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출판사 서평단을 통해 이 책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일본 작가의 작품을 즐기지 않는다. 인명과 지명이 복잡해서 잘 정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같은 동양권이고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지만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 작품의 경우에는 그런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일본 작품이 그렇다는 것은……. 이웃나라이기는 하지만 육지로 이어진 중국과 달리 바다에 가로막힌 일본은 문화적인 공감대이 많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쿠니 가오리는 비교적 익숙한 작가이다.츠치 히노나리와 같은 제목으로 남녀 주인공 입장에서 쓴『냉정과 열정 사이』를 통해 인연을 맺은 이래 『기억 깨물기』,『등 뒤의 기억』,『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등 여러 편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익숙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들이 하나같이 몰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설 작품이 50쪽 정도만 읽으면 내용 속에 빠져들 수 있는데 그녀의 경우는 절반 이상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 읽고 난 뒤에는 작가의 매력이 다가오긴 했다. 이 작품은 어떨까, 라는 부담과 기대를 갖고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예상대로 쉽게 읽히지 않았다. 350쪽밖에 안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100쪽을 넘어 200쪽이 되도록 전체적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300쪽을 넘겨서 작품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에도 역시 쉽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액자소설이 함께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50대의 남성이고 자산가인 주인공 미노루의 소소한 신변잡기를 다루고 있다. 여주인공은 딱히 누구라고 할 수가 없다. 사진작가로 독일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하는 스즈끼 누나(아마도 독신인 듯), 이혼한 아내인 나기사가 자주 나오기는 한다. 미노루는 수시로 소설을 읽고 있는데, 첫 작품은 북유럽 미스터리다. 구 소비에트 연방의 KGB 요원이 소지한 비밀문서를 둘러싸고 그 문서를 회수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이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이 희생되는 사건이 이어지고……. 다음 작품은 카리브 해의 어느 섬나라에 사는 가족의 이야기다. 마피아 조직에 속하는 아들이 오랜만에 귀가해서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상당 분량을 읽을 때까지 작가는 액자소설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미노루 주변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과 소설 속의 인물들이 연결되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첫 작품이나 다음 작품의 결말을 완벽하게 보여주지도 않으니 황당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작가 또는 편집자가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간단한 소개를 책의 앞이나 뒤에 덧붙였으면 어땠을까? 나는 이 작품보다 더 방대하고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도 읽었지만 그리 혼란스럽지 않았다. 중국의 삼국지나 우리나라의 토지는 수 세대에 걸쳐서 배경이 바뀌면서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는 없다.
 
작년에 읽은 작품 중에 김희선의 『무한의 책』이 생각난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과 신화가 뒤섞이면서 한국과 미국과 우주 등을 배경으로 하는 대하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혼란을 겪지 않은 것은 등장인물의 간단한 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등장인물을 확인하면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도 등장인물 소개가 있었다면 독자들은 좀 더 편안하게 책에 몰입하지 않았을까 싶다.
 
셋째, 한국인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인 듯하다. 내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성도 훌륭하고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여운도 있다. 소설 자체로는 괜찮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정서’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고전을 보면 상황 묘사가 아주 친절하다. 흔히 춘향전의 결말이 춘향과 이도령의 결혼, 홍길동전의 결말은 길동이 왕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전은 그렇지 않다. 결혼한 춘향과 이도령 사이의 자녀들이 성장해서 벼슬을 하는 것까지 나오고, 길동의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고 나이가 든 길동의 죽음까지 소개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이 작품의 경우는 결말이 확실하지 않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또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듯한 등장인물도 별로 없다. 미노루는 자식까지 둔 나기사와 이혼했고,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해서 자식을 낳았으며, 또 다른 여자들과도 가끔 만나는 듯하다. 미노루의 친구이자 전담 세무사인 오타케도 평범한 가정은 아니고……. 이혼 이야기는 대부분의 일본 소설의 공통점인 듯하다. 한국인의 경우 지금은 이혼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아직은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작품성과 관계없이 한국인의 정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잘 모르겠다. 완독을 하려면 끈기가 필요한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 일본 소설의 분위기에 친숙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에쿠니가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