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언어가 지닌 영향력을 다뤄본 소설이었다. 20년 전에 낸 첫 소설이지만, 지금도 작가로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재미교포 소설가 이창래 미국 프린스턴대 문창과 교수가 등단 20주년을 맞아 13일 서울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씨가 1995년 미국에서 낸 첫 소설 '영원한 이방인'(원제 Native Speaker)이 올해로 출간 20주년을 맞은 것. 정영목 이화여대 통번역 대학원 교수가 10년 전에 옮긴 '영원한 이방인'을 이번에 일부 손봤고, 랜덤하우스코리아로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을 냈다.

이창래씨는 미국에서 첫 소설을 내자마자 1996년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비롯해 반스앤드노블 신인 작가상, 아메리칸 북어워드, QPB 뉴비전 문학상, 오리건 북어워드를 수상했고, 미국도서관 협회로부터 주목할 책으로 선정됐다. 그는 '척하는 삶' '가족' '생존자' '만조(滿潮)의 바다 위에서'를 잇달아 펴냈고,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외신에서 언급된다.

이씨의 첫 소설은 재미교포 부자(父子)의 세대 차이를 바탕으로 이민 1.5세대 주인공이 한국과 미국 문화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 갈등을 서정적 문체와 추리소설 구조의 결합 속에 독특하게 그려냈다. 이씨는 "원제 Native Speaker란 영어를 표준 방식으로 관습에 맞게 쓰는 사람을 뜻한다"며 "그런데 이 소설의 한국인 주인공은 미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스스로에게도 이방인이 되기 때문에 한국에선 원제보다는 번역판 제목 '영원한 이방인'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소설을 처음 쓸 땐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내 순수한 열정으로 썼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인간에 대한 나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사적(私的) 방식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글쓰기의 변화에 대해 "초기작이 개인의 고뇌를 다뤘다면, 최근의 소설 두 편에선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인간을 형성하는지 그리려고 했다"며 "흰머리가 늘어나면서 세상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냈고 우리말로도 번역된 소설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올해 전미 비평가 협회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있다. 그는 "문학이야말로 디지털로 환원될 수 없는 아날로그 삶의 신비를 다루고, 인간이 스스로를 찾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차기작에 대해선 "중국인 사업가를 따라가는 모험소설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부상(浮上)하는 것을 그리려고 한다"고 살짝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