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하거나 자부할 수 있을까? 또는, 자신의 올바름 내지 도덕성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하거나 떳떳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인격에 대하여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가 특히 안 좋은 쪽으로 불거지는 것은, 그러한 문제와 연관되어 주변사람과 트러블이 생길 때일 것이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신은 당당한데, 문제가 생긴다고 푸념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 것이다. 마치 구약성서의 욥처럼, 자신은 의인으로서 고난 받을 일이 없는데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굴뚝처럼 솟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쪽 극단으로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죄악감에 몸서리처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서 일반적인 삶을 아무 일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인생살이를 겪어나가는 데 있어서, 죄나 유혹 앞에서, 순간의 감정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조울증처럼 왔다 갔다 하는 자부심과 무력감 사이에서, 특히 그 무력감의 극단에서 한 번 손에 들어봄직한 책이, 일본의 불교종파 중 최대종파인 정토진종(淨土眞宗)의 개창자 신란(親鸞, 1173-1262)의 사상을 다루고 있는, 길희성 교수의 『일본의 정토사상』이다. 일본의 불교에 대한 전문적인 학술서이기는 하지만, 까다로운 학문적 논의를 꼼꼼히 따라가려는 것을 다소 포기하고, 그냥 마음 가는 곳을 펼쳐서 띄엄띄엄 읽어가더라도, 상당한 느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정토(淨土)는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깨끗한 땅’이다. 기원전 6-5세기경 상당히 자력종교로 출발한 불교가, 기원 전후 무렵 시작된 대승불교에 이르러, 신적인 능력을 지닌 여러 부처 및 보살의 등장과 함께 타력적인 길을 수용하게 되는 데에서 나타나는 것이 정토사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을 예토(穢土) 곧 ‘더러운 땅’이라 하여, 이러한 세계에서는 자력으로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사상이 정토사상이다. 곧 이 더러운 땅에서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노력이 아니라 염불(念佛)이라고 하는 쉬운 방편을 통해 정토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에서의 탄생을 약속하고, 그곳에서는 기필코 구원을 얻게 해준다는 것이 정토사상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일본 하면, 우선 악감정부터 생기는 분들도 더러 있겠고, 특히 최근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심기가 불편하신 분들도 상당히 있겠지만, 일본은 여타 분야뿐만 아니라, 불교사상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기여를 해온 나라임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좀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섬나라에서 살다보니, 대륙에서의 여유 같은 것이 없고, 더 외곬으로 생각을 전개해나가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여하튼, 일본의 불교는, 특히 길희성 교수의 『일본의 정토사상』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인 신란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매우 독특한 불교사상을 전개하게 된다. 끊임없는 전란과 더불어 매우 흉흉한 시대적 상황이 그러한 불교사상의 배태를 야기했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당시 일본의 대표적 불교인들이 이후 일본 불교의 골격을 형성하게 된다. 신란 뿐만 아니라, 독특한 법화경(法華經) 신앙으로 유명한 니치렌(日蓮, 122-1282)이나 임제종(臨濟宗)과 더불어 선불교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조동종(曹洞宗)을 크게 선양한 도겐(道元, 1200-1253)이 모두 같은 시대의 사람들인 것이다.

길희성 교수가 불교학자이기는 하지만, 일본불교를 연구하게 되고, 게다가 정토사상을 연구하게 된 데에는, 선생 본인의 신앙적 관심이 한 몫 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불교신앙과 치열하게 만나고자 하는 의욕이 어쩌면 아시아의 극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 불교에서는 가장 그리스도교를 닮은 불교라고 할 수 있는 정토불교를 가장 그리스도교에 유사하게 전개해간 신란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관심에서, 우리는 신란을 보는 그의 관점에도 투영되어 있음을 의식하면서 이 저서를 읽어야 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거니와, 신란이 살아간 시대 자체가 매우 혼란한 시대이기도 했으나, 신란 자신이 특히 그 혼란을 강하게 느끼고 자신에 대한 절망감 내지 좌절감이 특이할 정도로 심한 인물이었음은, 동시대를 살면서도 다른 사상을 전개해간 니치렌이나 도겐과 다른 삶과 사상을 전개해갔다는 사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겠다. 천태종 승려였던 신란이 정토종으로 가게 되는 데에는 이러한 그의 예민한 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신란이 당시 악평도 많았던 호넨(法然, 1133-1212)에게로 가게 된 상황에 대하여 서술하면서 길희성 교수는 신란의 다음과 같은 술회를 전하고 있다.

비록 호넨 성인에 의해 속임을 당해 염불을 해서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다른 수행을 힘써서 부처가 될 만한 내가 염불을 해서 지옥에 떨어진다면야 속임을 당했다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수행도 감당할 수 없는 나일진대 어차피 지옥은 내가 살 곳이다.(길희성, 『일본의 정토사상』54쪽)

우리 중에 몇 퍼센트의 사람이나 어떤 종교를 선택할 때에 이러한 심정으로 택할까? 그 종교 자체가 무언가 빛을 적극적으로 던져주기에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밖에는 자신이 의지할 곳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좌절감 때문에 그 길을 택하는 신란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길희성 교수가 신란의 이러한 무력감에 관하여 전하는 다음과 같은 신란의 술회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나는 선과 악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래의 마음이 선을 아는 정도로 내가 알 수 있다면 선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래가 악을 아는 정도로 내가 알 수 있다면 악을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화택(火宅)과 같은 무상(無常)한 세계에 사는 번뇌구족의 범부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같이 거짓이요 잡소리이며 진실이 없다.(같은 책, 72쪽)

신란의 이러한 술회는 우리의 인식 일반에 대하여 두루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신란의 시대에 비하여, 훨씬 더 우리의 인식의 상대성에 대하여 자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관이 중심적 가치관으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었던 데 반하여, 오늘날에 있어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가치관들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의 영향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마음의 나약함 내지 죄악감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신란의 이러한 자기 고백에 여실하게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란의 이러한 무력감 내지 죄의식에 관하여 길희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신란에 있어서 죄와 악은 숙세(宿世)의 업(業)이라는 깊은 뿌리를 지녔기 때문에 쉽게 근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란은 죄악을 마치 그리스도교의 원죄 사상처럼 거의 결정론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 선한 행위든 악한 행위든 우리의 모든 행위는 어찌할 수 없는 숙업(宿業)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다만 우리의 도덕적 무력성과 죄악성만을 들어낼 뿐이다.(같은 책, 74-75쪽)

신란이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원죄에서 벗어날 길 없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에서 전제로 하고 있는 인과론은, 그 이론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서 인간사의 모든 일에 적용하게 될 때 결국 결정론적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가령, 그 중에서도 특히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주체적 인격자가 아니라 유전자가 자신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비록 과학과 종교가 초점은 상당히 다르지만, 그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결정론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길희성 교수는 신란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고의 철저함이 그의 스승이었던 호넨마저 넘어서고 있음을 그 염불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신란에게는 염불이란 결코 우리가 정토에 들어가기 위해 공덕을 쌓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니며, 어려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쉬운 방법도 아니었다. 그 어떤 수행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란으로서는 도대체 쉬운 수행이란 존재하지 않았다.(같은 책, 99쪽)

이러한 깨달음에서 신란은 불교사에서 가장 철저한 타력 신앙의 면모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란에게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가히 충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탈주술화이다. 길희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모든 형태의 공덕 지향적 수행을 거부하고 오직 아미타불의 타력에 자신을 맡기는 신심은 신란으로 하여금 주술적 행위나 점술, 혹은 현세적 이익을 얻기 위해 신들에게 기도하는 행위도 포기하게 만들었다.(같은 책, 107쪽)

여기에서 우리는, 자력에 대하여 철저하게, 어쩌면 처절하게 좌절하는 신란에게서 주술적 기복 신앙이 뿌리째 뽑혀져나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길희성 교수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신란의 말을 전한다.

⋯ 신심(信心)의 행자(行者)에는 천신(天神), 지기(地祇)도 경복(敬伏)하며 마계(魔界), 외도(外道)도 장애가 되는 일이 없다.(같은 책, 108쪽)

이것은 단순히 주술적 기복 신앙의 극복일 뿐만이 아니다. 신란의 메시지는, 자력에 의한 서열화나 신분 차별을 넘어서서, 승속의 구별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별을 넘어서서 모든 신자들이 평등하다는 내용을 담게 된다고 길희성 교수는 이야기한다. 길희성 교수는, 이러한 신란의 메시지가 당시 사회경제적 힘이 신장되고 있던 상인층의 재가신도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타력 신앙이 장점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길희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인간의 사상은 그것을 잉태시킨 시대적 제약을 넘어서기 어렵다. 신란의 타계주의적 신앙은 당시 불교의 현세구복적 성격을 극복하는 힘을 지녔으며, 그것이 추구하는 초월적 구원의 이상은 현세적 가치와 질서를 상대화시키는 힘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으며 타력의 은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타력신앙은 인간의 양심을 예리하게 만들었으며 사회의 관행적 도덕주의를 넘어서 인간의 도덕의식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우리는 신란이 이해하는 신앙생활에서 현세의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윤리적 의지와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같은 책, 228-229쪽)

이처럼 “현세의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윤리적 의지와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정토라는 타계에서의 구원에 희망을 거는 신란의 타력신앙이 갖는 시대적 한계 내지는 논리적 한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너무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우리의 온갖 행위들이 세상의 흙탕물을 더 혼탁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수도 있다.

인간이 품는 그 어떤 사상이 완벽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처절한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신란의 절대적인 타력 신앙은 상당한 공감과 위로를 주기에는 충분하고, 그 정도로도 길희성 교수의 『일본의 정토사상』에 대한 일독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신앙인아카데미(www.interfaith.or.kr)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맘울림> 2006년 6월 통권 제15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을 쓸 기회를 주신 신앙인아카데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