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과연 “명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요즘 명상이라고 하면 선 센터나 명상 센터에서 특별한 자세를 갖추고 호흡을 일정한 방식으로 훈련하는 등의 테크닉을 통하여 무언가 특별한 차원의 의식 세계를 경험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더러 있다. 그리고 명상이라고 하면 서양적 분위기와는 무언가 안 어울리고 동양적 냄새를 물씬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명상”이라는 단어는 그와 비슷한 것 같지 않아서, 명상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있는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함. 또는 그러한 생각”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명상에 부합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동양적 명상을 실천했을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도 하겠다. 다만 로마의 황제로서 바쁜 격무의 와중에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풀어낸 것이리라.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명상을 통해서 알파파를 체험한다느니 하는 것보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하여 깊은 관조를 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글이 일부 소개되어 있기도 하고, 최근에는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에 그가 등장해서이기도 하겠다. 몇 년 전에는 어느 정수기 회사가 그 교과서의 전문을 통째로 자사의 광고에 전재한 적도 있다. 그 정수기 회사 사장은 자신이 가장 감명 받은 글이라서 그렇게 하였다고 하는데, 그 글에 감명 받은 사람이 비단 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대한 기억은 정갈한 수필로 이름 높은 이양하의 이름과 함께 아련히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페이터의 산문”이라는 제하의 그 수필에서도 이야기하고 있거니와, 필자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그 산문을 떠올리곤 하였는데, 최근에는 작년에 그 명상록 전문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천병희 선생에 의해 원어에서 직접 우리말로 완역되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에서 다섯의 현명한 황제가 연이어 통치한 시대(五賢帝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의 마지막 시기를 통치한 제왕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혹심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교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평가가 차갑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 대의 황제가 된 그의 아들 코모두스가 폭군으로서 이름 높았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심지어는 그의 당대에 반란을 일으킨 자 가운데 한 명은 그의 아내의 숨겨둔 애인이었다는 소문도 전해져 내려온다.

플라톤이 이상적 군주로 묘사했던 것에 가장 걸맞은 철인왕(哲人王)으로 서양사에서 추앙받아오기도 했지만, 그는 이러한 사건들 외에도 제위에 있었던 기간에 있어서 반란 진압과 오랑캐 토벌로 인하여 전장을 떠나지 못한 기간이 많았다. 편안한 명상을 즐기기에는 형편이 허락되지 않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위치가 스토아철학을 희랍적인 철학에서 로마적인 철학 곧 실용적인 철학으로 변용시켜서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평자는 그가 이러한 명상록을 즐길 정도로 사색적인 인물이었기에 로마제국이 그의 당대에 쇠퇴해가기 시작한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안목으로 치세를 해도 어려운 마당에 사변적인 스토아철학에 침잠하여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학자들이 그의 치세에 이루어진 노예에 대한 처우의 개선 등을 포함하는 여러 개혁적 입법 및 정책을 사례로 들어 그의 통치가 매우 훌륭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여러 가지 불가피하게 전개된 내우외환 속에서도 현명한 통치를 해나갔다는 것이다.

앞에서 예시했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아버지로서 사랑을 제대로 베풀지 않아서 그 아들 코모두스가 폭군이 되어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지만, 실제 역사에 있어서는 오히려 지나친 애정으로 쏟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평하는 학자들이 많다. 오현제의 시대에 다른 황제들은 자신의 제위를 혈통 상의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 아니라 능력이 출중한 자를 골라서 양자로 삼아서 물려주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만은 자신의 혈통 상의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기까지 하였다. 그는 그 아들이 14세 무렵에 황태자로 임명하였고, 15세 때에는 공동 황제로서 로마제국의 통치를 분담하게까지 하였다고 한다. 코모두스가 초기에는 훌륭한 통치를 하였다는 것을 보아, 단지 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혈통상의 아들이었다는 점 때문에 제위를 승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코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바람직한 결정이 아니었다고는 할 수 있다.

어쩌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신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총명함으로 하드리안 황제의 눈에 띄어 황제 승계자로서의 길을 탄탄하게 걸어간 그였지만, 하나의 개인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 안에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하여 그 자신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그의 명상록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토아철학의 달관 내지 체념의 태도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비현실적이고 사색적인 군주로 만들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 현실에서 인간의 역사라는 것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 자신을 포함해서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명상록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라는 운명 앞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하면서 품위 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하는 그의 고뇌에 공감하면서 상당한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작게는 각 개인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작은 에피소드들도 우리가 임의대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굳이 대단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의 스토아적 태도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명상록은 12개의 권(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 권에서는 다른 권들의 내용과 달리 상당히 체계적으로 개인적 스승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나아가 신들에게 자신이 구체적으로 배우거나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소 주목되는 것은 제 6장에서 ‘주문(呪文)이나 귀신 내쫓기 등에 관한 마술사와 사기꾼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몇몇 평자는 이 부분에서 그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호감을 갖지 않게 된 이유 중의 하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자신들의 위치를 경쟁적으로 위협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는 것이 많이 이야기되지만, 당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오해 내지 풍문 가운데 귀신 내쫓기 등의 마술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상당히 피상적인 관찰과 오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성적 지식을 추구하던 스토아학파의 사람들, 특히 열심이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호감을 가질 만한 사람들이 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 내용 전반에 있어서 관용의 미덕이 찬미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또한 강한 비판과 경계의 태도가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이해에서 벗어나기 쉽다. 예컨대, 제 2권의 제 1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날이 새면 너 자신에게 말하라. 오늘 나는 주제넘은 사람을, 배은망덕한 사람을, 교만한 사람을, 음흉한 사람을, 시기심 많은 사람을, 붙임성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라고. … 내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나와 피가 같고 출신이 같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과 신성을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에 나와 동족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에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서도 해를 입을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추악한 일로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또 나의 동족에게 화를 내거나 동족을 미워할 수 없다. 우리는 두 발처럼, 두 손처럼, 두 눈꺼풀처럼, 상하 치열(齒列)처럼 서로 협조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대립하는 것은 자연에 어긋난다.

 

이 부분을 그냥 상식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가 문제성 있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그냥 관용적인 태도로 대하여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있어서 오랑캐들과의 전쟁이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이 부분을 그렇게 간단히 해석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뒷부분보다는 앞부분, 곧 문제성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게 되리라는 것에 대한 비관적인 체념이 더 강하게 그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제 3권의 제 2장에서 3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들에 수반되는 현상들도 우아하고 매력적인 데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사자의 주름진 이마, 멧돼지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거품 등등은 따로 떼어서 보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들에 수반되는 까닭에 그것들을 돋보이게 하고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는 것이다. …… 또한 노파나 노인에게서 원숙미 같은 것을 보고, ….

 

이 부분은 다소 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묘사에 그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추하게 보는 것들도 관점을 달리 하면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들로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제 3권 제 15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서 그가 얼마나 비판적인 사람이었는가를 유념하도록 해준다.

 

사람들은 훔친다든가, 씨 뿌린다든가, 구입한다든가, 쉰다든가, 의무를 안다든가 하는 말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눈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그가 훔친다든가 의무를 안다든가 하는 말을 매우 심각하고 책임성 있게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말들을 제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것도 엿볼 수 있다. 제 8권 제 4장에서 “네가 화가 나 폭발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체념 투의 말에서도 그의 냉소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제 9장 제 29절에 있는 “누가 사람들의 신념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신념을 바꾸지 못하면 신음하며 복종하는 척하는 자들의 부역(賦役)말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와 같은 말은 한결 더 절실하게 그의 심경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이러한 체념 섞인 태도가 그와 의견이 다르거나 대립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관용으로 대하게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차 없이 박해하도록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가벼운 비유를 들자면, 최근 어느 드라마에서 아내 몰래 여자를 만난 남편이 자신의 바람기는 유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자, 아내가 그런 당신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응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그러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상황이 대화로 풀리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 그러기에 법과 공권력 내지 단체적인 저항이 요구되는 상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소의 오해와 더불어 그 미묘한 판단의 균형이 치우치게 될 때 잘못된 박해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리라.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도 그처럼 개인적 도덕성만으로 사회적 문제가 풀리기 어렵다는 인식을 한 데에서 출발하여 부도덕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인격적 차원의 해법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교 또한 나중에 로마의 국교가 되고 서양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교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감행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박해가 어느 쪽에서든 없어야 하겠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그러한 박해자의 입장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도 있다. 파울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개방적인 신학자로서 이름이 높기도 하지만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정통 사상이 이단 사상을 극복하고 승리해온 과정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표현을 다시 빌린다면, 제 6권 제 57장에 “아니면 너는 그릇된 견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황달 환자에게 담즙이, 광견병 환자에게 독이 미치는 영향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의문제기를 가볍게 덮어버릴 수는 없다고 하겠다.

종교학을 강의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러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고뇌가 지금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종교다원주의를 긍정하고 싶기도 하지만, 여러 사이비 종교 현상들을 목도하고 있기에 그러한 선택은 양심적이고 책임 있는 선택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배타적인 입장으로 회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기존의 배타적 입장과 다원주의적 입장을 넘어서는 제 3의 길을 모색하여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종교학자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필자 개인이나 종교학자들에게 한정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종교를 넘어서서 사상 일반으로 확대 해석하자면, 지금 여전히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 체제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가는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의견충돌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숙제인 것이다.

 

(이 글은 신앙인아카데미(www.interfaith.or.kr)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맘울림> 2006년 8월 통권 제16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을 쓸 기회를 주신 신앙인아카데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