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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실학자'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정약용이 신유교옥으로 귀양살이를 떠난 1801년부터 1018년까지 두 아들과 형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아이들이 한창 성장하고 있을 때 곁을 지켜주지 못하고 멀리 귀양가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러한 안타까움과 조바심이 때로는 타이름으로, 때로는 호통으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사실을 전혀 인용하지 않고 음풍영월이나 하고 장기나 두고 술 먹는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서너집 모여 사는 벽지 시골 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 차후로 시를 지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도록 해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일이나 인용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볼품없는 짓이다. (57. 시는 나라를 걱정해야)

-다산의 역사관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중국의 역사를 인용하지 않고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나타나 있다. 음풍영월이나 장기두고 술멱는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짓지 말라고 하니 그의 성정을 알만하다. 좀 재미는 없는 사람일듯..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엔 이리저리 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60.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줘라)

-좋은 일 하고도 꼭 말 한마디로 다 까먹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남을 돕되 보답을 생각하지 말라... 보통 사람이라면 쉽지는 않은 일이겠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의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68.폐족도 성인이나 문장가가 될 수 있다)

-어쩜 이시대 엄마들의 잔소리와 어찌 이리 말투가 비슷할까. 내가 책을 안 사주니? 학원을 안 보내주니? 하면서... 암튼 가문이 무너진 것에 자식들이 낙담하여 배움을 놓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출세하려는 맘음을 접어두면 더욱 학문에 정진할 수 있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사람이란게.. 특히 혈기 왕성한 젊은 자식들에게 쉽지는 않은 일이겠다.

매번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자식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버지의 진심어린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겼을까, 아님 가족이 멸한데 대한 원망의 마음이 컸을까, 아버지의 끊임없는 훈계가 지겹지는 않았을까. 아들들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비스듬히 드러눕고 옆으로 삐딱하게 서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가지가 학문 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71. 힘써야 할 세가지 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과 통하는 것 같다. 요즘 같은 때 이렇게 세 가지를 지키며 사는 것이 쉽진 않겠다. 하지만 흐트러진 몸가짐에서 반듯한 마음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에 어느정도 공감한다.

천하에는 두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가지 큰 기준에서 네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옮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다. 세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다. (128. 절조를 지키는 일)

- 이는 자식들이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남들에게 머리를 굽히려는 것을 꾸짖는 말이다. 다산은 지금 옮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은 두번째 경우에 처해있다. 그러나 남에게 구명을 구걸하다보면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최악의 경우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다산의 꼿꼿한 성정이 엿보인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고 있다만, 앞으로 계획인즉 오직 서울로부터 10리 안에서만 살게 하겠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161. 문명세계를 떠나지 말라)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처럼, 지금은 죄로 인하여 시골에 살고 있지만 문명에서 멀어지지 말 것들 당부하는 말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농사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매우 구체적인 지식까지 알려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에 옷이나 음식, 재물 등은 부질없고 가치없는 것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게 마련이고 음식은 먹으면 썩고 만다. 재물 또한 자손에게 전해준다 해도 끝내는 탕진되고 만다. 다만 몰락한 친척이나 가난한 벗에게 나누어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66. 재물을 오래 보존하는 길)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이 한마디 말을 늘 외우고 실천한다면 크게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작게는 한 가정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190. 비밀로 하는 일이 없기를)

누에가 알에서 나올 만하면 뽕나무잎이 나오고,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울음소리를 한번 내면 어머니의 젖이 이미 줄줄 아래로 흘러내리니, 양식 또한 어찌 근심할 것이랴? 너는 비록 가난하다고 하나 그것을 걱정하지는 말라. (315. ‘윤종심에게 당부한다’ 중 ‘재물이란 허망한 것’)

아버지 정약용에서부터 아우 정약용, 스승 정약용 까지 일관성 있고 꼿꼿한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학문에 대한 깊이있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좀 지루하기도 했다.

문득 앞에 읽은 고미숙씨의 <열하일기...>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동네 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더니 읽는 데 싫증을 내더이다. 그래서 꾸짖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늘을 보면 새파란데 하늘'천'자는 푸르지 않잖아요" 그래서 글을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은 문자를 만든 칭힐(한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상고시대의 인물)을 기죽일 만하외다. (담창애)

만약 정약용의 어린 제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박지원처럼 아이의 총명함에 감탄했을까, 아님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며 호통을 쳤을까. 정약용은 아이들에게는 사실만 가르쳐야지 허황된 이야기를 가르쳐선 안된다.. 뭐 이런 얘기도 했는데 이게 판다지를 뜻하는건 아니었을지.