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이 있는 이는 몇명이나 될까. 나는 20대 초중반에 두번의 경험이 있다. 한번은 버스안에서 음악을 듣다 흘러내린 이어폰을 주우려 고개를 돌린 순간 내 가방에 들어가 있는 손을 보고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상대방도 당황한건 마찬가지였는지 가방에 손을 집어넣은 채 멍청하게 나를 보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손 빼세요~!' 라고.. 무슨 용기였을까. 피식 웃음이 난다. 또 한번은 길을 걷다 몸에 닿는 이상한 느낌으로 홱 돌아보았을때 내 등에 바싹 붙어 역시나 가방에 손을 대고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당황해서인지 얼른 주저앉아 신발끈을 매더라는.. 소매치기와의 두번의 만남에 예민한 기질때문인지 잃어버린 것이 없으니 다행이랄수 밖에.
이번에 읽은 책 '쓰리'는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작이라고 해서-사실 일본에는 그 이름도 외우기 힘들만큼 별별 문학상들이 많다- 흥미가 끌렸던 소설이다. 원래 일본소설을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출간 즉시 베스트 셀러에 등극했다는 띠지도 인상적이었다.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아마도 처음으로 접하는 일본 작가인듯 하다. '흙 속의 아이' 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는데 여러 상을 섭렵할 만한 실력도 갖추고 있는 듯 하다.
하나둘셋의 그 쓰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소매치기'의 일본어인 'すり [掏摸]' 였구나 하며 피식 웃어본다. 저자의 특징인지 모를 간결하고 딱딱한 문체로 적어나간 '쓰리'는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아들인다. 주인공인 남자는 당연히 쓰리꾼(소매치기)다. 이야기의 첫 시작부터 다른이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 이야기가 가득 펼쳐진다. 너무도 적나라하고 자세한 묘사속에서 내가 마치 소매치기라도 된 양 흥분이 느껴질만큼 장면장면이 눈앞에서 그려진다. 한번이 끝이 아닌 여러명의 지갑을 연이어 훔쳐내는 남자의 행동을 보며 '이런 식으로 소매치기가 이루어지는 구나' 하고 고개를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어이없을 만큼 책은 나를 빨아들이고야 만다.
책에는 그다지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몇안되는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나쁜사람들' 이다. 소매치기 이거나, 좀 더 큰 그룹으로 나쁜짓을 하는 악인이거나, 자식을 도둑질을 시키는 엄마 라거나... 그 사람들의 나쁜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하는 마음보다는 그저 그렇게 동화되어 그들을 삶속에 어울리며 이야기를 읽는 듯 하다. 악인이지만 주인공은 무언가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것 처럼 살아간다. 도둑질 하는 대상을 고르는 것, 성추행범의 행위를 멈추게 하려 손목을 잡고, 그러면서도 그의 지갑을 훔치고, 아이를 앞세워 도둑질하는 엄마에게 돈을 주며 아이에게 그런짓을 시키지 못하게 한다는 등,,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서일까 아이의 미래에 괜시리 참견을 하는 모습도 담겨있다.
또한 하급인생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어대는 또 한명의 진짜 악인의 등장으로 그의 삶은 갑작스런 곡선을 그리게 되고,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으로 이끄는 부분에서는 나도 함께 긴장을 하게끔 만든다. 끝이 없는,,, 결말을 알려주지 않는 미완성같은 소설의 끝을 보며 아쉬움과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아스라이 남는다. 흥미로이 읽긴 했지만 이 책을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라고 해야할까. 모호해진다. 하지만 한국에서 출간된 책이 두권 더 있다는 저자의 마지막 글을 보니 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지는 걸로 보아 이번 책도 재미있게 읽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