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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파도가 높아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우리는 서로의 눈이 아니라 발밑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지, 서로 조금만 뒤로 물러난다면 우리는 등을 맞대고 밥을 먹을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뒤처집니다, 공중에 뜬 모자가 걸어갑니다, 나라는 것을 엎어버린다면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을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 없는 나라가 위태롭다, 그의 몸이 점점 두툼해진다, 그들이 떠나온 세계에는 텅 빈 새장만 남아 있다, 어떤 짐승도 가만히 엎드려 재앙을 기다리지 않는다,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다 천사는 아니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빨리 뛰어서 너덜너덜해졌다, 서로에게 족쇄를 채운다, 누군가 사람들을 지워버렸다, 나는 주저앉았다, 나는 쉽게 와서 쉽게 가고 너는 쉽게 와서 어렵게 간다,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 만큼 간절한 기도, 기억이 주르륵 쏟아진다,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미친 달이 뜬다, 어제 당신이 심장에 박아놓은 가시가 한 치나 자랐다, 물음 속에는 무수한 울음들이 있다,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올 곳을 잃어버린다, 해변에 벗어놓은 옷들처럼 하루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내가 얼마나 메말랐기에 너는 그처럼 밀려오는가, 우리는 번지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사람들은 벽 속에 비밀을 숨긴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따스한 무관심, 비밀이 많은 자는 늙지 않는다, 저 너머가 천국인지 지옥인지, 술래의 등을 껴안는다, 꿈속에서 많이 운 날은 날이 밝아도 눈이 떠지지 않습니다, 철조망이 넓어진다고 해서 수용소가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파도는 물의 벽입니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이 지옥이다, 이 지상에 파견된 봄은 갈 곳을 몰라 서성거린다, 가상의 적이 웃음을 잃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창백해지거나 선명해진다, 우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웃었다, 우리는 실수와 실패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검고 무겁고 짙어지면서, 햇살이 망치를 들어, 텅 빈 객석을 보고 다시 한번 웃음을 짓는다, 우리가 평생 동안 흘릴 눈물을 모은다면/몸피보다 더 큰 물방울이 눈앞에 서 있을 거야, 꽃은 꽃을 밟지 않는다, 간밤에 내린 절망들을 손으로 쓸어담는다, 관을 불 속에 넣고 유족들은 식당에 간다, 가서는 총도 잡지 마라고 펜대도 굴리지 말고 참꽃맬로 또랑또랑 살거라이, 오금에 새겨지는 주름, 백중물을 보며 하루종일 울었다고 한다, 햇살을 만진다, 검은 정장을 입고 바닥에 눕는다, 우리 사이에는 기억의 비무장지대가 있다, 쇠창살 같은 비가 손등에 내리꽂힌다, 벌레는 내 안에 더 많다, 하눌이 온통 단풍 들었구나, 의자는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다, 토끼철 같은 눈이 날리고, 어금니 빠진 자리 같은 땅속에, 악몽 속의 악몽처럼, 그림자를 깎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와 너그 아부지 발자국이 안 보이노

각 시에서 어느 한 구절만 옮겼다. 시인의 말들을 난도질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시인이 공들여 썼을 시어들 가운데 아마도 시인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말들이 이 글자들이 아닐까 해서. 소설과 달리 시어는 다른 표현 방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이 전부이기에.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라는 문장을 하고 앞에 주어를 생각해보면 다양한 답들이 나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주어가 나온다. 그리고 그 아이의 상황이. 이런 시정이 몇 편 더 있는데, 부정적인 감정보다 이해의 감정이 피어오른다. 서서히.

<모래의 집>이나 <샌드위치 맨>처럼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풍경은 글의 정서와 어울려 아주 짧은 동화같다. <저녁 뉴스>는 4시간 정도의 심경 변화를 눈 앞 보이는 야구경기와 해변으로 대치된 현실의 교차가 절묘하다. 아마 가장 공들여 쓴 시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문장들이 아닐까 싶다. 튀어나온 단어들이 아니라 안으로 깎여 들어간 시어들이라.

이 책, 책의 앞날개에 있는 '시인의 말'이 책을 읽게 했다. <사소한 부탁>을 통해 알게 된, 이 시인의 글자와 구문들은 '시인의 말'을 닮았다. 많이.

이 시인의 시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이런 시인의 믿음은 어떤 산문보다 강하게 인지된다.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시인의 믿음이며, 그것이 타인의 안부와 생에 대한 순간들을 붙잡는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