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Culture(두 문화), 이 책의 서문은 C. P. 스노우가 제창한 「두 문화」라는 개념으로 시작된다. 1959년 발표된 강좌에서 처음 등장한 「두 문화」란 개념은 현대 사회의 두 문화, 즉 과학과 인문학을 말하며 ‘두 문화’ 사이의 의사소통 단절은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므로 두 문화 간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 내용은 21세기 우리 사회를 돌아보았을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 내용이었다. 우리 역시 ‘전문화’란 미명아래 고등학교 때부터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져 배워왔지 않던가. 오히려 제도상으로 두 문화의 소통을 단절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부터 생겨난 간극은 대학에 와서도 전혀 좁혀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이 보였다. 오히려 이공계 기피 현상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자연과학은 갈수록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고,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이 사회에서 환영 받는 것 같지도 않고... 두 문화는커녕 한 문화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두 문화가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왜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섞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과학과 인문학, 섞이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서로의 성질이 완전히 달라서 물과 기름처럼 섞으려 해도 섞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결국 사람이 하는 학문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래서 처음에는 이에 관련된 내용을 조사해 보았다. 분명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먼저 과학 역시 철학의 한 분야인 자연철학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에서 첫 번째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뉴턴이 발표한 『프린키피아』란 책을 국어로 번역하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되는데 여기서도 두 분야가 결국은 한 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뉴턴의 중력법칙의 발견은 근세 유럽의 합리적 사고의 시작이며, 이로 인해 정립된 고전역학(classical dynamics)은 근대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 역시 과학과 인문학의 밀접한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1920년대에 태동한 양자역학 역시 많은 철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이렇게 서로에게 좋은 영향만 끼친 것만은 아니었다. 『종의기원』으로 널리 알려진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나치에게 악용되어 우생학이라는 학문의 이론적 기초가 되어 맹목적 과학 숭배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지난 역사를 통해 보여주었다. 어찌되었든 두 분야는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한 관련을 맺고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들에게는 어떠할까?

  조금이라도 과학 사상을 다룬 책이라면 과학이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 위에 있는 사례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 즉 철학이나 인문학 분야가 아닌 문화,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한 자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궁금해서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으나 내 배움이 부족해서인지 좀처럼 과학이 문화,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고, 과학이 문화,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들이 그저 문화, 예술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과학자들이나 하는 자기만족식 푸념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나에게 그에 대해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해 주었다.

  먼저 이 책은 서울대학교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무영 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엮어 만든 책이다. 따라서 가끔씩 학생들의 질문이 나오는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소통의 분위기가 너무 보기 좋았다. 또한 질문의 수준 역시 어느 정도의 사고를 요하는 정도의 질문,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많아 오히려 강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재료로 쓰여지고 있었다. 역시 강의는 교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곳에서도 나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지식을 교류하며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물리학 강의’라는 책의 제목답지 않게 물리학 외의 내용도 많이 나온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가져왔던 ‘과학이 다른 분야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도 이 책으로부터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것도 외국에서 씌여져 번역된 책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쓰여진 책을 통해.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과와 문과로 분리되어 교육받아온 한국에서 이런 내용의 책이 씌여질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라웠고, 그런 내용을 읽는 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지적 즐거움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미술에도 관심이 생겨 미술 관련 책도 읽고, 교내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전시회에도 종종 가곤 했었는데 피카소의 그림들이 알고 보면 엄청난 기하학의 산물이라는 사실들을 이 책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의 예를 들어주면서 우리나라에도 자신의 눈을 찌른 최북이라는 예술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는 나에게 있어 국사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흔히 우리나라의 유명한 예술가라 하면 최근에 작고하신 백남준 선생을 들 수 있겠고, 조선시대로 가면 겸재 정선이나 김홍도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는 정말 찾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분명 남아있는 작품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대단한 수준에 오른 예술가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최북이라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는 더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는 공부와 연구, 그리고 이런 강의까지 하면서 어떻게 이런 것들도 알 수 있었을까? 글쓴이의 박학다식함에 다시 한 번 놀랐고, 글쓴이를 보며 나의 게으름을 한 번 더 질책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런 학구적인 노력과 동시에 가끔 강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사회 현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도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이 나올 때 마다 글쓴이의 사회 참여적인 의지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글쓴이의 정치관과 사회관 등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과학자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활동에 대해 때로는 옹호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역시나 과학은 인간이 하는 학문이고, 인간은 사회 속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물리학에 대해 소홀했느냐 그것 역시 아니었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 분야인 천문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결코 내용의 소홀함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 정도 분량의 책으로 다룰 수 있는 물리적 내용으로서는 물리학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내용면에서도 충실함을 보였다. 또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내용이다 보니 수학적 기교가 아닌 철저히 물리적 개념으로 내용을 풀어갈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다른 관점으로 보는 물리학은 너무나 새로워 청량감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글쓴이는 아마도 이런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수많은 나날을 고민 했을거라 생각하니 존경심마저 들었다.

  분명 다른 나라에서 나온 책의 번역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한 저자가 이런 방대한 내용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결국에는 최무영 교수의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멋진 교양 물리학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런 시도 자체가 처음이었고, 물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교양 물리학 책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과학용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면서 생긴 가독성의 문제였다. 이미 정해져 있는 과학용어들은 대부분이 한자어나 외래어로 이루어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강의를 책으로 바꾸면서 후원사(프레시안)의 제안으로 인해 과학용어들이 순우리말로 바뀌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용어의 생소함으로 글을 쉽게 읽어나가기가 몹시 힘들었다. 물론 한자어나 외래어로 된 과학 용어는 처음 접했을 때 그 분야의 전공자나 종사자가 아닌 이상 그 뜻을 알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것을 순우리말로 바꿈으로 해서 그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물론 전공자와 종사자에게마저도 혼란을 가져다주게 되었으며, 표음문자인 한글의 한계로 인해 음절의 수가 늘어난다거나 본래 용어의 뜻을 모두 함축하지 못한 용어들이 많이 생겨나 언어의 경제성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

  외래어가 우리 언어문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우리말 역시 90% 이상 한자어로 이루어진 것이 오히려 당연한 현상일텐데 이것마저도 부정하는 듯해서 불편했다. ‘한자 = 중국어’라고 생각해서 나온 현상인 듯한데, 이미 중국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인 번체 대신 간체로 바꾸어 써 오고 있었으며, 일본 역시 자국의 실정에 맞게 본래의 번체와는 다른 한자어를 써오고 있어 한중일 세 나라 모두 한자 문화권이지만 완전히 같은 한자어를 쓰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가 쓰는 한자어는 우리말이라는 뜻인데, 상황이 이런데도 굳이 순우리말을 고집하겠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언어란 것은 소통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이렇게 바꾼 용어들로 인해 오히려 소통이 저해되었으니 본질적인 면에서 이미 그 의의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가장 아쉬웠다.

  또한 이 책은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예상 독자들은 대학생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는 일반인이나 청소년이 읽기에는 약간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책으로 엮은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 위함일 것인데,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인 최무영 교수가 좀 더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물리 교과서에 인용되는 식상한 비유가 아닌, 언제나 새로운 비유를 도입했던 최무영 교수라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누가 봐도 만족할 만한 교양 물리학 책이 완성될 것 같아 내심 개정판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내용 자체가 전공자 입장에서도 매우 놀랍고 신기했다. 하지만 이렇게 놀랍고 신기 했다는 것 자체가, 여태까지 이런 교양 물리학 책 한 권 나오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과학계가 애초부터 대중과, 사회와 소통하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결국 이공계 위기니, 기초과학 천대니 하는 것들에 대한 원인 제공은 과학계가 먼저 제공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의 과학계가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이공계 위기 대한 해답을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소통에 나도 동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기회가 되고 역량이 된다면 최무영 교수가 했듯이, 이런 좋은 교양과학 책을 써서 대중과 소통하며 자연과학의 아름다움을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흔히 말하는 7차 교육과정 세대이다. 우리는 개개인의 전공과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한다는 취지 아래 자연계와 인문계로 나뉘어져 반쪽짜리 교육을 받아야 했다. 나는 자연계를 선택한 학생이었기에 이과 과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인문·사회 영역에 대해서는 늘 막연한 환상과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호기심을 언어영역의 비문학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비문학에서 볼 수 있는 인문학의 세계는 경이로웠다. 늘 절대적이고 불변인 것처럼 보이는 과학 법칙에 숨 막혀 있던 나에게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발전해가는 인문·사회 영역의 이론들은 내 숨통을 틔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바로 타 학문 간의 연계에 관한 글들이었다. 미술 작품에서도 철저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미적 안정감을 높인다는 사실에는 전혀 다를 것 같은 분야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과학 기술의 발전이 역사의 흐름을 반전시켰던 사례들을 보면서는 자연 과학자들도 세상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 게다가 과학은 단지 한 방향으로 사회에 영향만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과학 역시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과학의 발전과정이 사회 혁명과 닮아 있다는 토마스 쿤의 이론은 정말 신기했다. 이렇게 과학과 사회, 사회와 과학이 서로 닮아있고,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주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왜 우리는 이과와 문과로 단절되어 반쪽짜리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적어도 토마스 쿤 같은 사람은 문·이과로 나뉘어져 교육을 받았을 것 같진 않았다.

 

  이런 현상은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제도적으로는 자유로운 수강이 가능하나 2학년부터는 자기 전공에 치여 다른 전공과목을 듣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는 예전의 호기심을 버릴 수가 없어 가끔 인문대의 철학과 강의를 몇 개 듣곤 했다. 친구들에게 자연과학 계열인 내가 인문대의 철학과 전공 강의를 듣는다고, 기회가 되면 부전공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 대부분이 꽤나 놀란다. 그 놀라움은 ‘그런 거 왜 듣냐?’고, ‘들어서 뭐하냐?’는 질문으로 돌아오곤 했다.

 

  사회에서는 통합적 사고니 창의적 사고가 중요하다면서, 우리에게 창의적인 인간이 되길 요구하면서, 왜 정작 우리에게는 통합적 사고가 뭔지, 그게 왜 중요한지, 하다못해 어떻게 하는 것인지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것일까? 답답하다 못해 슬슬 통합적인 사고방식, 창의적인 사고방식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쯤, 이번에 내가 읽은『과학으로 생각한다』는 그 동안 내가 가져왔던 의문들에 대한 답을 해주기에 충분했다.

 

  먼저 이 책의 저자들은 정말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저자 4명 모두 학부과정은 이공계열이었으나 현재는 모두 학부 과정 때와는 전혀 다른 전공에 종사하고 있다.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분도 둘이나 된다. 여기서도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와 적성을 나누어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4명의 저자 모두 서울대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거쳐 나온 점에서는 동일했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인문학과 과연 과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사유를 위한 훈련’을 이곳에서 받은 듯하다. 저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과학이란 학문을 과학사 혹은 철학사에서 커다란 자취를 남긴 인물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먼저 「1장, 과학혁명 세계관을 바꾸다」에서는 과학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 업적을 남긴 인물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근대 과학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뉴턴부터 시작해서 컴퓨터의 시조격인 튜링 기계를 만들어낸 튜링,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분자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저자들은 여느 과학사 책에서나 나오는 그런 내용들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들의 업적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우리에게 어느 누가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18세기의 계몽 사조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 보통의 이공 계열 대학생들은 아마도 그 말을 들으면 먼저 검색엔진으로 18세기 계몽 사조가 무엇인지부터 찾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무엇’으로 본다기 보다는, ‘무엇’을 통해 본다고들 한다. 그들은 진실로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해 주었다. 세계관을 바꿈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버린 그들, 그들이야말로 세상에 숨은 ‘영웅’들이었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과학이란게 도대체 무엇일까? 「2장,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과학적인 것‘에 대해 논쟁하다」에서는 과학이란 것은, 과학적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실제 과학에 종사했던 과학자들과 ‘사유의 귀재’들인 철학자들의 생각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2장을 따라 이어지는 논의에서 저자들은 딱히 과학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답을 내리지는 않고 있다. 그저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을 통해 대충의 윤곽을 짚어줄 뿐이다. 여기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었는데, 과학을 하다가 철학자로 직업을 바꾼 비트겐슈타인이 바로 그것이다. 비트겐슈타인 말고도 이 책에서 소개된 과학자들의 저작이나 언행을 살펴보면 가끔씩은 이 사람이 철학자인지 과학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두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닮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긴, 원래 과학이란 것도 아주 오래전엔 철학의 한 분야였고, 지금도 철학과 개설과목에 ‘자연철학’이라는 과목이 있는 것만 봐도 두 분야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너무나도 멀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3장, 인간과 생명을 둘러싼 또 하나의 전쟁: 진화 전쟁」에서는 20세기 유전자의 발견으로 새롭게 등장한 분자 생물학에서부터 태어나 지금 현재 한창 꽃피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보이는 과학 분야인 생명과학에 대한 최근의 논쟁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고교시절 나는 생물이란 과목은 그저 암기과목으로 알고 있어서 생물학을 기피하곤 했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과학자들의 주장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생물학에 대해서도 조금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장을 통해 과학이 얼마나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는지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생명이란게 뭔지, 유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몰랐던 인간이 이제는 인간의 모든 것을 생명과학의 힘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보며 새롭게 태동하는 생명과학의 역동성을 실감하고, 또 과학이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을 이렇게나 급격하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내가 전공하려는 천문학에도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우주생물학’이다. 이번 기회에 한 번 깊이 공부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오며 나는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아마 대부분의 자연과학도들이라면 이런 생각은 한 번 쯤은 가져 봤을 것이다. 과학을 해야 하는데, 과학이란 학문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저자들은 친절하게도 「4장, 과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그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노력했다. 패러다임이란 말로 너무나 유명한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부터 시작해서 과학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회구성주의’를 넘어, 과학과 기술이 정치생태학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을 보며, 과학이란게 사회와 뗄래야 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사회과학이나 정치학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과학이란 학문이 그저 이론과 실험, 번뜩이는 영감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장이었다.

 

  과학과 사회과 연관이 깊다는 것은 1장과 4장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그 관계가 늘 바람직할 수는 없는 일이다. 「5장, 과학과 사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서는 과거 사회·윤리적 제약이 없이 극단으로 치달은 과학이 낳았던 재앙에 대한 반성을 통해 바람직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특히 저자들은 과학이 발전하기 좋은 사회적 토양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찌보면 국가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전체주의 사회가 더 나을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획일적인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과학 발전이 어렵다고 한다. 다양한 생각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체주의의 권력을 남용으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런 생각들이 서로서로 견제와 공생을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이념이고, 과학자 사회의 이상향이다.

 

  마지막 「6장, 새로운 과학을 위하여」 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뉴턴 이후에 확립된 이분법, 기계론적 사고방식은 세계를 객관적이고 효과적으로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탐구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너무나 파괴해왔고, 그 결과 우리의 목을 조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기계론적 사고방식은 양자역학이나 여타 다른 분야에서도 입증되었듯이 더 이상 자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과학적 사고방식이 필요하게 된 시점이다. 이 장에서는 새로운 과학적 사고방식을 확립하기 위해 과학자들과, 그리고 자연과학도들에게 다양한 문화와 학문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과학적 사고방식 중 하나로서 젠더와 과학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바로 섬세한 여성성을 바탕으로 연구에 몰입해 연구대상과 연구자가 하나가 되어 소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접한 적이 있던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The Tao of Physics』에서 주장하는 것과도 많이 닮아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는 새로운 과학적 사고방식을 동양사상, 특히 도가·불가적 사고방식에서 찾고 있었다. 이 역시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6장에서 얻은 결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시대는 변한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동서양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쓸데없이 대립하지 않고 조화롭게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처음 이 책을 다 읽었을 땐, 무슨 말을 써야할지 솔직히 종잡을 수 없었다. 쓸 것이 없었다기 보다는 쓸 것이 너무 많아 무엇을 써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만큼 나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기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저자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충분히 성취한 것 같다. 저자들은 독자들이 저자들의 생각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한 바램으로 책에 소개했던 인물들의 저작이나, 읽어보면 좋을 책들에 대해 「더 읽어볼 만한 자료들」이란 코너를 통해 저작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유명한 사람들의 저작들 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저작들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말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책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 대중성이 떨어져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번역을 꺼린다는 말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 많이 씁쓸했다. 아마 국내에 번역되지 않고, 소개되지 않은 자료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 세대들이 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새로운 시대, 더 나은 과학,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윤리시간에 들었던 말이 있다. 흔히 말하는 성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책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자. 석가모니가 자신의 생애에 대한 책을 남겼는가? 아니, 없다. 불경은 그가 한 말을 쓰고 해석한 것일 뿐이다. 공자는? 논어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지 공자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앞에서 예를 들어주었는데도 성서라고 말하면 그저 눈치없는 사람이고. 없다. 정말 없다. 하다못해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자서전 하나 남겨놓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그러한 업적들을 남겼을까 하고. 그들의 삶의 자세가 마치 며느리도 안 알려준다는 원조 맛집의 비결 마냥 꼭꼭 숨겨진 것 같아 약이 올랐다. 그들은 시대가 선택해 준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한 교수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다. 학문의 즐거움. 책 이름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마음에 들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1970년 복소 다양체의 특이점에 관한 연구로 필드상 수상, 필드상이야 수학계의 노벨상. 아니, 오히려 나이제한과 4년에 한 번씩 주어지는 상이기에 노벨상보다 더 권위있게 느껴지는 상을 받은 일본의 수학자. 그가 그의 인생을 이 책에 담아놓았기에 원조 맛집의 비결을 훔쳐보는 것처럼 호기심 있게 책을 읽어보았다.

  
  먼저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학문을 하면 어떻게 즐거운지, 얼마나 즐거운지, 왜 즐거운지에 대해서는 저자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그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은 느꼈다고 적고 있다. 오히려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 이름은 황농문 교수가 쓴 ‘몰입’이라는 책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 책에서는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즐겁고 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지를 써놓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대신 학문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자세를 적고 있다. 이렇게 하라는 식의, 선배 학자가 후배 학자들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 자세랄 것도 크게 대단한 것이 없다. 소박하게, 끈기있게. 이렇게만 배운다면 어느 계기에 의해 창조에 도달할 수 있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인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그런 자세를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그의 인생을 통해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끈기를 갖게해주신 우직한 성격의 아버지,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신 자상하신 어머니.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 해준 학창시절 친구들. 체념하는 자세를 깨닫게 해준 하버드 시절의 천재들. 젊은 시절,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다 실패한 논문 등. 그가 이렇게 글을 통해 말한 것보다도 나는 그가 이런 것을 쓰도록 만든, 그의 내면에서 끓어 넘치는, 무엇을 통해서든 배움을 얻으려는 그의 태도가 더 마음에 닿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체념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더 믿으려 하고 천재들과의 능력의 괴리로 인해 훨씬 괴로워했을 것이고, 논문에서 실패했다면 그의 책에서 말했듯 다른 많은 수학자들과 같이 부끄러움에 목숨을 끊기도 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그는 그런 경험에서 ‘배웠다’. 소박하지만 끈기 있게.

  저자 역시 그 자세로 일관된 삶을 살아서 그런지 책 역시 요즘의 자극적인 책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차분하면서도 깊은, 냄새로 치면 녹차향이랄까? 그런 문체로 씌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지, 글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단조로움 때문에 약간 읽기가 따분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요즘 세대가 읽기에는 실질적인 자극이 좀 더 많은,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기 계발서에도 역시 이 책에서와 같은 자세를 가지라고 늘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을 보면서는 저자의 진실된 권유보다는 감성으로 치장된 거짓된 강요밖에 느끼지 못했다. 그 이유가 책의 깊이와 저자의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직 배움이 짧은 내가 이 책의 깊이 전부를 가늠할 수 는 없지만, 나 역시 ‘배우면’ 될 일이다. 소박하지만 끈기있게 말이다. 

  이 책의 첫 머리를 다시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사람은 왜 배우는가?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얻은 지식을 어느 정도는 잊어버리게끔 되어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 기억해 내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왜? 도대체 왜 배우는 것일까? 저자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 역시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데 처음에는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약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인터넷 도서 쇼핑 사이트를 통해서 책의 목차를 보는 순간, 내용이 조금씩 기억나면서 내 안에서 서서히 정리됨을 느꼈다. 지금 내가 이 책의 98페이지에 무엇이 씌어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난다. 난 책을 통해 ‘배운’것이다. 저자는 삶의 어디에도 통하는 그런 지혜를 익히기 위해 배운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다. 배우는 자세를 익히기 위해서라고. 어쩌면 배우는 자세 그 자체가 저자가 말하는 지혜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