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들이 일본에만 있으면 일본 고대에 대한 균형 잡힌 연구가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한국 학자들도 읽어 보고 토론해야만 진정 의미 있는 해석이 가능할 겁니다."

일본 고대 문학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고노시 다카미쓰(神野志隆光·69) 도쿄대 명예교수가 '고사기(古事記)' 및 '일본서기(日本書紀)' 관련 연구 서적 5000여권을 성균관대에 최근 기증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인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천황에 관한 신화와 일본 고대사가 기록돼 그동안 천황제에 대한 정통성을 부여하고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근거로도 사용돼 왔다.

서울 삼청각에서 만난 고노시 교수는 일본인들이 스스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을 갖게 만든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대해 "역사가 아니라 상상된 이야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8세기에 작성된 두 책에 나타난 고대의 모습은 당시의 일본인이 만들어낸 고대이지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고사기'의 천황 신화도 입에서 입으로 전승돼 내려온 것이 아니라 천황을 위해 당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가야에 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전공투 세대이기도 한 그는 이런 사관 때문에 '좌익 학자'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고대 문학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일본 학계도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

고노시 교수는 제대로 된 고대사 연구를 위해선 한·중·일 세 나라의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는 한자(漢字)를 매개로 활발하게 교류했으니 일본의 고대는 한국과 중국 없이는 설명할 수 없어요. 세 나라가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 '한자 세계'였지요." 그는 "현재 세 나라가 반목하는 상황은 정치·외교의 문제일 뿐"이라며 "학자들의 교류는 흔들림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노시 교수가 기증한 서적 가운데는 '신대사설' '염토전' '신대구결' '직지상해' 등 일본에서도 귀중본으로 분류하는 일본서기와 고사기 관련 주석 서적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활용된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대한 해석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디 귀중서 서고에 넣지 말고 일반 문고에 비치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