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가 다라간이라는 소설가를 통해 말한다. 그 시대, 그러니까 프랑스에서 부모들이 아이를 전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던 혹은 그렇게 할 수 없던 때 아이들의 기억, 그 아이가 이제 막 청년이 되었을 때의 기억, 수십 년이 흘러 초로에서 우연히 마주친 대상으로 인해 망각했던 두 시간을 떠올릴 때의 기억. 그것들은 무엇이었는가? 아이에게 혹은 아이를 보호하려 했던 어른에게 혹은 방기했던 어른에게.

    자신의 첫 소설을 전부 기억하지 못하는 다라간. 그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잃어버린 수첩을 주웠다며 한 청년이 만나자고 한다. "몇 년 전만 되었더라도, 다라간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유의 친절을 발휘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19)." 누구와 연락하지도, 함께 하지도 않는 그는 질 오톨리니와 샹탈 그리페와의 만남에서 낯선 이의 이름을 듣게 되고 혼자서 문학적 상상력으로 자신의 상황을 그린다.

    그리고 도박에 많은 돈을 잃는 그 청년의 거짓과 그 청년 옆에 있는 한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 속 사실과 거짓 사이에서 다라간은 자신의 과거와 만난다. 아이였던 다라간은 어른들의 세계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 속에서 어느 집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는 기억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다른 이들에게는 큰 누나처럼 인식되던 아니와의 여행길. 코트다쥐르에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지낸 며칠 끝에 "그 집에 혼자만 남았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p.164)."로 그 시절의 기억과 이 책의 이야기가 동시에 끝난다. 첫소설을 내고 만난 아니에게 묻고 싶었으나 차마 묻지 못했던 말들과 둘의 만남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은 말하지 않음 속에 있는 수많은 말을 담고 있다.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그 방에서 잠을 깬 그는 길 저편에서 이편으로 건너오는 데 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망각의 빛깔인 하양이 채우고 있었다. 다라간도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첫 책을 쓰던 시절을, 그리고 주머니에 두 번 접힌 종이-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를 넣고 혼자 거리를 거닐던 여름철을 하얗게 칠했다(p.155-156)."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이 이 이유인 까닭이 궁금해서 몇 번이고 읽다가 책 제목을 펼쳐보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어른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랬으면서도 결국은 끝까지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사실,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적어준 쪽지를 회상하며 비로소 과거의 그 아이와 연결되는 현재. 어른이 된 그 아이가 완벽히 혹은 불완전하게 이해한 현재와 과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로 독자의 머릿속에 투명한 얇은 시간의 막을 켜켜이 쌓아놓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글은 '그의 시대와 우리 시대가 과연 그렇게 다를까?' 생각하게 한다. 전후 혼란기였던 그의 시대와 우리가 열심히 살아보자고 했던 1980년대 후반 오늘 날짜의 매캐한 공기속에 담긴 피냄새와 오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