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의 저서로 유명한 한병철 교수의 신간이다. 1년 4계절, 그렇게 3년간 정원을 가꾸면서 관찰한 정원의 변화, 내면의 변화, 생각과 감사를 담아냈다. 정원에 철학, 문학, 신학 등 본인의 분야를 잘 녹여낸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그런지 쉽게 읽히다가도 중간중간 한참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정원의 철학자'의 책이다. 중간중간에 꽃을 그린 그림도 들어가 있고, 엽서도 한 장 있다. 책 속에 언급된 꽃과 그림을 매치시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요즘은 날도 많이 풀려 이 책을 들고나가 읽기에 좋았다. 역 앞에서 파는 작은 화분을 사서 집 앞에서 키워볼까, 하는 중이다. 

저자의 중심 생각이다. 디지털화는 현실을 없애고 있으며, 오히려 현실이 디지털 세계의 많은 창 중 하나의 창에 속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잃었던 몸의 느낌, 현실감을 정원에서 되찾았다는 그의 말이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자연 경관 앞에서 넋을 잃게 되는 것, 바다나 산 근처에서는 오감이 예민해지는 것 등의 경험은 분명히 우리가 자연에서 '몸'을 얻는다는 걸 보여주는 경험이다.

이따금 이상 기후로 인해 때아닌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화제가 되곤 한다. "그게 뭐?" 별로 중요치 않은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으면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건물들, 낮에도 웃지 못하는 사람들. 인간은 하늘을 하늘로 맞아들이는 한에만 지구에 산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게 된 것 같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김춘수의 시가 떠오른다.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저자는 책에서 수많은 꽃들의 이름을 우리말로, 학명으로, 도이치 말로 왼다. 피어나는 계절, 머금고 있는 색깔에 따라 같은 꽃이라도 모두 이름이 다르고, 저자는 그 개별성과 독특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차이를 알아채고 각각의 꽃을 바라보는 것. 거기서 오는 경이감은 아마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않을까.

저자는 정원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꽃과 나무를 수집해다가 자신의 공간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소유욕보다도 몸과 마음을 다해 그들을 보살피고 거기서 얻는 감동, 경이로움을 예찬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소유함으로써 무엇을 얻는가? 그것을 왜 소유해야 하는가? 무엇에서 영감을 얻는가? 아니, 영감을 받긴 하는가? 여러모로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그 외에도 개별적인 식물의 이름, 그것의 성향, 심지어는 색깔 자체에 대해서 설명하는 문장들이 있다. 천천히 읽어서 음미하면 좋을 것 같다.  

미와 추를 나누어 무언가를 논한다는 건 한계가 있고 깊이가 얕다고 배웠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동의하고 싶다. 땅의 온기를 피부로 느끼고, 산을 보며 헤엄치고, 모래와 조개껍질에 몸을 부비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아직 늦지 않았으니 땅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