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스 홀바인 <대사들>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년, 패널에 유채, 207×209.5cm,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풍자의 도구로 쓰이거나 단순한 재미를 위해 사용된 왜상화법은 한스 홀바인의 작품에서는 ‘바니타스’의 의미를 띤다. <대사들>이라는 초상화가 그림 전면에 이상한 형체가 떠 있지 않았어도 지금만큼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1533년 한스 홀바인은 화가로서 탄탄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으며, 특히 초상화가로서의 재능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댕트빌 대사는 홀바인에게 자신의 저택에 걸어둘 초상화를 주문했다. 초상화의 두 주인공은 댕트빌과 그의 친구 조르주 드 셀브인데, 프랑스 남부 지방의 주교였던 드 셀브는 홀바인에게 포즈를 취해주기 위해 몇 주간 영국에 머물렀다.
그림 속에서 두 사람은 아주 근엄한 모습으로 자신들이 맡은 임무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두 사람은 그 지위로 볼 때 비종교적 권력과 교회 권력과의 만남을 상징한다. 홀바인은 두 주인공을 학술적인 도구와 악기들이 널린 가구에 기댄 자세로 그림으로써 정치와 종교가 둘 다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 사이에 유지되고 있는 균형은 사라질 운명에 놓인 불안한 성질의 것이다. 그림 전면에 얼룩처럼 남겨진 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분위기를 깨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체의 정체는 꽤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해골을 왜상화법으로 그린 것인데, 해골은 전통적인 죽음의 상징으로서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바니타스 정물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에 해당한다. 또한 모자에 작은 해골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다녔던 댕트빌의 좌우명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빗댄 것이기도 하다.
<대사들>, 1533년, 일부분을 비스듬히 본 것
이 작품은 연극과도 같은 효과가 있다. 그림을 본 관람객은 처음에는 두 인물에 주목하면서 그 화려함과 품위 있는 자태에 매료된다. 그러다 인물들의 발치에 있는 이상한 형체가 신경 쓰여 그림 앞으로 다가가지만 무엇인지 알아내지는 못한 채 그림 앞을 떠난다. 그런데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림을 돌아보는 순간, 바로 그때 해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권력, 지식, 예술을 담은 광경은 자취를 감추고 모든 것의 종말을 암시하는 죽음의 기호가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왜상화법 : 시각예술에서, 일상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그림에 나타난 대상의 모습이 뒤틀려 보이지만 특별한 각도에서 보거나 곡면 거울에 비추어 보면 왜곡이 사라지고 그림 속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그리는 원근법을 말한다.
바니타스 :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에서 꽃을 피운 정물화 양식. 죽음의 불가피성, 속세의 업적이나 쾌락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다. 바니타스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도록 타이른다. 후기 르네상스 시기에는 초상화 뒷면에 죽음과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같은 것을 자주 그렸는데, 바니타스는 이런 단순한 그림에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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