받게 된다. 

그 동안 편리해질 대로 편리해진 문명에 익숙해져 버린 인간들에게 
그 동안 누리던 혜택을 모두 금지시킨다는 것, 
그 자체로 형벌이며 고문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병들어가는 환경에 대해 작가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공존 하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전 인류의 소명이자 유일한 생존법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꽉 끼는 바지 때문인지 아니면 방사능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이상 남녀간의 섹스를 통해 수정할 수 없게 된 불임 상태의 인간들이 
나비를 매개로 하여 꽃처럼 생식하는 이야기인 ‘꽃섹스’.

실제로 많은 남녀들이 각종 전자파와, 환경오염들로 인해 불임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이 
역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자만심과 몰지각함에 대해 위트가 넘치지만 냉소적이며, 
신기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파라다이스의 단편들은 작가의 경고장이다. 
인간은 앞으로 100년 후 200년 후 미래의 눈으로 현재의 우리를 바라보는 작가의 충고를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기존의 이야기들에 비해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가 명확한 단편들이다.
기발한 작가의 상상력도 즐길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야기의 주제들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볼 만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나 몰입도는 예전의 단편들에 비해 조금 떨어진 듯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