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작가의 작품은 3번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카인』, 『바닥에서 일어서서』.
작가를 작품들을 읽다 보면 작가의 놀라운 사유와 비유에 놀라워하게 된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짐작은 했지만 예리하고 냉철한 통찰력에 여러 번 놀라워하면서 작품을 읽게 된다. 지주, 농노, 계급, 명령, 타도, 남성, 여성, 폭력, 땅, 길, 성당의 신부, 경찰, 군인, 고문, 감옥. 작품에서 떠오르는 소재들은 다양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품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땅과 길에 대한 작가만의 사유이다. 땅과 길에 대해 작가가 펼쳐놓는 땅에 대한 사유, 길에 대한 비유는 날선 비유가 된다.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다. 이면에는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꾼들이 있다. 땅주인과 그 땅에 소속된 농노들의 삶이 투영된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배경이다. 3대에 걸쳐서 노동자들의 삶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땅을 일구러나간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땅에서 일을 한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배가 불러도, 생리를 해도, 출산이 임박해도, 젖이 돌고 있어도 예외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삶. 30대가 되면 늙어있고 40대가 되는 노인은 드물다고 작품은 말한다. 일이 있으면 일을 하느라 밤과 낮은 길고 긴 고행길이 된다. 일이 없으면 술을 먹고 집에 있는 아내를 때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내들은 그렇게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며, 자녀들도 아버지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한 세대가 지나 다음 세대가 와도 그들의 삶은 차이가 없다. 그리고 또 다음 세대가 왔지만 그들은 읽을 줄 모르고, 쓸 줄도 모른다. 처자식을 먹여살리고자 일을 달라고 말하지만 지주들은 임금을 올려주지 않는다. 생활비용이 부족하여 외상하는 날들이 많아진다. 여인은 상점 주인에게 비굴함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땅을 일구고 땀을 흘리며 열병에 걸리면서 노동한 일꾼들의 이야기가 된다. 빈곤하여 그들은 일을 달라고 요구하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8시간 노동을 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성사되는 것은 없다. 땅주인들은 그들을 군경찰들을 통해서 잡아들이고 고문하며, 감옥에 가두며, 심지어 사망하는 노동자들도 생겨난다. 일부러 성과를 올리고자 군경찰이 덫을 만들어서 무지한 농노들을 잡아가기도 한다. 고문당하고, 잡혀간 남편을 면회 가는 아내의 이야기도 서글프게 작품에 녹아흐르기까지 한다. 누가 그들의 배고픔과 억울함을 듣고 있었을까. 감옥에 고문당하는 노동자를 찾아온 성당의 신부는 누구의 입장이었을까. 한결같이 지주들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신부의 말들은 마음이 불편하게 만드는 내용이 된다. 고문을 받다가 죽은 노동자가 있다. 자살이라는 사의. 하지만 타살이라는 것을 묵과하는 의사에 대해서도 작가는 빠짐없이 소설 속에서 열거한다. 두려움 때문에 그 누구도 고문으로 죽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이 작품의 배경으로 흐른다.
군경찰, 비밀경찰들은 노동자들을 비웃으면서 감정 없는 일꾼이 되어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 그들도 아버지, 어머니, 처자식이 있는 그 누군가의 아들이며 남편이며 아빠라는 사실을 작품은 말한다. 작품은 소설로만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 된다. 우리들의 역사 속에서도 이와 같은 노동자들이 있었으며 군경찰이 있었다는 것과 땅주인이라는 지주들의 부의 대물림은 현재형이기도 하다. 작품은 노동자들을 위한 세상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면서 끝난다.
예수님의 십자가길에 피땀을 닦아준 여인과 비교되는 또 다른 여인의 등장도 많은 시사점이 되어준다. 종교가 지녀야 하는 성품은 고갈되어 나이가 많은 노인들만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는 장면과 결혼식이 끝난 자리에서 신부가 말하는 이야기에도 많은 부족함이 드러나는 종교인의 모습도 시사해주는 장면도 쉽게 잊혀지 않는다. 작가는 신부의 언행들을 통해서 상당히 냉소적인 모습을 작품 속에 들어낸다. 종교가 가졌던 특권, 불합리한 부분들을 작품 속에서 자주 마주하게 한다. 물론 신부의 언행들은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다. 시사하는 점이 상당히 높은 작품이다.
4명의 젊은 청년들이 일으킨 사건들은 큰 소동이 아니다. 하지만 작품 속의 시대적 상황상 그들은 파업한 죄목을 가지고 심문을 당한다. 경찰, 군인들이 위협하는 모습과 태도, 경멸하는 대화들이 흐른다. 누가 젊은 청년들을 파업하도록 주동했는지 심문을 당한다. 그들에게 일을 주는 사람들을 존중하라고 권면하기까지 한다. 일을 주는 사람들과 노동자. 상하관계이며 매우 위협적이다. 그리고 신부의 설교까지도 ... 물품을 제조하지만 비싼 가격으로 그 노동자는 그 물품을 구입하는 현실과 맞물려서 읽게 된다. 작가는 매우 냉철하게 사회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감옥에서 나가는 사내를 위해 감옥에서 챙겨주는 남겨진 노동자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떠오른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이 됐다는 것.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마음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해주는 의미들이 많은 작품이다. 땅주인들이 노동자들을 대하는 마음과 말들, 그리고 폭력성은 이 시대에도 많은 의미가 되는 작품이 되어준다.
작가는 매우 예리하다. 작품의 시대가 한정적이지 않다. 지금도 작품 속의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땅을 가진 소유주, 노동자, 임금 등이 예리하게 그 시대의 인물들과 정치적인 흐름과 어우러져서 노동자들을 몰아간다.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세상 속에 소개하였는지 충분히 짐작을 하면서 읽게 된다. 그래서 책장이 잘 넘어가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 시대의 역설적인 목소리는 지금도 메아리가 되고 있는 듯하다. 올 한 해의 세계적인 흐름과 내년의 경제전망까지도 짐작해보면서 이 작품을 읽고 있자니 노동자들의 임금이 얼마나 정당한 임금일까 다시 되묻게 된다.
왜 작가가 이 작품을 적었는지 그 이유부터 다시금 되짚어보게 해주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읽는 동안 마음은 내내 묵직했다. 투영되는 시대적인 삶들이 너무나도 많이 떠올랐다. 이 시대의 노동자들과 지주들과 권력자들이 많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출판된 시기와 지금 읽고 있는 시대와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질문해보면서 읽게 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