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을 찾는 일들이 있다.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일수록. 어떤 뉴스를 들었을 때 즉시 판단하는 것 대신, 바둑의 '복기'처럼 다시 판에 사건들을 배열하며 이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가 보게 된다. 그리고 과연 정보력에서 어느 한쪽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만약, 김구 선생이 노환으로 운명을 달리하셨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북한과의 관계부터 중도좌파의 흐름의 계보가 훨씬 달라졌을 것 같다. 혹은 군사정부는 등장하지도 않았을 지도 모른다. 모든 역사에 군인들이 정치인이 되는 시기가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므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과연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사회책과 비교할 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까 생각해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현실은 한계점이 명확한데도 사람들의 용기는 현시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만큼 크고 강하다.​ 동시에 빠르거나 쉽게 읽을 수 없는 까닭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교차되기도 하고 동떨어진 위치에서 등장하기 때문인데, 지금의 삼권분립의 문제도 보게 된다. 한 사람이 삼부의 여러 위치를 점하기 어려운 시대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민주주의와 상관있다는 것은 그들이 권력을 분산한 조직도가 말해주지만 첫 이미지에서 연상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했다고 생각했을 뿐.

    이 책은 자치, 주체, 권리, 사상, 정의, 연대, 해방의 개념에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흩어놓아 서술했다. 각 장별로 시대순으로 어떤 조직과 사람인 어떤 운동을 했는지 연표로 나와 시간 흐름상 일의 흐름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읽고 나면, 건국절 기준을 어디로 해야 할지 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 당연한 것을 왜 문제로 꺼냈을까, 그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지면서.

    일제강점기 때의 서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내부갈등이든, 일본이란 제약조건이든 한 조직이 수년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조직이 만들어지고 어떤 일들을 하려했던 그들이 왜 그랬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리면서, 이 책 끝에서 '독립'이라는 단어만 답으로 남는다. 나이, 신분, 경제적 차이, 학력 차이, 이념노선의 차이에도 그들이 추구하던 이상. 그 독립이 결국 민주주의와 연결되는데, 지금 우리들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묻게 되는 그 개념을 당시에는 치열하게 논의하고 꿈꿨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이만큼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3.1운동에 대해서도 '민주주의 사상이 실로 당시 운동의 모든 방면에 침투했던' 사건으로 '민주주의를 그 중심 조류로 한 혁명운동'이자 '현대 민주주의적 각성의 발로'라고 평가했다(p.228)."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신민주주의를 설명하며 기미년을 이렇게 해석했던 그 시대의 사람의 시각을 옮겨놓는다. 지금 이 시대는 3.1운동을 한번에 이렇게 떠올릴 수 있을까?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화라는 말이 2018년에 이상으로라도 자리잡을 수 있는 사회인가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자세히 살피게 된다. 어느 시점부터 따로따로가 아닌, 서로의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에 살 수 있는가 궁금해서.

     가끔 놀라는 부분이 이런 곳이다. 1920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창간사를 볼 때, 지금의 동일 명사와 잘 연계되지 않아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중략)...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자유주의요 국제 정치에 있어서는 연맹주의요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평등주의요 경제조직에 있어서는 노동본위의 협조주의라(p.224)."

     "물론 한두 명의 상급 군인을 죽이는 일만으로 독립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번 사건도 독립에는 당장 직접 효과가 없음을 잘 알고 있으나...(중략)...현재 세계 지도에 조선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 각국인들은 조선의 존재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통해 조선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넣는 것이 장래 우리들의 독립운동을 위해 헛된 일이 아님을 굳게 믿는다(p.295)." 의열단과 한인애국단의 활동을 테러리즘과 대조하면서 윤봉길의 진술이 등장하는데,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을 돌아보게 된다. 느리고 더뎠던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품었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 시대보다 높은 이상과 희망, 가치를 지녔던 게 분명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