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건망증이 가끔 있는 평범한 남자가 기억력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뜻하지 않은 계기로 훈련을 통해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저자 조슈아 포어는 2005년 과학 기자 신분으로 전미 메모리 챔피언쉽 대회를 취재하러 갔다가 그 곳에서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로부터 누구나 기억력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아보기로 한다.

 

그는 1년간의 체계적인 기억력 훈련을 통해 2006년 전미 메모리 챔피언쉽 대회에 선수로 참가하여 우승까지 하는 성과를 일구어낸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1년만에 기억력 천재가 되었을까?

 

그리고 카드 한 벌의 순서를 모조리 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카드의 순서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가 1년간 기억력 훈련을 받는 과정, 기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과 기억에 관한 역사적, 과학적 고찰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법은 영국 드라마 셜록을 연상시켰다.

 

영국 드라마 셜록 시즌3에서는 매그너슨이라는 언론인이 나온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인물이다. 드라마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집 어딘가에 방대한 정보들을 담은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이 곳은 다름아닌 자신의 머릿속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 공간 구석 구석에 방대한 정보를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매그너슨이 사용했던 방법과 비슷하게 기억력을 높이려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기억의 궁전을 만들어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를 머릿속에 만들어내, 머릿속으로 그곳 안을 곳곳이 누비면서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정보를 주요 장소에 심어놓는 것이다. 이때 심는 정보는 기억을 위해 지극히 자극적이고 과장된 것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헤렌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에서도 기억의 궁전에 저장하려는 이미지가 재밌고, 색다를수록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무엇이든지 사소하고,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기이하지 않고 놀랍지 않은 것에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주 비열하고, 치욕스럽고, 놀랍고, 믿기지 않고, 또는 우스꽝스러운 것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경향이 있다.
페이지 : 154

 

코티지치즈를 기억하기 위해 집 앞 뜰에서 커다란 코티지치즈 통에 들어가 알몸으로 목욕하고 있는 클라우디아 쉬퍼를 설정하는 식이다.

 

이러한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법은 전세계의 기억력 고수들도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최근 읽었던 <관찰과 위트>에서도 소개되었던 마크트웨인의 이야기가 여기에서도 나온다.

 

마크트웨인은 자녀들에게 역대 영국 군주의 이름을 쉽게 암기하도록 하기 위해 말뚝에 군주의 이름과 재임 기간을 적어 집 앞 뜰 곳곳에 박아두었다고 한다. 마크트웨인은 집 앞 공간을 기억의 궁전처럼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그의 자녀들은 영국 군주의 이름과 재임 기간을 앞뒤로 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의 앞부분에서 소개되고 있는 기억술의 탄생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대연회장 한 곳이 붕괴하는 참사가 일어났는데, 피해자 가족들은 어디엔가 묻혀있을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무너진 건물 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잔해더미에서 찾은 시신들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손상되어 있어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연회장 안에 있다 잠시 밖으로 나와 있어 화를 면할 수 있었던 시모니데스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른 뒤 붕괴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산산이 조각난 대리석 파편을 짜 맞춰 기둥을 올리고, 폭삭 주저앉은 벽면을 일으켜 세웠다. 탁자 윗자리에 앉아 즐겁게 웃는 스코파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수프에 빵을 찍어 먹는 동료 시인, 능글맞게 웃고 있는 귀족이 눈에 선했다.

 

기억이 여기에 이르자 시모니데스는 감고 있는 눈을 뜨고 유족들을 데리고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올라가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고인들이 앉아 있던 자리로 안내했다고 한다.

 

또 하나 흥미를 끌었던 이야기는 단조로움이 시간을 줄인다는 것이다.

 

	하는 일 없이 골방에 앉아 신문이나 들춰 보며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 없이 세월만 허송하는 것이다.   틀에 박힌 일상을 바꾸고 이국적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가능한 한 기억에 남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기억의 창조가 심리적 시간을 늘리고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꾼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1890년에 쓴 <심리학 원리>에서 심리적 시간의 연장과 수축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젊어서 우리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매일 매 시간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은 생생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젊을 때 기억은 흥미진진한 여행지의 추억처럼 다채롭고 이색적이고 오랫동안 남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색다른 경험은 틀에 박힌 일상으로 바뀌어 진부한 것이 되기 때문에 별 의미 없는 것으로 기억에 남고, 그래서 해가 바뀔수록 기억에서 하나씩 자취를 감춘다.”   해가 갈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 기억할 만한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더욱더 인간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페이지 : 125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상당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이다. 내 삶에 스스로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주며 살아간다면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긴 삶과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기억의 궁전 외에도 여러 가지 기억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17세기에 발명된 메이저 시스템이다.

 

아래 사진의 숫자들을 외워볼 수 있겠는가?

 

9 1 7 2 9 1 9 1 2

7 7 5 4 3 5 0 3 1

1 3 4 3 7 6 3 7 3

5 2 2 1 2 7 5 9 4

2 1 3 6 7 0 1 1 5

4 8 1 7 6 4 6 0 7

3 7 9 5 8 3 4 4 8

8 6 8 5 9 8 2 5 2

9 9 7 6 1 6 7 8 6

6 4 0 8 2 4 5 6 1

3 3 6 9 2 7 6 3 0

5 0 1 4 3 6 8 7 7

4 1 3 7 4 9 9 8 0

2 4 2 2 5 9 1 1 9

1 2 3 1 0 8 3 3 1

 

메이저시스템은 이 숫자들을 음성으로 전환한다. 음성은 다시 단어로 전환하고, 단어를 다시 이미지로 전환해 기억의 궁전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0        1          2      3      4

S   T또는D     N      M     R

 

5             6                 7                   8               9

L    Sh 또는 Ch     K 또는 G         F 또는 V     P또는 B

 

 

숫자 32는 MN, 33은 MM, 34는 MR로 변환할 수 있다. 이 자음들에 다시 적당한 모음을 끼워넣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숫자 32는 man(남자)의 이미지로, 33은 mom(엄마)의 이미지로, 34는 러시아 우주정거장 MIR(미르)로 바꾸는 식이다. 이렇게 이미지화 된 정보를 기억의 궁전 곳곳에 저장하여 필요할 때 다시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 외에도 PAO시스템 등 다양한 방법들이 이 책에서 소개된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에서 의문을 제기했듯이 이런 식으로 기억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일까?

 

문자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의 사람들은 구전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전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식과 정보들을 머리에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의 국가들과 트로이의 전쟁을 다룬 장대한 내용들을 모두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며, 이렇게 구전으로 전해진 서사시가 나중에 문자가 발명된 뒤에 <일리아스>라는 책으로 엮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 사람들은 더 이상 기억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 책을 통해 지식이 전해질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방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더구나 스마트 폰이라는 간편한 외부 기억장치를 얻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연락처, 약속 등 사소한 것들도 머릿속에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기억력을 높이는 것은 꽤나 쓸모없는 일인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현대 교육에서 암기가 불신을 받게 된 것은, 암기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것이 근대 교육의 기본 이념, 즉 복종적이고 순응적인 인간을 육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용의주도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교육은 맹목적 암기만을 강요했지 무엇을 암기하고, 왜 암기하고, 또 암기한 것을 계속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창조성을 강조하는 현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페이지 : 409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대일수록 기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전화라는 과거가 없이 핸드폰이라는 미래가 탄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과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만이 정보화 시대에 새로운 혁신적인 상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기억력이라는 기본적인 바탕이 없다면,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억은 도덕과 가치를 세대에서 세대로 전파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   아는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이 알기가 쉬워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억은 새로운 정보를 붙잡는 거미줄과 같다.   붙잡는 것이 많을수록 거미줄은 커진다.   거미줄이 커질수록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페이지 : 295

 

 

저자가 주장하듯 우리는 지나치게 외부의 기억장치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창조적인 생각들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와 지식의 습득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수백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책을 써낼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의 정보들의 축적이 중요한 것이다.

 

기억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의 내노라하는 기억력 천재들도 이 책에서 소개된 방법이나 다른 방법들을 통해 끊임없이 훈련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러한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깨우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을 뿐이다.
페이지 : 330

 

이 책은 기억력을 훈련을 통해 높여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꽤나 흥미롭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창조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뇌를 일깨우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점을 전달해주기도 하는 의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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