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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저 : 임건순 ㅣ 출판사 : 시대의창 ㅣ 발행일 : 2013년 07월15일

책을 읽은 후에는 나름대로의 서평을 열심히 쓰곤 했는데, 요즘에는 여러 가지로 바쁜 일이 많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마음을 가다듬고 그 동안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 들어 내용을 더듬어 생각해보고 느껴보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싱가포르로 다시 인천공항으로 넘어가는 긴 비행시간 동안에 읽었던 임건순의 ‘묵자’를 읽으며 이렇게 흥미롭고 즐겁게 글을 쓰는 분이 있는가 생각했다. 디아트리베(diatribe) 수사법으로 쓰여진 이 책은 저자와 나 자신이 둘이 앉아 서로 이야기를 하는 듯 생각된다. 묵자를 알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글이 없을 듯싶을 정도다.

묵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주로 육체노동에 종사했던 하층민 내지 피지배층, 천인 계층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무기를 만들고 성을 쌓고 지키는 무인들로 이루어졌다는 데도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묵자의 사상은 묵적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묵자는 어느 시대에 살았을까? 묵자가 살았던 시기는 鐵器와 牛耕으로 생산력의 증대가 생기면서 전쟁규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씨족사회가 붕괴되는 戰國時代 초기였다. 씨족사회의 붕괴는 적대적 익명의 타자로 구성된 사회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보다 새로운 인간에 대한 논의와 사유, 그리고 통치철학이 요구되었다. 묵자 역시 어떻게 종적 질서가 정당하게 조직되며 제한적이나마 횡적 질서와 논리를 찾고자 했다.

묵자는 공자를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공자는 禮를 인간사랑과 타인존중의 사회규범으로 禮讓을 통해서 조화를 이룬 바람직한 사회를 추구했다. 仁은 이러한 바람직한 사회질서와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공자의 문제의식은 정치 지도층의 정신적 윤리적 타락에 기인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이러한 지도층의 윤리, 도덕, 정치의 문제로 환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히 지도층의 변화만을 기대하기에는 쉽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묵자는 겸애를 주장한다.

兼愛란 통치체계, 사회 체제를 통한 최대 다수의 기본적인 생활보장 내지 욕망, 욕구충족으로 말한다. 묵가에서 겸애를 말할 때 항상 交相利를 같이 이야기하거나 혹은 그 자체로 본다. 이는 서로에게 이롭게 관계 맺는다는 뜻으로 겸애는 이익과 결부되는 개념이며 즉, 물질, 경제와 관련 없는 도덕과 관념을 거부하며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활과 그 물적 토대에 천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묵가가 이야기를 하는 이익은 어떤 공유되는 이익, 분배되고 나누어지는 이익을 말한다. 말하자면 의로움의 기초가 되는 이로움은 그냥 이로움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에게 나누어지고 공유되는 상호적인 이익이고, 이런 이익과 ‘서로 이롭게 함’이 그들이 말하는 겸애이다. 정리하면 이로움이 있어야 의로움이 있고, 의로움이 있어야 이로움이 있는 것이다. 묵자의 겸애는 혈연공동체와 무관한 인간끼리의 상호부조 내지 연대의 정신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한편 묵자는 天志를 말하는데 이는 하느님의 뜻은 하층민들의 의지가 투영된 것이고 그들의 의견과 목소리가 수렵되어 나온 것이다. 천지의 핵심은 겸애이다. 통치권력이 분배하는 기본적인 물질적 혜택의 범위를 늘려보자는 겸애가 하느님의 뜻이니, 그 겸애를 실현하는 통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 것이 묵자이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의 다른 사상가의 天과 다르게 묵자의 天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유가가 仁을 통한 이상적인 지역사회를 생각했다면 묵자는 겸애를 실천할 수 있는 보다 큰 정치단위와 안정된 정치질서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서 이들이 진나라에서 전국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전국통일의 기초를 쌓은 사람은 상앙으로 진묵(진나라 묵가)은 그 정책에서 실질적으로 진나라 역량을 키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묵가가 진에서 중용되었던 것은 기존 귀족세력이 약했던 진의 독특한 토양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묵자는 법을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국가행정의 시작과 끝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적으로 무력을 보유했으며 하층민을 대변한 묵가는 통일 제국에서는 탄압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전국통일의 기초를 쌓았던 묵가의 몰락과 파멸을 의미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