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정도 많이 아파서 책을 못 읽었다. 아프기 직전까지 두통에 시달리며 읽었던 하루키..

블로그 관리도 소홀하고, 독서도 소홀하고, 목표고 뭐고 다 잊어버린.. 아니 잃어버린 나를 반성하며 다시 한번 화이팅하는 기념으로 오랫만에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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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장에 꽂혀만 있었던 하루키의 책을 꺼내들었다.

 

소설이 시덥잖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철저하게 깨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엄청난 기대반, 그의 이야기에 담긴 무게감에 걱정반 사이 어디 쯤에서 시작.

 

처음엔 조금 무난하게 이야기를 써내리던 그가 점점 기묘한 이야기에 매료됨을 느낀다.

 

하루키라는 작가의 평범함과 비범함. 그 사잇점에 쏙 들어갈 만한 작품이 아닌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집을 나선 불행한 열다섯 소년 카프카. 그가 만난 기묘한 인연들, 그리고 오이디푸스의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에게 벗어나고 싶었던 아이도 어른도 아닌 소년의 이야기.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는 나카타, 그가 어릴때 겪은 기묘한 사건과 관계된 운명의 사슬.. 그 운명에 충실히 살다 평안한 죽음을 맞는 노인 나카타의 이야기.

 

두 이야기가 한 챕터씩 번갈아 가며 등장해서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하여 이야기 별로 연결지어 읽어볼까 싶다가, 이 소설의 매력이 반감될까봐 그만두었다. 

 

(역시나, 결국은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므로 등장인물별로 읽는게 조금 헷갈리더라도 책의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는 절대 못보는 나이기에 나카나씨가 다니엘 조커에게 가서 고양이를 찾아오려고 할 때에 겪었던 잔인한 이야기는 정말이지 너무 끔찍해서 며칠이나 잠자리에서 떠올라 괴로웠다.

 

하지만 소설의 특성상 극적인 부분을 높다란 절벽 끄트머리까지 끌어갔을 때의 긴박함과 재미를 위해서라면.. 눈물을 머금고 감당해야할 잔인함이려니, 애써 위안해 본다.

 

하루키답게 주인공들은 조금은 비도덕적일지라도(이를테면 오이디푸스의 실행) 단정한 성품을 지녀 동정심과 감정이입을 이끌어낸다.

 

카프카와 나카타 모두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로 주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실제로 내가 저 두사람을 만난다면 카프카를 도왔던 도서관의 누나(?)처럼, 나카타를 도왔던 운전수처럼 이 둘에게 매력을 느꼈으리라.

 

조금 과장하자면 나카타의 그 운전수처럼 그들을 돕는 것에서 삶에 의미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 소설이 내게 남긴 메세지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

 

나카타는 어찌보면 카프카를 위해 남은 여생을 바쳤다. 똑똑한 그가 불의의 사고로 바보가 되었고,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그가 맡은 임무, 말하자면 카프카의 인생을 다시 살게 하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카타 입장에선 어찌보면 너무 억울한 인생이겠지만, 그는 불행으로 여기거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모든 임무를 마치고 평온하게 잠들었는데 어느 누가 그의 인생을 덧없다, 아쉽다 평할까..

 

 

또 어찌보면 카프카 그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나카타의 인생을 통째로 본인의 인생에 투자 받았다.

 

불행한 어린시절을 겪었다 하더라도, 결국 어머니에게 버림받은게 아님을 깨닫는 큰 치유를 얻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으므로..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증오하는 대상에게 복수를 하고 마지막까지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문을 열어준 나카타에게 평생 감사해야할텐데.. 안타깝게도 나카타와 카프카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체 이야기는 끝이 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잠시 생각해본다.

 

우리의 인생에도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받은 도움이 절대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카프카가 나카타의 고마운 행동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운만큼, 우리 역시 누군가의 선행으로 커다란 빚을 진 채, 하지만 그 빚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발버둥쳐 원하지 않으려 해보아도 서로 얽혀 살아야만 하는 우리네의 사소한 행동들과, 인생의 소명을 믿는 믿음이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다면 어떤 행동도 함부로 행할 수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불쌍한 나카타.. 하지만 카프카의 인생을 구원한 바보 노인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니, 나카타의 인생을 조금은 더 행복하게 기억해주어야겠다.

 

하루키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진하디 진한 여운을 주고 갔다.

 

신작이여, 어서 물 건너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