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 대해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던 나는 인간이나 생물의 이기적인 성향에 대해 집필한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내용을 읽어보니 지금으로부터 40년이나 전인 1976년에 최초로 초판이 나왔던 책이며 진화에 관해 다룬 매우 유명한 책이었다.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을 35세에 썼다고 한다. 참으로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런 천재와 나 자신을 비교해보았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의 책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이마저도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판단을 내리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기적 유전자>는 그렇게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나의 독서에 대한 의지를 시험에 들게 할 정도로 읽기가 까다로운 그런 책이었다. 다행히 뒷부분으로 갈수록 읽기는 조금씩 수월해졌다.

 

저자인 도킨스도 밝혔듯이 이 책은 생물학이나 인간에 관한 책이 아니라 진화를 다룬 책이다. 도킨스는 생물이 ‘개체’나 ‘종’의 관점에서 유리하도록 진화하였다는 시점이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이나 증식에 유리하도록 진화하였다고 하는 “유전자”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라는 것이며, 이러한 설명이 좀 더 많은 현상을 더 수월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기계(survival machine)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물론 유전자 자체에 동기나 목적이 있을 리가 없고, 오로지 자신의 생존가능성 혹은 복제가능성을 높이려고 집요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표현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보다 더 많이 남기려는 의도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결정된다면, 인간의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결국은 이기적 유전자의 조종에 의한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결론을 얻게 된다. 존재론적인 회의감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유전자의 힘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특수한 종이라고 말하고 그러한 특이성을 ‘문화’에서 찾는다.

 

도킨스는 인간의 행동과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meme)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문화의 전달을 위해서는 유전자처럼 복제역할을 할 수 있는 중간 매개물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정보의 단위·양식·유형 요소를 밈이라고 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가 정자, 난자를 통해 개체에서 개체로 전해지듯이, 밈은 모방을 매개로 뇌에서 뇌로 전달된다고 한다. 모방이야말로 밈의 자기복제의 수단인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가 설계한 뇌를 통해 문화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냄으로써, 단순히 유전자에게 조종되는 수동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밈을 통해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진정한 이타주의의 능력을 진화시켜 능동적으로 이끌어 갈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페이지 : 335

 

책의 내용중에서 특히나 암컷과 수컷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암컷이 자식에게 더 특별하게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것은 암컷이 처음부터 크고 영양소가 풍부한 난자의 형태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컷에 비해 수컷은 개개의 정자가 아주 작고, 매일 수백만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수컷이 잠재적으로 여러 마리의 암컷을 이용하여 단기간 내에 많은 수의 새끼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해서, 수컷에게는 자식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다른 암컷과 더 많은 자식을 만들게 하는, 암컷을 버리고 떠나는 진화적 압력이 작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이 죽을 경우 어미는 아비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장래에 새로운 자식을 죽은 자식과 같은 단계까지 키우려면 어미가 아비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되는 것이다.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며, 착취의 근본적인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 있다고 한다. 여성들이 보게 되면 자신들도 모르게 분노할 수 있는 그런 대목이다.

 

이러한 불이익에 대항하기 위해 암컷은 성실하고 가정적인 수컷을 우선시하는 전략을 채택했고, 이를 위해 오랫동안 수컷의 접촉을 거부하고 수줍어 행동하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암컷이 최종적으로 교미에 동의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수컷은 성실한 남편이 될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밖에도 암컷의 폐경기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설명한다. 노령의 산모가 낳은 아이의 기대수명은 젊은 산모가 낳은 아기의 수명에 비해 짧다. 이것은 어떤 여성의 아이와 손자가 같은 날 태어났다면 손자가 아이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아이를 낳은 여성은 손자에게 충분히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중년기에 이른 여성이 번식능력을 상실하도록 작용하는 유전자가 점점 증가하고 번창했을 것이라고 한다.

 

	수컷의 경우 생식능력이 갑자기 소실되지 않고 점차 쇠퇴해 가는 이유는 아마도 수컷이 자손에 대해 암컷만큼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아이를 낳게 할 수만 있다면 그가 아무리 고령일지라도 손자에게 투자하기 보다는 자기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페이지 : 224

 

 

이처럼 진화론적 관점에서, 그리고 유전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재미있는 설명들이 이 책에는 많이 등장한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형제 자매간의 관계보다 더 좋을게 없다고 하고, 유전자의 번성을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을 게임이론으로 설명하면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ily stsble strategy, ESS)으로 귀결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책이 대중과학서라고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용어나 수학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진화에 대해 나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탁월하게 설명해낸 리처드 도킨스의 이야기를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그리고 전투적으로 책을 한번 읽어볼 생각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진화론, 리처드도킨스, 이기적유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