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문을 살펴보면, 그가 중화 부흥을 목표로 내건 '중국의 꿈(中國夢)'은 전성기의 당나라를 모델로 삼고 있다. 당(唐)은 오랑캐로 불리던 이민족 출신도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톨레랑스(관용)의 제국이었다. 시진핑의 중국은 종족적 배타주의나 문화적 패권주의를 지향하지 않은 당 제국의 관용을 배워야 한다."

박한제 서울대(69) 명예교수는 40년 넘게 위진남북조시대부터 당나라 시대까지를 '호한(胡漢)체제'를 키워드 삼아 연구해온 중국사 연구자다. 오랑캐(胡)로 불려온 북방 유목민족들이 3세기 이후 중국에 들어와 한족(漢族)과 융합하며 당 제국을 세우는 주역으로까지 발돋움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박 교수의 '호한체제론'은 중세 중국을 이해하는 독창적 학설로 한국 학계뿐만 아니라 외국 학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박 교수가 시진핑의 중국이 꿈꾸는 이상적 모델인 당왕조의 '제국'으로서 성공 요인을 분석한 '대당제국과 그 유산'(세창출판사)을 냈다.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한 2013년 석학인문강좌에서 강연한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닐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제국'이나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의 '제국의 미래' 같은 서구 학자들의 책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 연구자의 제국 연구는 드문 편이었다. 당 제국의 유산은 G2 국가로 부상한 현재 중국의 진로, 그리고 이런 이웃과 맞닿아 사는 우리의 선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박 교수를 인터뷰했다.

―당나라를 세운 주역이 '오랑캐'인 북방 민족들이라고 했다. 당나라는 그동안 정통 한족 왕조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이들은 혈통으로 보나 문화로 보나 호족(胡族)색이 짙은 사람들이었다. 북방 유목민족이 세운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은 물론 수나라부터 당나라 황실은 70% 이상이 호족의 피였다. 한족이 남긴 한문 사료가 당을 한족 왕조인 것처럼 왜곡했기 때문에 오해해왔을 뿐이다. 태종도 완벽한 한족 황제로 묘사되었지만, 당시 유목민족들은 당을 '타부카치(Tabugach)' 즉 '탁발(拓跋)'이라고 불렀다. 선비족의 일부인 탁발족이 세운 나라로 봤다는 것이다. 주자(朱子)도 당 황실을 '이적'이라 했다."

―당나라를 주목하는 이유는 뭔가.

"중국은 전통적으로 서북과 동남부가 각각 유목과 농경 지역으로 나뉠 뿐만 아니라 한족과 소수민족지구로 양분된 사회였다. 이렇게 이질적 요소가 두드러지지만, 하나의 나라를 이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강한 접착제에 의해 양분된 지역이 달라붙어있는데, 그 기원과 원인을 찾으면 당나라 특유의 '제국' 정신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한(漢)제국이 이질적인 나라를 오랑캐라 배제하고 힘으로 패권주의를 지향했다면, 당(唐)은 호월(胡越), 즉 '오랑캐'까지 포용하여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 관용의 제국이었다."

박 교수는 "당나라는 요즘의 미국 메이저리그나 프랑스와 독일 축구 대표팀처럼 실력을 가진 사람은 출신 지역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고 했다. "신라는 물론, 고구려와 백제, 일본, 인도, 페르시아인까지 과거(빈공과)를 통해 당 조정에서 활약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세계 역사상 외국인이 공무원 시험을 치러 당당하게 공무원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당나라 말고 어디에 있었나. 최치원도 그런 사람이었다."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나라라서 그런지, 한국인들의 감정이 썩 좋지 않다. 당나라를 너무 미화하는 것 아닌가.

"군기 빠진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국인은 당을 우습게 안다. 당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사실 우리밖에 없다. 흉노보다 훨씬 강한 유목제국 돌궐을 멸망시킨 나라가 당나라 군대다. 당은 흉노, 선비는 물론 고구려, 백제 유민과 서역인 소그드인까지 능력에 따라 중용해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다. 당을 우습게 보는 것은 상처 입은 자존심을 달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당시의 국제 정세와 우리의 생존 전략을 잘못 읽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우기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원칙에 따라 멋대로 왜곡하고 있다. 역사는 과학이다. 필요하다고 해서 과학성을 팽개치면 학문 자체가 망가져 버린다. 역사학의 이런 정권 시녀화는 심각한 문제다. 중국 친구들에게 현재 우리나라 영문 국호의 뿌리가 된 왕조(고구려)까지 당 왕조의 '지방정권' 운운하면 되겠느냐고 따져 묻는다. 현대 중국이 모델로 삼는 당이 관용과 포용에 기초한 제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동북공정'처럼 주변 국가를 따돌리고 배제하는 일을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