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심청이 무슨 효녀야>-이경혜 저 |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의 서평이벤트에 참여했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문득 생각 나 이 책을 다시 읽었어요.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어 버렸네요. 이 책 속의 청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마지막 작은 주먹을 꼭 쥐고 한 맹세대로 아버지 힘껏 모시며, 고향 마을 산비탈에서 농사 짓고 살고 있을 까요?

 참, 먼저 이 책의 청이는 어떤 아인지  소개해야겠네요. 15살 청이는 날마다 산비탈에서 농사지으며 살지만, 늘 배고픈 아이랍니다. 그러다 중국 상인들이 내놓은 쌀 삼백석에 인당수에 재물로 팔려 간답니다. 하지만 사실 청이의 마음을 흔든 건 덤으로 내놓은 고운 비단치마 였지요. 이러니 인당수에서도 (물론 아버지를 생각한 마음이 있었지만) 의연하게 물에 뛰어 들지 못하고 죽기 싫어 엉엉 울기까지 했죠. 그러다 연꽃아기로 되살아나 예쁜 비단치마 맘껏 입으며 살고 있는데, 눈먼 거렁뱅이 아버지가 나타났죠. 청이는 그 순간도 선뜻 나서지 않고 망설입니다. 하지만....그래요...청이잖아요. 비단치마가 좋긴 하지만,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산골 마을로 돌아 옵니다. 그리고 아버지 잘 모시겠다 맹세하구요.

 우리 청이는 그 후로 2년 넘게 아버지를 잘 모시고 있을까요?  이제 아버지도 눈을 떴으니 아마 두 부녀가 서로 도와 가며 농사를 짓고 있겠죠. 어쩌면, 일 잘하고 씩씩한 청이를 예쁘게 본 마을 총각이랑 결혼 해 알콩달콩 재밌게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문득 예쁜 비단 치마가 다시 그리워져, 이젠 눈 뜬 아버지라 안심하며 조금은 쉽게 제 길을 찾아 떠났을까요? 아, 정말 궁금하네요.

 이런 동화의 가장 큰 장점은 전래동화의 주인공을 색다르게 재창조한 작가덕에 우리도 이를 흉내 내어 아이들과 함께 신나는 작가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인 것 같네요.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보고  이야기 하고, 더 나아가 나만의 청이는 어떤 인물인지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책 읽는 재미가 열 배, 백 배가 되는 듯 해요. 또한 전래 동화에서 항상 나오는 바로 그 끝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도   ’어떻게 ’ 살았을까로 바꾸어 생각해 보기도 하구요.

그러다 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위하 효도인 지, 어떻게 해야 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인 지도 생각도 하게 되고.....무엇이 ’행복한 삶’의 요소가 되는 지도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참....아직 어른인 저도 잘 모르겠네요. 우리 청이는 지금쯤 그 답을 찾았을까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어릴 적 불렀던 노랜데, 가사가 속 시원하게 떠오르질 않네요.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볼까, 어쩔까 하다 그냥 그 느낌만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 노래를 부를 때면 그냥 서글펐던 것 같아요. 꼬부랑 할머니 모습을 상상하면 슬펐고, 힘들게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 걸 생각하면 또 슬펐고, 엿(노래에선 똥이 아니라 엿이었던 것 같은데,,) 좀 먹겠다고 맞은 꼬부랑 강아지도 불쌍했던 것 같습니다. 신나기만 한 노래 곡조에 맞지 않는 슬픈 가사야...라고 어린 맘에 생각했죠.

 그런 어릴 적 느낌을 되짚으며,  이 책을 두 손에 쥐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전래 동요이고, 그것을 더 예쁘게 다듬은 분이 권정생선생님이라면, 글에 대해 왈가불가 한다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겠고, 제 생각에는 누구나 잘 아는 바로 이 노래를 어떻게 구성하고 보여 주었냐를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림이 그려 지고, 그 그림 속에 글이 어떻게 어우려져 있나 자세히 살피기로 하고  책장을 펼쳤습니다. .

 꼬부랑 할머니가......... 참 귀엽습니다. 허리가 꼬부랑, 얼굴 주름살도 꼬부랑, 살짝 빠져나온 이마의 머리 한 올도 꼬부랑, 게다가 살짝 웃는 꼬부랑 눈매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가면 재밌는 얘기 많이 해 줄 것 같네요.

꼬부랑 길을 가다가.......할머니랑 나비도 보고,  길가 꼬부랑 꼬부랑 기어가는 달팽이에게 인사도 해봅니다. 꼬부랑 할미꽃은 왜 외롭게 혼자 폈을까요? 꼬부랑 민들레와 꼬부랑 나팔꽃은 옹기종기 친구들과 함께인데....

꼬부랑 고개를 넘어.....휘이휘이 가는 할머니, 힘들진 않으세요? 하늘의 꼬부랑 구름도 보며 쉬어가면 좋으련만,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요?

꼬부랑 나무에 올라가.....조심조심 오르세요. 꼬부랑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어쩌나요.

꼬부랑 똥을 누니까.....까치도 뽀지직, 다람쥐도 뿌지직.

꼬부랑 개가 와서...... 고개 너머 꼬부랑 꼬부랑 쫓아 오던 바로 그 놈이네요.

꼬부랑 똥을 주워 먹었지....낼름, 날름 그리도 맛있을까요? 똥파리, 말똥구리...똥잔치가 열렸네요.

꼬부랑 할머니가.....조심조심 꼬부랑 꼬부랑 지팡이 잘 짚으시고 나무에서 내려 오시네요.

꼬부랑 지팡이로......꼬부랑 두 눈까지 번쩍 뜨시고,

꼬부랑 개를 때리니까......

꼬부랑 깨갱 꼬부랑 깨갱.........꼬부랑 고새를 넘어넘어 , 꼬부랑 꼬리까지 감추고 도망가느라 바쁘네요.

할머니 똥 먹고 천 년 살까

할머니 똥 먹고 만 년 살까

그러더래.

저 멀리 보이는 마을까지 할머니는 꼬부랑 논두렁을, 꼬부랑 고샅을 또 그렇게 걸어 가시겠죠. 하지만 정겨운 벗이 함께 하네요. 멀리 도망갔던 꼬부랑 개가 어느새 할머니 뒤를 꼬부랑, 꼬부랑 뒤따릅니다. 이렇듯....이 책, 참 예쁘고 정겨운 그림이 재밌게 읊어진 글과 잘도 어우러 지네요. 어찌 보면 슥슥 대강 그린 듯 하지만 다시 볼 때마다 꼬부랑 꼬부랑 구비구비에 이야기가 숨어 있네요.

 이렇게 꼬부랑 할머니와 함께 한 나들이가  끝나네요. 그런데, 마지막 장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 괜히 서운합니다. 저기 조그만 초가집 어디가 할머니 집일까요? 할머니 오시기를 기다리는 손자가 양지바른 마루끝에 걸터 앉아 있지는 않을까요? 할머니 치마 속 어딘가에서 꼬부랑 엿가락이 쑥 나와 손자 손에 건네지지 않을 까요?  할머니 치마 끝을 붙잡고 따라 가 도란도란 이어질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지네요.

 이런 서운한 마음을 달래듯, 뒤이어 권정생 선생님의 글이 있습니다. ’꼬부랑 할머니 읽기에 앞서’란 글 이지만, 지금처럼 맨 뒤에 있는 것이 더 좋은 듯 합니다. 이 글을 먼저 읽었더라면, 꼬부랑 할머니와의 나들이에서 더 큰 의미를 찾으려 하다 자잘한 재미를 놓쳤을 듯도 하니까요.  그냥 읽다보며 자연스레 느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우리 아이들이 과연 ’푸근한 옛 고향 마을’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 아이들의 친할머니, 외할머니 두 분 모두 아파트에 사시거든요. 게다가 꼬부랑과는 정말 거리가 멀구요. 아이들 키우느라 얼굴 노란 엄마 보다 어떨 때 뵈면 더 정정하시고, 세련된 할머니들이신데 말이죠. 눈 똥그랗게 뜨고 묻던 우리 큰 애 말이 떠오르네요..."이런 할머니가 있긴 있어요?" 글쎄요...뭐라 얘기하면 좋을까요?

 아..그러고 보니 제가 ’꼬부랑 할머니’란 노래를 부르며 조금씩 서글펐던 건 시골 논두렁을 함께 걸었던, 산에 나무하러 가실 때 따라 갔던 우리 할머니 때문인가 봐요. 제게 할머닌 그런 느낌으로 남아있나 보네요. 첫손주라 애지중지 예뻐하시며 맛난 거, 좋은 것만 보시면 남겨 두었다, 절 주곤 하셨죠. 그때마다 전 정말 코끝 시큰시큰 했거든요.

 꼬부랑 할머니가 이세상에 정말 있는 지, 없는 지 모르겠다던 우리 아이들,......하지만 할머니들께서 저희들을 끔찍이 사랑하신다는 건 두말 않고 안답니다. 엄마한테 혼날 때 마다 할머니에게 전화하는 아이들, 할머니 댁에 간다면 자다가도 벌떡, 숙제 다 해야 간다면 정말 열심히 군말 않고 숙제 하는 아이들...... 푸근한 옛 고향 마을은 몰라도 푸근한 할머니 사랑만큼은 분명 알고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