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세상의 모든 음악’은 제목조차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그만큼 제로 베이스에서, 이 책의 작가와 이 책에 대한 선입견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도무지 빨리 읽을 수가 없는 책이었다.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는 바람에 바빴던 탓으로 그랬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진도가 잘 안 나가는 책이었다. 중간 중간 어떤 페이지에서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서 내 머리 속을 온통 휘젓고 다녀서 그 때마다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페이지는 ‘해 질 무렵 의자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해 질 무렵 의자를 샀는데 그 때는 정말 편했던 의자가 사실은 편한 의자가 아니었다는 이야기... 의자를 살 때 너무 피곤했던 탓에 세상 어떤 의자에 앉았더라도 편안하게 느껴졌을 거라는 말...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의자가 아닌 신발이었다. 정말 불편한 신발을 신었었기에 발이 너무 아파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신발을 샀다. 처음의 그 신발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새로 산 그 신발은 참 편안했었다. 하지만 며칠 후 새로 산 그 신발도 내겐 편한 신발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참 허탈했었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글 속 그녀는 나와 참 닮은 경험을 한 셈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자면 의자, 신발이면 신발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로 그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연애도 해 질 무렵에 산 의자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진정 그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외로울 때 그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운명적 사랑이라 믿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의자를 방구석에 하나의 오브제처럼 놓아두어 혹 ‘해 질 무렵에 의자를 사려 할 때’, 나쁜 선택에 유혹을 느낄 때 일종의 경고처럼 바라보려 한다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읽고 내 나쁜 선택의 기억과 그 사람을 생각했다. 참 오래도록...
그리고는 다시 힘들게 책을 펼쳐 읽다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페이지에 이르러서 다시 또 멈췄다. 나는 그토록 그를, 그 사람을 믿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나 자신부터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었는가 하고... 나 자신도 믿지 않는지라 내가 그를 믿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누가 물으면 확인해 보겠다고 했던 그 시절... 어떻게 보면 물어본 사람 입장에서는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그런 대답은 오만해 보이고 어이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그 사람을 내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물어본 이가 그 사람을 믿을 가능성을 더 높여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나의 그러한 태도가 평상시에 그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그가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러지 못 했다. 아니, 안 했었다. 그리고 나의 그 사람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를 채찍질해서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했던 수많은 질책들은 나부터 그를 진정으로 믿은 후에 해도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 때는 왜 몰랐던 걸까...
짧은 이야기 하나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국수처럼 후루룩 넘어가지 않고 씹다가 멈추고 씹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다 보니 다독을 습관으로 하는 나인데도 참 읽기 힘든 책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좋았던, 아니 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