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韓日) 원로 시인들이 시(詩)를 통해 두 나라의 우호 관계 회복에 나섰다. 한국의 신경림(80) 시인과 일본의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84) 시인은 지난해 6개월간 단시(短詩) 24편을 주고받았다. 다니카와 시인이 먼저 예술을 통한 상호 이해와 역사 치유를 노래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조선백자 항아리/ 역사가 흠집을 남겼는데도/ 항아리는 여전히 아름답다/ 가을, 항아리는 아담한 들꽃을/ 말없이 그러안고 있다'. 일본이 조선백자에 낸 '흠집'에도 변하지 않는 예술의 가치에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은 것. 신경림 역시 예술을 상징하는 항아리에 우정을 담아 보내고 싶다고 화답했다. '간밤에 문득 이슬비 스쳐가더니/ 소나무에도 새파랗게 물이 오르고/ 동백도 벙긋이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 새롭게 항아리에 새겨/ 바다 건너 벗들에게 전하고 싶구나'.

두 시인이 최근 공동 시집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를 냈다. 한국의 예담 출판사와 일본의 쿠온 출판사가 기획 출판하는 '한일 작가들의 대화' 시리즈의 첫 권이다. 두 시인의 대담, 자선(自選) 대표시와 에세이도 실렸다. 신경림은 오늘의 한국시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서정시를 이끌어왔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일본의 순수 서정시 전통을 대표해왔다. 그의 시선집 '이십 억 광년의 고독'이 이미 국내에 나와 있다. 2012년 신경림의 시선집 '낙타'가 일본에서 번역되면서 두 시인이 인연을 맺기 시작한 덕분에 시를 통한 대화가 이뤄졌다. 두 시인이 이메일로 시를 주고받았고, 한국 문학을 전공한 요시카와 나기(吉川凪) 박사가 번역을 맡았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신경림은 '온 나라가 눈물과 분노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나는/ 고작 떨어져 깔린 꽃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라며 비통한 심정을 띄워보냈다. 다니카와는 아픔을 나누는 시로 답했다. '숨 쉴 식(息)자는 스스로 자(自)와 마음 심(心)자/ 일본어 '이키(息·숨)'는 '이키루(生きる·살다)와 같은 음/ 소리 내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상상력으로조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괴로움/ 시 쓸 여지도 없다'.

두 시인은 모국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초월한 시의 공통 언어에 공감했다. 다니카와는 '별 이름 모르고 싶다/ 꽃 이름 외우기 싫다/ 이름이 없어도 있어도 다 같이 살아 있는데'라며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의 크기를 노래했다. 신경림도 '나를 스쳐간 사람들/ 그 이름들을 나는 모른다/ 모두 별이 되어 가슴에 박혀 있을 뿐'이라며 언어의 틀을 벗어난 마음의 크기로 화답했다.

다니카와는 "국가 간의 관계가 순조롭지 못할 때도 시인들은 또 하나의 편안한 공간에서 정치인들의 언어와 차원이 다른 시의 언어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며 "나는 그게 좋다"라고 밝혔다. 신경림도 "우리는 어차피 세상에 나와 배우고 익힌 언어로 시를 쓴다"며 "그러나 우리의 시가 추구하는 언어는 그 속에 보석처럼 박힌 정수(精髓)이니 우리가 시를 통해 추구하는 언어는 다르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